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May 25. 2024

2화 소율의 소울푸드

24시 무인라면가게

띠리리링~ 띠리리링~


새벽 6시 정각이 되면 어김없이 울리는 소율의 휴대폰 알람. 소율은 일말의 지체도 없이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걷고 창문을 반쯤 열었다.  

아직은 어둠 컴컴한 새벽하늘. 반쯤 열린 창밖으로 고개를 약간 내밀고 차가운 바깥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어보았다. 눈을 감고 약 3분간 반복하는 숨쉬기는 소율의 기상 루틴이다.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소율에게 이 시간마저 없다면 아마도 벌써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왜 3분이냐고 한다면....

3분에서 조금만 시간을 넘겨도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소율이 방에서 나와 욕실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엄마가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여러 가지 과일과 샐러드, 오믈렛으로 차려진 아침식사가 식탁에 놓이고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엄마도 출근준비를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6시 40분이 되자 교복을 입은 소율이 나오고 잠시 후 출근준비를 마친 엄마, 아빠도 식탁에 나와 앉았다.

오가는 대화 없이 오직 포크와 나이프가 식기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고요한 식탁에 울릴 뿐이다.



“오늘 재판 있다고 했지? 몇 시에 끝나?”


정적을 먼저 깨운 건 소율의 아빠였다.

아이패드를 보며 일정을 확인한 엄마의 건조한 한 마디가 이어졌다.



“오후 3시”


“그럼 끝나고 병원으로 좀 와. 당신이 코디네이터 면접 좀 봐.”


“그런 건 알아서 좀 하면 안 돼? 직원 면접까지 내가 봐줘야 하냐고. 내가 한가한 사람이야? “


“난 진료를 봐야지 면접을 어떻게 봐?"


“진료 잠깐 미루고 보면 되잖아. 면접 그거 얼마나 걸린다고.”


“예약 환자들이 줄줄인데 어떻게 잠깐 미뤄?”


엄마가 잔뜩 인상 쓴 얼굴을 지어 보였지만 주름하나 없는 탱탱한 미간과 이마는 찌푸려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역시 우리나라 의술의 힘은 대단하다. 소율의 엄마는 결코 마흔 중반의 여느 집 아줌마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것은 변호사라는 전문직 여성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꾸준한 관리와 정기적인 의술의 힘?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매사에 계획적이고 통제적이었다.

엄마의 치열한 자기 관리는 처음엔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보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무섭게 느껴졌다. 본인의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아빠의 스케줄과 소율의 모든 스케줄을 엄마는 꾀고 있었다. 새벽 6시부 시작되는 소율의 모든 일과마저도 엄마가 짜놓은 대로 움직여졌다.

엄마의 계획 속에서 소율이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분 남짓이었다.



“이번엔 오래 일할 수 있는 야무진 애로 좀 뽑아봐.”


엄마는 아빠에게 눈을 흘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윤소율!”


엄마의 부름에 목구멍으로 넘기던 과일 조각이 턱 걸리는 것 같았다.


“3모 준비 잘하고 있니? 2학년 첫 모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지? 정신 똑바로 차려. “


“네...”


“학교 내신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당연히 1등급은 기본인 거니까. 설마 그 학교에서 내신걱정까지 시키진 않

  겠지. 너는 그 학교에서 전교 1등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전국 모고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게 중요한 거야.“


더 이상 음식을 씹어 삼키다간 질식할 것만 같아서  소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세요. 먼저 나가서 정문 앞에 있을게요.”


엄마의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소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방을 낚아채어 나가 버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치동 학원가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를 살아온 소율은 옆을 볼 수 없는 경주마 같은 삶을 살았다. 일타 강사의 직강부터 필요하다면 고액과외까지 엄마는 소율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엄마가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인 냥.

소율이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율이 과학고와 특목고에 연달아 떨어진 것은 엄마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겠지.

파워 울트라 J형 인간인 엄마가 짜놓은 향후 20년간의 소율의 인생에 처음으로 어긋난 단추였다.



아파트 정문 앞에 서서 엄마차를 기다리던 소율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뿌옇게 낀 미세먼지만큼이나 소율의 앞날은 늘 흐렸다. 하지만 차라리 미세먼지가 자신의 인생보다 더 깨끗하다고 소율은 생각했다.

