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육안으로도 대기 나쁨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럴 땐 주저 없이 마스크를 써 기관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괜찮아 보이는 날인데도 미세먼지가 안 좋은 날에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마스크도 잘 쓰지 않고, 내가 미세먼지를 마시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 것은 판단하기 어렵다. 먼지차별(microaggression)도 그래서 어렵다. 미세먼지처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별을 먼지차별이라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명백한 차별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차별해도 괜찮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에 조심한다.
그러나 먼지차별은 미세하고 미묘해 차별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고 의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세먼지에 민감한 사람이 좋아 보이는 날씨에 목 아픔을 호소하면 예민하거나 면역이 약하다는 취급을 받듯이, 먼지차별에 반응하는 사람에게는 "프로불편러" 딱지가 붙곤 한다.
최근, 한 유튜브 예능의 자막 담당자에게 프로불편러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연예인이 "유모차"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유아차"로 바꿔 자막을 냈기 때문이다. 유모차에는 엄마(母)의 의미만 담겨, 여성에게 육아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국립국어원에서 유아차 표현을 사용하길 권고한다. 하지만 '유모차'도 표준어이기 때문에 "틀린 단어도 아닌데 왜 바꾸냐", "과도한 언어 검열이다"라는 댓글들이 많았다.
"과도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라는 이야기는 '정도'의 문제다.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는 대상이 다를 뿐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는 역치, 감수성이 개개인마다 다르다. 따라서 다양성과 차별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것이 감수성이다. 성희롱도 피해자가 불쾌함을 느꼈는지에 따라 성립여부가 달라지듯이, 내가 차별 의도가 없었어도 상대방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먼지차별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맥락에 따라, 개인의 감수성에 따라 차별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따라서 비의도적,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양성 존중의 스펙트럼을 최대로 넓힐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이런 언행을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의도와 상관없이) 차별하지 않기 위해 나와 관계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알고자 해야 한다.
혹자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말을 걸지 않고 친해지지 않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나와 비슷한 삶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만 만난다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른 배경, 가치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회사와 기타 조직에서는 이런 먼지 차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불편함을 감수해 가며 먼지차별을 신경 써야 하는 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다양성 연구들이 밝히듯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조직 생활을 할 때 구성원들이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끼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만약 다양한 개개의 맥락을 전부 알 수 없어 막막하다면, 상대방이 어떤 부분에서 불쾌할 수 있을지 개별적으로 접근하고 "~한 이유로, 혹시 불편하지 않으면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와 같이 쿠션어를 사용해 상대방의 의사와 감정을 살피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처럼 개인의 다양성 감수성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조직문화 측면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미세차별을 당하는 당사자가 본인의 불편함을 표현함으로써 조직 내 먼지차별 요인들이 교정될 수 있는데,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쉽게 말할 수 있으려면 심리적 안전감이 확보돼야 한다.소통이 문제 해결의 수단이라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건 조직문화다. 내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느낌, 다양성이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미세차별을 줄이는 운동이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삶에서 "굳이" 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자. 말 안 해도 알겠지 생각하지만 상대를 위해 굳이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건강을 위해 굳이 계단을 이용하기도 하며, 팀원들을 위해 굳이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다. 굳이의 사전적 의미처럼 편함을 포기하고 또는 안 해도 되는 것을 추가 에너지를 들여서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할 때는 그만큼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 미세차별을 굳이 공부하고 굳이 줄이려고 하는 것도 결국,나를 위해서이고(나도 어떤 차원에서는 필히차별의 대상이 됨), 조직을위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함께불편함을 굳이 감수해 보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