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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Jun 08. 2024

4화 우리도 꿈을 꿀 수 있을까

24시 무인라면가게

“태진아, 어여 와 아침 먹자.”


“네, 곧 나가요.”


할머니 목소리에 태진은 교복셔츠를 서둘러 걸쳐 입고 나갔다.

갓 지은 밥과 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오늘은 태진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인 진미채 볶음도 있다.

조촐한 밥상이지만 태진은 할머니가 지어준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몇 년 전까진 엄마의 밥상이 최고였지만 이제 세상엔 없는 엄마였다. 태진은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평소엔 바쁘게 사느라고 잊고 지냈는데 문득 문득 엄마가 떠오를 때가 있다. 얼른 국을 한 수저 떠서 밥과 함께 눈물을 삼켰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라.”


“네...”


“새벽마다 우유배달 하기 힘들지.”


“안힘들어요. 운동 삼아하는 건데요 뭘. 저 운동 잘했잖아요.”


“에휴... 그랬지. 우리 손주가 운동 참 잘했지. 그래서 그 어디냐 유명한 고등학교에서도 우리 손주를 데리고

  갔는데... “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쉬셨다.



“그 잘하던 아이를... 할머니가 우리 손주한테 면목이 없다.”


“할머니가 왜요.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느그 아빠가 그 돈 가지고 허튼짓만 안 했어도 지금쯤 그 학교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 건데.

  다 내 죄다. 내 죄... “


아빠 얘기에 태진은 들고 있던 수저를 상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엄마가 태진에게 남긴 목숨 값인 보험금을 주식으로 다 날리고  아빠는 홀연히 사라졌다. 아이스하키 유명주였던 태진은 체고에 진학한 지 5개월 만에 일반고로 전학 가야 했고 태진 인생의 전부였던 운동과도 그렇게 작별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집안에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죄다 중고로 팔았지만 아이스하키 스틱과 스케이트만큼은 차마 팔 수가 없었다. 언젠가 저것들도 다 팔아버릴 거야... 언젠가....

하지만 태진은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니 아빠얘기 하는 게 아닌데 할미가 미안하다. 얼른 먹고 학교 가야지.”


할머니를 생각해서 태진은 다시 수저를 들었다.



“참, 태진아.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 하는 게  있다고 해서.... 그거라도 나가볼까 하는데... “


“할머니, 제가 알바도 두 개나 하는데 할머니가 왜 그런 걸 해요.”


“집에만 있기도 답답하고 해서... 그냥 나도 운동삼아 하려는 거야.”


“....”


“운동 삼아 쉬엄쉬엄 나가보고 힘들면 안 하면 되지.”


“알겠어요. 힘들다 싶으시면 절대 하지 마세요. 아셨죠?”


“그래. 알았다.”




불이 환하게 켜진 24시 무인라면가게.

오늘은 서우와 준기 둘 뿐이었다. 둘은 라면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정적을 먼저 깬 건 의외로 서우였다.



“넌... 언제부터 다녔어 병원?”


“얼마 안 됐어. 넌?”


“난 좀 됐어...”


“그렇구나...”


또다시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이 짧은 침묵의 시간이 마치 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야, 라면 불겠다. 빨리 먹자.”


“그래.”


둘은 그제야 웃으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근데 준기 너는 좀 의외였어. 늘 밝고 활기차고, 또....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 너는 그늘도 없고...

 그런데 왜..."


“그러게 말이야. 나도 내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는 거 아니냐.

 근데 우리 연습생들 중에 의외로 정신과 약 먹는 애들 많다 너. 연습생뿐이겠냐.

 아스테르 멤버들 중에도 있어. 회사에서 쉬쉬 하지만 내가 다 봤지. 이쪽 일이 아무래도 스트레스도 많고

 하니까... “


“난... ”


서우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자, 작년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 보호병동에...”


