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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Jul 31. 2020

문장


-에 갇혀있다, 로 그의 소설은 시작된다. 기억하는 문장은 그렇다. 기억나지 않는 건 어디에 갇혀있는지다. A와 B와 C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그는 –에 갇혀있다, 로 시작됐다. -에 갇혀있는 그의 머리가 자라고 손과 발과 성기와 땀샘이 말랑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노래는 지루하지 않다. 리듬에 맞춰 딱, 딱 손톱이 꽂히고 목에는 주름이 그어진다. 눈엔 물기가 돌아 또르르 굴러가고 굴러가다, 내 발치에 탁, 걸린 그의 눈알을 실수로 밟아 버렸다. 터져버린 그 때에 마침 음악은 클라이막스다. Lucy Dacus – The shell.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어두운 스모그에 갇혀있다. 그의 문장을 이렇게 빌려 써도 괜찮은 걸까. 나의 문장을 써야 한다. 어딘가에 갇혀있는 나의 문장은-


사슴뿔이 창고에 갇혀 있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생각’의 다른 뜻이 ‘사슴뿔’인 것에서 착안한 글이었는데, 갇혀있는 생각들이 내 안에서 몸부림치고 생채기를 내던 때였다. 글쎄, 기록할 가치가 있을까. 가치 있는 것이 기록될까, 기록된 것들에게 가치가 생기는 것일까. 무엇을 위한 기록일까. 이 종이에 담배를 말이 피울 수 있다면. 숨을 마시고 내쉬면 스모그가 보인다. 생각의 스모그는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스모그가 내는 생채기를 바라본다. 창 밖엔 1층이 보이고, 안전망 너머의 세상은 귀엽고 안타까워서-


보호자분 왔어요, 산책할 시간이에요, 2시간 내로 돌아오셔야 해요, 커피 마실 시간이에요, 샤워는 하셨나요, 대변이랑 소변은 몇 번 보셨나요, 약 먹을 시간이에요, 소등 해 드릴까요, 내일 아침엔 피검사가 있어요, 소변을 이 솜에 묻히시고 이 컵에 담아 오시면 돼요, MP3는 녹음 기능이 없는 충전식만, 9시 반엔 MP3를 수거해가지요, 잠이 깨신 것 같은데 수면제 한 알 드릴까요, 이분은 스님이에요, 유튜브가 그렇게 돈이 된다면서요, 식사 시간이에요, 다시 약 드시러 오세요, 아- 해 보세요, 묶였네 결국엔, 괴성이 들리더니, 일주일 됐어요, 전 삼일이요, 시간 참 안 가네요, 조울증이에요, 저 아이는 아마도-


평생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는 –에 갇혀있다. -에 갇혀있는 그의 머리가 짧아지고 손과 발과 성기와 땀샘이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노래는 지루하다. 리듬에 맞춰 툭, 툭 손톱이 빠지고 목에는 자해흔이 그어진다. 바짝 말라버린 눈은 또르르 굴러가고 굴러가다, 내 발치에서 펑 터져 버렸다. 그 때에 마침 음악은 클라이막스다. Lucy Dacus – Night Shift.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내가 안정병동에 갇혀있다. 나의 시간을 이렇게 빌려 써도 괜찮은 걸까. 나의 삶을 써야 한다. 어딘가에 갇혀있는 나의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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