첫째가 드디어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심심할 때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중간중간 헷갈리는 글자를 물어보는 것도 이쁘고 책에서 알게 된 내용을 말해줄 때도 이쁘다. 만화 볼 때 제목만 읽고 보고 싶은 걸 찾는 것도 정말 귀엽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맞는 건가?", "한글을 너무 빨리 시작한 건가?" 싶기도 했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저 가르치길 잘했다.
말레이시아로 출국하기 7개월 전, 한글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첫째가 책을 좋아하니 스스로 읽게 되면 더 좋을 거 같았고 해외에서 영어를 배우기 전 한글부터 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가르치는 게 그렇게 어려울 거 같지도 않았다. 그저 단어카드만 보여주면 어느 순간 책을 읽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나 육아에서 그렇게 쉬운 건 없었다.
통문자 암기는 한글에 익숙해지는 과정일 뿐
통문자 암기. 요즘 많이들 하는 한글 교육 방식이다. 나는 자연스러운 노출보다는 하루에 한 단어를 암기하고 6개의 단어를 외우면 선물을 주는 방법으로 했다. 칠판에 포도알을 크게 그려놓고 그날 해야 할 단어 외우기가 끝나면 포도알 하나에 사인을 하도록 했다. 선물 받는 게 재밌었는지 포도알을 채우는 기쁨이 컸는지 누적해서 물어보는데도 첫째는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금방금방 외웠다. 처음엔 천잰 줄 알았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고 정말 딱 단어카드만 읽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어카드로는 게임을 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외우고 있었지만 똑같은 글씨를 책으로 봤을 땐 전혀 읽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쉬운 책을 반복해서 읽게도 해봤지만 이것 또한 전혀 소용이 없었다. 정말 딱 그 책만 읽을 수 있고 같은 글자가 많은 다른 책은 전혀 읽지 못했다. 그냥 내용을 암기한 거지 한글을 깨친 게 전혀 아니었다. 그때서야 이것저것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통문자 암기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결정적으로는 방법을 바꾸건 시어머님의 한글의 원리를 가르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 때문이었다. 남편도 그렇게 해서 한글을 뗐다고 알려주시며 첫째에게 가나다를 알려주셨다. 나는 원리를 가르치는 게 더 어려울 거란 믿음이 있었는데 첫째는 어머님의 방법이 더 좋다고 할머니처럼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내 방법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한글 원리를 배울 수 있는 책을 구매하여 이곳에 도착 후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다.
저렇게 많은 작은 장난감이 생겼지만 책은 읽지 못했다
한글 원리로 배우는 한글
1. 한글 원리 책으로 공부하기
하루에 30분, 한글 떼기 책을 같이 읽어나갔다. 쓰는 부분은 하지 않고 읽는 부분만 계속 반복했더니 받침이 없는 글자는 쉽게 외웠다. 모음 순서는 똑같고 자음만 바뀌어서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를 배운 후에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를 배우는 식이다. 받침이 있는 글자도 방법은 비슷하다.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는 똑같고 밑에 받침만 달라진다. 받침은 확실히 어려워 하긴 했지만 이것도 책으로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니 받침에 따라 어떤 소리가 나는지 깨닫고 다른 글자에도 응용할 수 있어했다.
2. 한글 벽보 사용
책만 보게 하면 또 책만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이번에는 한글 벽보를 적극 사용했다. 책으로 받침이 없는 글자를 다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벽보를 같이 읽게 했다. 책과 다르게 모음은 똑같고 자음이 바뀌는 방향을 읽게 했다. 예를 들어 가나다라마바사, 고노도로모보소 이런 식으로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책도 좋았지만 벽보를 사용하고 나서 아이가 한글을 받아들이는 게 확연히 달라진 게 보였다. 여러 글자를 한 번에 보면서 한글의 원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3. 쉬운 책으로 연습하기
아이가 더듬더듬 읽기 시작할 때부터 둘째의 동화책을 이용해서 같이 읽었다. 글밥도 아주 적고 글씨 크기가 커서 한 권을 다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첫째는 둘째를 읽어줄 때 항상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내용도 암기하고 있어 더 쉽게 도전해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처음엔 같이 읽어주다가 혼자서 꽤 잘 읽게 되었을 때쯤부턴 모르는 글자는 한글 벽보에서 찾아보게 했다. 시간이 좀 걸려서 하루 30분을 넘기지 않기 위해 읽는 페이지 수를 줄여야 했지만 이렇게 하면서 많이 늘었다. 그러고 나서 좀 더 어려운 책들로 넘어갔고 쉬운 책처럼 스스로 찾아보게도 하고 내가 알려주기도 하며 꾸준히 연습을 계속했다.
둘째의 방해를 이겨내며 하루30분씩 꾸준히 공부했다
다시 한글 공부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첫째는 어느 순간부터 책을 자연스럽게 읽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읽은 날 우리는 첫째가 먹고 싶어 했던 아이스크림으로 축하파티를 열었다. 가게에 가서 당당하게 자기가 먹고 싶은 종류를 고르는 첫째의 모습을 보는 게 정말 행복했다. 이 행복한 마음으로 나와 남편은 첫째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정말 잘했다고 끊임없이 칭찬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건 나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 정말 고생했다.
아이 스스로 뿌듯해하는게 정말 좋다
잠들기전 읽는 책은 아직 내가 읽어주고 있다. 글밥이 많은 책을 완전히 이해하면서 읽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스스로 읽을 때마다 사랑스럽고 예쁘다는 눈빛으로 더 많은 칭찬을 해주며 읽기 독립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한글을 가르친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이게 더 어렵다고 하고 아직 쓰는 것도 가르쳐야 하지만 일단은 아이가 한 단계 성장했음을 기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