준기는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심했어. 집에 있는 게 지옥 같더라고. 그냥 집만 아니면 어디든 편안할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입원시켜 달라고 사정했지... “


“그랬구나... 근데 그거 별거 아니라더라. 내가 어느 책인가에서 봤는데 우리가 팔 부러지면 정형외과 가고  배

 아프면 내과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 가는 것도 당연한 거래. “


“맞아. 근데... 우리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 내가 집이 편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엄마, 아빠 때문인

 것 같아. 나 때문에 두 분이 항상 싸우시거든. 어릴 때부터 그랬어. “




가난한 집 아들이었던 서우 아빠는 공부를 곧잘 했지만 어려운 형편에 대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했다.

빠듯한 살림에 장남인 큰아빠만 겨우 대학을 보냈고 서우 아빠는 어쩔 수 없이 직업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라도 대학에 가고 싶었던 서우 아빠는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고 다닐 테니 첫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만이라도 도와달라고 할머니께 간절히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우 아빠가 힘들게 벌어다 준 돈은 모조리 큰아빠 뒷바라지에만 쓰셨던 할머니.

서우 아빠는 그 일로 지금까지 할머니를 원망하며 살고 있다. 그 길로 집을 나온 아빠는 몇 년간 이를 악 물고 돈을 모았고 작지만 아빠만의 카센터를 차릴 수 있었다.

지금도 할아버지 제사 때만 겨우 할머니 댁을 갈 뿐 명절에도 카센터 문을 닫을 수 없다면서 엄마와 서우만 보내는 아빠였다. 그래서일까.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아빠는 어릴 때부터 서우에게 말해왔다. 서우는 그런 아빠와 늘 부딪혀야 했다. 아빠 눈에 서우는 늘 답답하고 부족한 아들이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축 처진 어깨는 남자답지 못하다 했고 중위권의 어중간한 성적표는 아빠의 성에 절대 차지 못했다.



“아빠가 기름때 묻혀가며 뼈 빠지게 벌어서 학원비 대줬더니 이 따위 성적을 받아와?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 애 성적이 이리될 때까지 모르고 뭐 했어? “


서우를 시작으로 불똥은 항상 엄마에게로 갔다.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 소통이 되지 않았고 서우의 꿈, 서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관심두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서우를 위로해 주고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가 음악이었다.

오랫동안 음악을 들었고 어설프지만 곡을 만들어보면서 서우에게도 작은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아빠 몰래 한 짓이 실용음악학원을 등록한 것이었다. 물론 엄마의 도움이 있었지만 서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라면 국물을 들이켜던 준기가 그릇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근데 넌 항상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더라. 너도 음악 듣는 거 좋아하나 봐? “


“응... 무지...”


“아 그러고 보니까 윤소율 걔도 늘 헤드셋 끼고 다니잖아? 내가 지난번에 소율이 책상 옆을 지나가는데

 헤드셋에서 음악소리가 그냥 쩌렁쩌렁~ 와 고막 다 나가겠던데. “


“저번에 물어보니까 헤비메탈 좋아한다고 했어.”


“헐. 음악취향은 생긴 거 하고 정 반대네. 넌 어떤 음악 주로 들어?"


“난 가리지 않고 다 들어. 요즘은 컨트리 음악에 꽂혀서  옛날 노래들 찾아서 듣고 있어. 처음엔 너무 올드하다

 고 생각했는데 계속 듣다 보니까 마음이 너무 편해지더라고. 너도 들어봐. 정말 좋아. “


“이야~ 최서우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줄은 몰랐는데? 너 본 이후로 이렇게 신나서 말하는 거 처음 본다. “


“내, 내가 그랬나. 헤헤... 근데 요즘 너 집에 자주 오나 봐. 여기서 자주 보는 걸 보면. “


“아... 나 숙소에서 나왔어. 그래서 요즘 집에서 다녀.”


“왜? 아...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어봤지...”


“아니야. 괜찮아. 나의 데뷔도 위태위태하고 연습생 생활도 불안 불안하고... 뭐 그래서 그냥 나왔어. 앞으로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까. 나는 내 인생이 너무 궁금하다. 너는 궁금하지 않냐 니 인생이? “


“내 인생...”




