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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Aug 10. 2020

살인

“널 죽이고 싶어.”


입 밖에 내도 되는 말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널 죽이고 싶은 이유는 수십, 수백 가지지만 그걸 여기서 다 말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널 어떻게 죽일까,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너를 죽이면 완벽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해.”


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이야기야.”


의자에서 일어나는 그. 그대로 창고 한 편에 놓여있는 탁자로 걸어가서 머그잔을 만지작거린다. 머그잔에는 먼지가 가득 묻어 있다. 안에는 어떤 음료가 들어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흔적이 말라붙어 있었다.


“널 처음 만난 날이 기억이 나. 그날은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지. 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앞에 두고 내 앞에 앉아 있었어.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네가 무척이나 귀여웠지. 아직은 귀엽다고 말하기엔 이른 시기였으니,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한참이나 말이 없다. 음악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의 취향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chill한 음악에서부터 비트가 있는 음악, 연주곡까지 음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채로 흘러갔다. 낡은 스피커 위에도 먼지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는 볼륨을 높였다. 스피커에 쌓인 먼지가 움찔거릴 정도의 볼륨이 되었다.


“널 사랑했다.”


흔한 말이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는 나뭇결이 벌어질 정도로 낡은 나무의자였다. 거친 결이 느껴지는 밧줄에 묶여 있는 그녀는 저항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랑이라는 게 참 웃기지. 갖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가져지고 싶고, 그러면서도 불안하고, 두렵고, 기쁘고, 이 세상의 모든 감정을 다 합쳐놓은 것 같으니까. 널 만나면서 나는 늘 그랬어. 너는 안정감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지. 그래도 그게 그냥 좋았어. 내 인생에 너라는 굴곡이 생긴 걸 기꺼이 받아들였지. 그런데 말이야, 그날이 오고야 말았어. 그날부터 나의 사랑은 오직 분노와 슬픔밖에 남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그는 다시 그녀의 앞에 앉았다.


“널 죽이고 싶다.”


그의 눈은 그가 말한 분노와 슬픔이 뒤엉킨 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소용없는 이야기겠지.”


그녀의 고개가 더욱 아래로 떨궈졌다. 그는 그 몸짓에 화가 난 모양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그녀의 턱을 잡고 위로 치켜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너는 마지막까지 네 생각만 했어. 날 똑바로 봐. 네게서 처참히 버려진 나를 보란 말이야. 이 분노를 어찌해야 좋을까, 이 고통을!”


그는 그녀의 턱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뒤돌아선 그의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소매를 눈가로 가져갔다. 곧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했잖아. 그러지 말라고. 그러면 내가 죽여버리겠다고 말했잖아. 왜 말을 안 들어. 너는 처음부터 그랬어. 내 말을 듣지 않았지. 그런 네가 좋으면서도 늘 불안했어. 어떻게 끝까지 이럴 수 있니. 응?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는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울음을 속으로 욱여넣으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빛나는 눈이었다.


“똑바로 봐. 네 결정이 만든 결과가 무엇인지. 끝까지 똑바로 지켜봐.”


그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거칠게 그녀의 바로 앞으로 가져왔다. 의자는 그의 손에 이끌려오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이미 천장에 걸려있던 올가미에 그는 주저 없이 목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는 곧 의자를-     

     



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 그러나 그의 기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며칠째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달려온 그는 긴장되는지 대문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담배가 타들어 가듯 그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을 터였다. 담배를 비벼 끈 그는 결심하듯 낡은 파란색 대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곧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대문으로 들어간 그가 발견한 것은 목을 맨 채 죽어있는 그녀였다. 예견된 일이었다. 심한 우울증의 그녀에게 그는 늘 장난스레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죽지 말라고, 죽으면 내가 죽여버릴 거라고. 그는 이제 그녀를 죽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녀를 죽이거나, 혹은 그녀의 또 다른 분신이었던, 그렇게 믿었던 자신을 죽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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