미세먼지처럼 잔뜩 흐린 자신의 앞날이 맑아지기 전까진 소율이 새벽마다 3분씩 들이마시고 내쉬는 심호흡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젠장, 라면 땡기네.”




소율이 매주 목요일마다 찾는 24시 무인라면 가게가 오늘만큼 시끌벅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것도 익숙한 교복들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야 이런 우연들이~ 우리 반 친구들이 다 모였네 여기.”


‘백준기? 그 아이돌 연습생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관종? 그 옆에 쟤는 작년 우리 반 최서우네. 헐, 엄태진까지.

 뭐지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홀로 조용히 좋아하는 라면을 먹는 유일한 시간을 오늘은 제대로 망쳐버린 것 같았다. 가장 매운 라면을 뜯어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소율이 너 매운 거 엄청 좋아하는구나. 난 맵찔인데, 헤헤.”


누가 물어봤냐고. 아이돌 한다는 녀석이 이렇게 헤퍼서야 어디 팬 관리하겠냐. 

소율은 백준기의 실없는 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뒤 라면을 들고 가능한 한 이 녀석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에이, 친구야. 이쪽으로 와서 같이 먹지.  혼자 먹으면 맛없어.”


“딱 봐도 혼자 먹고 싶은 표정이잖아. 넌 눈치도 없냐.”


엄태진의 냉랭한 한 마디에 백준기의 눈이 놀란 토끼 눈으로 변했다.



“그래? 왜 혼자 먹고 싶을까. 난 혼자 밥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데.”


아,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나만의 힐링 장소를 다시 물색해야 하나. 소율은 정말이지 저런 관종에 오지라퍼가 너무 싫다. 저들과 등지고 앉아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율은 조용히 목에 걸쳐놓았던 헤드셋을 다시 썼다.



“그래도 같은 반 친구들이 말을 거는데 대놓고 차단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음악을 켜려는 순간 엄태진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들려왔다. 애써 못 들은 척하고 라면 한 젓가락을 욱여넣었다.



'뭐야 저 자식은.'


같은 반이라고 해서 다 친구라고 부르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냥 같은 반 학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녀석들이다. 소율에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또래는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율이 어울린 무리들은 그룹 수업을 함께 듣기 위해 결성된 또래 아이들 뿐이었다. 친구라 생각한 이들에게 당한 배신 뒤에 남겨진 것은 처참하게 찢긴 소율뿐이었다. 친구라는 말 자체가 소율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단어였다.



‘뭐래. 아무나 다 친구래.’


소율은 음악의 볼륨을 키우려다가 아예 줄여버렸다. 저 녀석들이 내 뒤통수에다 대고 나를 또 뭐라고 씹어댈까 궁금했다.



“혼자 조용히 먹고 싶은 것 같아. 우리가 조용히 해 주자.”


한 마디도 못할 것처럼 생긴 최서우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뭐 정 그러시다면야. 근데 태진이 너 작년에 전학 오지 않았냐. 2학기 땐가. 우리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 작년에 전학 왔어.”


태진은 대답을 하면서도 내가 작년에 이 녀석 반에 전학을 왔었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래. 이제 기억이 난다. 무슨 체고에서 왔다고 담임이 소개했던 것 같은데."


“와, 태진이 너 운동선수였어? 어쩐지 키도 크고 멋있더라.”


서우가 동경의 눈빛으로 태진을 바라보았다.



“체고 다니던 녀석이 일반고로 전학이라~ 운동 그만뒀구나.”


“응.”


“운동하던 놈이 그만뒀을 때는 분명 무슨 사연이 있었을 테니까... 오케이, 더 이상 묻지 않겠어.“


태진과 서우, 준기의 라면이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태진이 남은 라면 국물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뒷정리를 하는 동안 서우는 작은 단무지 하나를 더 결제했다.



“먼저 간다.”


나가려던 태진을 준기가 붙잡았다.



“같이 가자. 우리도 나갈 거야. 윤소율, 맛있게 먹고 가라.“


헤드셋을 쓰고 있는 소율에게 굳이 큰소리로 말하고 나가는 백준기다. 둘의 뒤를 따라 나가던 서우가 소율의 테이블에 슬그머니 단무지 하나를 올려놓고는 재빠르게 나가버렸다. 

