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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단비 Oct 13. 2020

우울한 삶 (1)

삵에게는 거울 속에 놓고 온

또 다른 자신이 있었다. 




“어떤 일 때문에 주로 우울한 것 같아요?”

뭐 이런 질문이 있나 싶었다. 우울에도 이유가 있나? 이유가 있어서 우울한 사람들도 병원을 찾아오는구나 싶었다.

“존재요. 제 존재적 문제로 우울한 것 같아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유 없는 우울. 반복적인 자살 충동. 의사는 제법 말을 차분하게 이어가고 나의 고통을 토로하지 않는 내 모습에 약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자살 충동 이야기를 하자 바로 약을 처방해주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충동 조절제 등을 처방받고 약을 먹기 시작하자 마치 안경을 낀 듯 세상이 선명해졌다. 이게 아프지 않은 나의 세상이구나. 


내게 병원을 추천해 준 친구는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으면 아프지 않은 상태를 알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아프지 않은 내가 궁금했다. 아니, 내가 진짜 아픈 건지 궁금했다. 너무 오래 가져왔던 느낌들이었기 때문에. 내 안의 텅 비어버린 공간. 15년 넘게 느껴온 감정. 더 어릴 때는 산발적으로 느껴지던 감정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게 그 공간은 숨처럼 내 옆에 붙어 있었다. 나의 우울에 대해 써 내려가는 게 어려운 이유다. 열네 살 무렵 당한 어떤 폭력이 내 우울에 크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폭력의 공통점은 사람을 도구화하는 것에 있다. 놀잇감으로, 화풀이 도구로, 성적 도구로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폭력은 시작된다. 나와 같은 무게의 존재가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대상’. 마치 종잇장을 찢거나 물건을 부숴버리는 것과 같은. 폭력의 대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도구화된 나 자신에 대한 대미지였다. 열네 살 무렵, 폭력을 당하는 그 순간 나는 내 자아가 나로부터 분리되는 느낌을 느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내 머릿속에서 ‘어, 어?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도구였다. 집에 오는 길에 바뀌어버린 세상의 색깔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더 어릴 때부터 나는 도구였다. 모성의 도구. 모부의 욕망을 담아내는 그릇.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많은 엄마들처럼 우리 엄마는 나한테 열성적이었다. 아니, 열광적이었다. 어쩌면 조금 특별한 수준의 열광이었던 것 같다. 내 기저귀나 코 푼 휴지 등을 아까워서 밖에서 버리지 못할 정도의 열광이었으니까. 6살의 나는 학원을 7개 다녔다. 발레, 미술, 피아노, 바이올린, 영어, 공방, 수영 등등……. 그 시절에 대해 기억나는 건 힘들다고 속으로 혼자 생각했던 기억, 코피를 자주 쏟았던 것, 어두워진 시간 엄마가 날 데리러 오던 것 등이 기억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바빴던 시간이 6살이었다. 어쩌면 이것도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존재의 무게가 누군가와 같지 않고, 누군가에게 귀속되어 버리는 경험. 폭력의 경험을 폭력이라 납득하는 일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누구나 폭력이라 납득할 수 있는 경험인 열네 살의 일을 폭력이었다고 스스로 인지하기까지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6년 전에는 아무도 그 일을 폭력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폭력인 줄 몰랐다.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엔 폭력이냐 아니냐 논쟁이 붙는 수준까지 왔고, 지금은 누구나 그 일을 폭력이라 부른다. 그 일이 어떤 폭력이었는지는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변화하는 인식이 나의 일을 폭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은 원래부터 폭력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나를 도구화한 그 가해자가 밉지 않다. 너무 오래 나 자신을 미워했고 탓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원래부터 그 부분이 고장 나 있던 사람인 걸까. 11살 무렵, 나를 성추행했던 가해자를 위해 그 사람이 죄를 뉘우치게 해 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던 나를 떠올려보면 난 원래 분노의 부분이 고장 나 있던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싶긴 하다. 


분노의 에너지는 무력감을 인정함으로써 가질 수 있다. 내 탓이 아니라는 인정. 외부의 어쩔 수 없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방어 본능. 나는 천성적으로 오만해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가 열네 살의 그 일을 처음으로 폭력이라고 불러줬을 때가 기억난다. 스물네 살 때의 일이었다. 그 말을 처음 듣고서는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는데, 슬픔의 눈물도 분노의 눈물도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내가 내 탓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의 눈물. 비뚤어진 시간 속에서 미움을 가질 기회는 이미 놓쳤다. 그저 날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기쁠 뿐이었다.


그럼에도 오만한 나는 여전히 그 부분을 깊게 들어가면 나의 탓으로 귀결시켜버린다. 그 이후의 일들까지도 전부. 분리된 자아는 남아있던 자아를 여전히 탓하고 있다. 왜 움직이지 못하는지, 왜 저항하지 못하는지. 나의 우울은 분리된 자아의 것일까, 남아있던 자아의 것일까. 자아가 분리된 텅 빈 공간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나를 지키지 못했고 나를 표현하지 못했던 그 공간. 그 공간을 만든 것은 여전히 밉지 않은 그 가해자의 짓이 분명하다. 존재가 아닌 도구로써 나를 바라보고 ‘사용’했던 그 사람의 탓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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