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혼자라고 느꼈던 때가 있다.
인싸 중에 아싸,
아싸 중에 인싸 같았던 나는
외고와 연세대를 다니면서
모범생파라고 하기엔 노는 걸 너무 좋아했고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다.
누군가는 나보고 완전 E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나보고 완전 I 같다고 했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었다.
02
많은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그리고 살면서 직접 느낀 행복의 비결 중 하나는
바로 '소속'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나랑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 몇 명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살면 그게 행복이다.
그런데 나는 내 취향이라는 게 딱히 없었고
그래서 어디를 가도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뭐든 애매한,
회색지대 같은 내가 싫었다.
03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창문으로는 작은 산이 보이는데
계절마다 그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나무로 푸릇푸릇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며
겨울에는 눈이 하얗게 쌓인다.
창문 밖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
그 변화무쌍한 모습이 좋았다.
04
나도 그렇지 않을까.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애매하고 복잡한 사람.
하지만 다른 말로는
그 모든 것을 가진
사계절 같은 사람.
그게 내가 아닐까.
그게 나의 장점 아닐까.
05
지금도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계절을 제일 좋아해?"
라고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그냥
사계절이 좋아."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려 하지 않을래.
사계절 같은 나 그대로를
좋아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