드디어 무인라면가게에 소율이 혼자가 되었다. 아, 이제야 혼자만의 평화가 찾아온 것인가.

그런데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소율이 바라던 바였는데... 그냥 갑자기 시끌벅적하다가 홀로 남겨지니까 기분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태진은 주말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서둘러 점퍼를 걸쳐 입었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주말 고깃집 아르바이트는 힘들긴 지만 고등학생인 태진에게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태진이 우유 배달하는 아파트 경비인 최 씨 아저씨 소개로 운 좋게 주말 일자리를 

할 수 있었다.



“우리 웬만해선 고등학생 알바는 안 쓰는데 최 씨가 하도 성실하다고 칭찬을 해서 받아 주는 거야. 운동했다

 고  하니까 힘도 잘 쓸 것 같고. 열심히 해야 한다.“


태진은 운동선수였던 이력이 이렇게 도움이 될 때가 있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태진이 일하는 식당은 한우 전문식당으로 꽤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태진은 주로 숯불을 테이블에 나르거나 식재료들을 옮기는 등의 힘쓰는 일을 담당했다.


가족단위의 외식이 많은 주말은 정말 눈 코 새 없이 바쁘다. 수도 없이 테이블에 뜨거운 숯불을 나르고

다 꺼진 숯을 옮기고를 반복해야 했다. 태진의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잠시 짬이 났던 태진이 생수 한 병을 들고 주차장 쪽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물 한잔 마시고 들어가려던 태진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고급 승용차 앞에 서 있는 저 아이는...  윤소율이었다.

그리고 마주 보고 있는 저 여자는 소율과 닮은 것을 보니 엄마인 것 같았다.



“식사 자리에서 쓸 때 없는 소리 하지 마. 넌 지금 자사고 티오 나서 서류 넣었고 합격했지만 전학 안 가기로 

  한 거야. 알겠니. 지금 그 학교에서 전교 1등이라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거라고. 큰아빠, 큰엄마들 다 그렇

  게 알고 있으니까.“


“왜 그래야 해요?”


“그걸 말로 해야 아니? 사촌들 죄다 과고, 영재고에 특목고 생들인데 애들 수준도 한참 떨어지는 일반고에 다

  니는 게 뭘 자랑이라고."


“저 그리고 전교 1등 아니잖아요. 거짓말하기 싫은데요.”


“식사자리에서 니 학교 얘기가 반찬거리로 식탁에 올랐으면 좋겠니? 여하튼 엄마가 말할 때 대답만 짧게 하고

  조용히 밥만 먹어.“


“그럴 거면서 왜 데리고 왔어요. 내가 집에서 혼자 먹겠다고 했잖아요.”


“오늘 니 큰 아빠 대표이사 취임 축하자리인 거 몰라서 그래? 그리고 현준이도 나온다고 하니까 오빠한테  

 의대 입시 팁이라도 이럴 때 알아와야지. 그건 엄마보다 네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물어봐야 하는 거 아

 냐?  네가 대학 가지 엄마가 가니? 얼굴 피고 따라 들어와. “


엄마에게 소율의 감정 따윈 언제나 중요하지 않았다.  사촌들과 급이 맞지 않아 한참 떨어지는 소율을 엄마는 예쁘게 포장지로 잘 싸는데만 급급했다. 엄마 뒤를 따라 들어가던 소율은 주차장 구석에서 물을 마시던 태진과 눈이 마주쳤다.



‘뭐지? 쟤가 왜 저기에...’


소율은 민낯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율과 눈이 마주친 태진이 못 본 척 뒤를 돌아 재빠르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 부장~ 5번 룸에 숯불 2개 들어가야 한다. 태진이가 하나 들고 따라가.“


“네!”


태진은 김 부장이라고 불리는 노총각 형님을 따라 숯불 하나를 들고 5번 룸으로 입장했다.

두 개의 긴 테이블이 붙어 있고 숯불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두 개가 있다. 태진은 김 부장을 따라 한 개의 구멍에 조심스럽게 숯불을 넣었다. 그러다 마주친 얼굴.

테이블 맨 구석자리에 소율이 앉아있었다. 태진을 보고 놀란 소율의 얼굴에 더 당황한 태진이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때문인지 아니면 보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들킨 것 때문인지 태진의 얼굴이 더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전 01화 1화 아지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