태진이 탄 버스가 신도시로 막 들어섰다. 옆 동네지만 태진이 사는 동네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하늘 높이 솟은 고층아파트들과 깨끗한 호수공원, 넓은 도로와 상가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동네가 함께 붙어 있다. 어딘가 모르게 더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괜한 자격지심일까.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태진은 벨을 누르고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주말마다 가는 식당 아르바이트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했다. 그냥 오늘은 이 동네를 조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유는 없었다. 소율이가 사는 동네라서 더 궁금한 건 정말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곳저곳을 걷다 보니 버스에서 멀리 바라보이던 고층 아파트 단지 앞까지 와 있었다. 몇 층일까.

한없이 위로 뻗어 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보면서 저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봤다.

태진도 그런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멋진 집도 사드리고 멋진 차도 사드려야지. 나는 꼭 잘 될 거야. 다른 걱정 없이 오직 운동만 하면서 살던 때가 있었다.

언제부터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태진만 남겨두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엄마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가 태진의 몫으로 남긴 보험금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연락두절이 된 아빠 때문일까.

태진의 속에 끓고 있는 이것은 분노일까, 슬픔일까, 외로움일까...



“아씨, 이 할머니가 진짜 왜 사람 가는 앞길을 막고 있어.”


그때 태진의 복잡한 생각들을 한순간에 파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 미안해요. 내가 리어카 운전이 아직 서툴러서...”


“서투르면 하지 말아야지. 아, 빨리빨리 치우라고 좀”


아파트 상가 앞 길가에는 리어카에서 쏟아진 폐지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행동이 빠르지 못한 할머니가 하나씩, 하나씩 그것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아, 존나 느려. 할머니, 그렇게 해서 내일까지 치우시겠어요.”


“할머니!!”


태진이 달려갔다.



“할머니, 여기서 대체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이건 다 뭐예요.”


태진보다 더 놀라고 당황한 할머니의 표정.



“태, 태진이 너. 니가 여긴 어떻게....”


“일단 이것들부터 치우고 말해요.”


“와우~ 이게 누구야. 엄태진?”


최강호 무리들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태진은 폐지들을 리어카에 옮겨 담았다.

마지막 남은 폐지 하나를 주우려는 순간 폐지를 밟아버리는 최강호의 발이 보였다.



“반 친구를 봤으면 아는 척을 좀 하셔야지.”


“친구? 누구?”


태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친구가 어디 있는데 여기?”


“하, 이 새끼는 뭘 믿고 이렇게 까불지? 너 왕년에 운동 좀 했다며?

 너 이 새끼 지난번에도 한판 뜨자는데 도망가고, 오늘 잘 만났네. 오늘 끝장을 한번 보자. “


최강호가 달려들면서 태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태진은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진의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강호는 약이 잔뜩 올랐다. 그때 할머니가 강호의 손을 붙잡았다.



“학생 이러지 마. 말로 해요. 우리 태진이랑 같은 학교 다니나 본데 친구들끼리 이러면 쓰나.

  이거 놓고 말해요. “


“아 씨발, 저리 가라고. 늙은이는 좀 빠지시라고.”


최강호가 할머니 손을 뿌리치며 밀치자 할머니는 힘없이 길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할머니!!! 괜찮아요? 이 새끼가 진짜.”


태진의 눈이 갑자기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최강호에게 달려들기 위해 일어서던 그 순간,



“모두 스탑!!!!”


소율이였다.



“자, 여기까지. 오케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내리며 소율이 강호에게 다가갔다.



“최강호가 처음 할머니한테 시비 거는 것부터 조금 전에 할머니 밀친 것까지 모두 촬영했고 지금 바로 신고한

 다. 우리 집 바로 이 아파트고, 우리 엄마 변호사고. 신고와 동시에 변호사도 필요할 것 같으니까 부른다.

 자, 선택해. 할머니께 사과드리고 조용히 가던 길 갈래, 아니면 112 버튼 누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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