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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18. 2020

하지, 하삐,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이들의 증조할아버지

"하지야~"


 걷기보다 말이 빨랐다는 나, 김리나 어린이는 꽤 완벽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 때까지도 할아버지를 하지라고 불렀다. 정확히는 '하지'가 자기 친구 이름인 양, 끝에 '야'까지 꼭 덧붙여서.

 맞벌이셨던 부모님을 대신해서 나를 키워주신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내가 더 어렸을 때 육아를 전담해주시다 여러 활동을 하러 다니셨기에, 기억이 닿는 순간부터는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할머니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거의 항상 집에 계셨다. 아침식사를 물에 말아 간단히 하시고, 막걸리를 사러 다녀오신 다음, 바둑을 두시거나 테레비를 보시는 것이 일상의 전부셨다. 그랬기에 유치원이건, 학교건 갔다 오면 집에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하지야~" 뒤에 주로 붙었던 말은 "하지야~ 이제 그만 집에 가자!"였다. 동네 친구분과 약주를 즐기시는 할아버지 옆, 세발자전거를  어린 내가 "하지야~"를 외치던 모습에 대한 증언들로 미루어 보아, 할아버지도 완벽하고 헌신적인 육아를 하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왜인지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원망 한 점 없이, 그저 짠하게 사랑받은 기억만 떠오른다.


 나는 2월 말에 태어난 빠른 년생으로 거의 1년이 꼬박 차이가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입학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꽤나 늦된 아이였고, 유치원 때는 한 아이의 괴롭힘에 반항 한 번 못하고 당하곤 했다. 스티커를 사 오라느니, 간식을 사 오라느니 같은 자잘한 셔틀을 시키던 그 아이의 심부름을, 나는 막걸리를 한잔하신 할아버지의 주머니를 빌려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2만 원짜리 웨딩피치 인형을 사 오라는 간도 큰 요구를 받았다. 할아버지의 주머니를 찔러 2만 원짜리 인형을 사서 품에 안고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노을 아래서 시무룩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인형이 야, 꽤 비싸네~"

 할아버지라고 2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었을 텐데, 손녀가 갖고 놀 거란 생각에 그래도 기분 좋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언젠가, 자전거를 타다 다치신 다리 때문에 절룩거리며 걸으시는 할아버지 옆에서 인형을 안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 미안해요. 이거 내가 갖고 놀 거 아니에요...'

 이런 기억이 왜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말이 많지 않으신 편이다. 보통 조용조용 미소만 지으신다. 장염 때문에 바지에 그만 똥을 싸고 엉엉 울면서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씻겨주셨을 때도, 생리가 샌 팬티를 어쩔 줄 몰라 대충 담가만 놓은 걸 손수 빨아주셨을 때도 괜찮냐는 말만 하셨다. 나랑 동생이 우겨서 베란다에서 키우게 된 두 마리 토끼의 밥을 주우러 함께 동네 장터를 돌아다녔을 때도, 그 토끼가 똥을 너무 많이 싸서 결국 베란다 청소를 매일같이 하셔야 했을 때도.

 하지만 술이 들어가시면 평소에 못하는 말을 쏟아내시곤 한다. 중학생이 되고 첫 시험기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스트레스를 팍팍 받으며 책상 앞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슬렁슬렁 술냄새를 풍기며 오셨다. 그리고 책상 위에 만화 괴짜 가족 1권을 내미셨다.

"만화방에서 제일 웃긴 거 빌려달라고 했다."

"할아버지! 저 이거 볼 시간 없어요!"

중학생 김리나는 술 취한 할아버지가 싫어 쌩하게 쏘아붙이고 책상 앞으로 돌아 앉았다. 지금도 그때도 알고 있다. 시험기간이라고 책만 보고 있는 손녀가 너무 고생스러워 보이셨던 거다. 나는 이미 괴짜 가족은 초등학교 때 다 읽었는데... 점점 늙어가는 할아버지를 볼 때, 언젠가는 다가올 할아버지와의 작별을 상상하게 될 때마다 생각한다. 저 중학생 김리나 머리를 쥐어박고 돌아앉혀 주고 싶다고.


며칠 전, 둘째 출산예정일이 지나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동생들이나, 고모들까지 다 인사도 드리고 왔고, 의식이 왔다 갔다 하신다고. 둘째가 이래서 아직 안 나왔구나 싶었다. 출산 후에 신생아를 돌보면서는, 할아버지가 어디에 계시건 얼굴을 뵈러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꺼져가는 불꽃처럼만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할아버지는 눈을 실처럼 뜨시고, 누군지 대답해보시라는 질문에 '리나'라고, 겨우겨우 대답해주셨다. 짧게 면회를 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떨어지지는 못하고 마스크 안에 고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간절히 기도했고, 다행히 할아버지는 고비를 넘기셨다.

우리 첫째아이는 시아버지, 우리 아빠, 할아버지를 모두 구분 없이 '하삐'라고 부른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다 '하삐'인 셈이다. 우리 하삐가 오래오래 살아서 첫째도 둘째도 증조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다.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사다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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