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거지'라는 말을 들어보셨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빌라에 사는 아이들에게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이라는데, 어찌나 이 말이 충격적이었던지 내 머릿속에 아주 콕 박히고 말았다. 그렇게 박혔던 말은 결국 남편 앞에서 '아니, 빌라 거지라는 말이 있대!!' 하며 툴툴대는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한없이 즐거워 보이는 사람이지만 가끔 날카로운 데가 있는 남편은 '그 말이 꽤나 신경 쓰이나 봐.'하고 정곡을 찔렀다.
그렇다. 내게 이 말이 이다지도 마음에 박혀 버린 이유는 우리 가족이 빌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도보 거리에 지하철역이 없는 경기도 변두리 지역, 자그마한 방 두 개짜리 빌라에.
괜히 그 말을 곱씹어본다. 애들이 한 말이라고 애들이 만들었을까.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애들이 주워 삼킨 후 뱉은 말일 게다. 똑같이 낡아가는 입장에 왜 아파트값은 오르고 빌라값은 웬만해서는 오르지 않는가. 한국 부동산에 대한 고찰까지 마무리하고 나서야 나는 우리집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빌라거지라는 말에 대해 남편에게 툴툴대며 꺼낼 정도로는 이 말을 신경 쓰고 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집을 사랑한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대중교통이 불편하지만 덕분에 몇 년 동안 장롱면허이던 내가 운전을 빨리 배운 것도 우리집 덕분이다. 게다가 우리집은 한강뷰는 아닐지언정 맑은 날이면 호수처럼 보이는 비닐하우스 뷰를 가지고 있다. 여름이면 감성적임을 넘어 체감상 70db은 되는 우렁차게 울어대는 개구리가 가득한 우리집 앞 저수지와, 정돈되지 않은 집 앞 내천은 항상 교외로 여행 온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교외이기도 하다.)
우리가 딱 얼굴을 외울 수 있을 만큼의 세대가 살아서 이사 후에 모든 집에 딸기를 돌릴 수 있어서, 우리 아이들의 층간소음에 대해 한 분 한 분 사과하고 양해를 구할 수 있어서도 좋다. 1층에 카페를 운영하는 신혼부부와 가끔씩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것도, 화장실 창문 맞은편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소리도 좋다. 아담한 집이라서 자타공인 맥시멀리스트였던 우리가 꼭 필요한 것만을 꼭 마음에 들게 넣으려고 변해가는 모습도 사랑한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우리가 꾸린 보금자리라서, 집 곳곳에 우리의 웃음이 묻어있어서 우리집을 사랑한다.
이렇게 쓰다 보니 괜히 우쭐해진다. 빌라거지라니.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의 소리다.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