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가 2시 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오전부터 시내 카페에서 지은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지은이가 500번 버스에서 내렸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지만 어색함은 3% 편안함 97%였다. 지은이랑 처음 만난 게 대학교 신입생 OT 때였는데 둘 다 벌써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있는 반찬 다 꺼내놓고 메인으로는 낙지볶음. 생각보다 매워서 울면서 먹었다. 설거지하고 짐 정리하고 나니 벌써 8시.. 하루가 벌써 다 갔다. 내일 어디를 갈까 하다가 우도로 낙점. 원래 내일부터 시작되는 유채꽃 축제를 가려고 했지만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우도를 가기로 했다. 가는 방법, 볼 것들, 탈 것들, 먹을 것들을 검색하다가 어느새 밤. 내일부터 제주 여행 시작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먼저 씻고 아침을 맞았다. 원래 늦게 자고 10시 즈음 일어난다는 지은이도 8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지은이가 준비할 동안 나는 보리빵과 커피를 준비했다. 지은이는 보리빵이 신기한 맛이라고 했다.
하늘이 좀 우중충하지만 날씨예보에서 좋다고 했으니 믿는 수밖에. 차가 좀 막혀서(제주도가 은근히 교통체증이 심하다) 10시 30분에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10시 40분에 710번 버스에 올랐다. 따로 표를 사지 않아도 교통카드 찍고 타니 환승이 되었다. 한참을 달려 12시 4분에 성산포항 종합여객터미널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정신없이 머리를 헝클어대고 숨을 못 쉬게 방해했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람이 더 세다. 우도로 가는 배는 왕복 11000원(나중에 우도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우도를 왔다 갔다 하는 배들의 주인이 대개 우도 할머니들인데 연봉이 2억 정도? 된다고). 신나서 배에 올랐다.
우도도 식후경. 지은이가 인터넷에서 찾은 맛집.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흑돼지랑 한치 볶음을 시켰다. 이 식당은 볶음을 다 먹은 후 만드는 한라산 볶음밥이 유명하다. 제주도와 한라산, 우도의 탄생을 이야기해주시며 볶음밥 모양을 만들어주신다. 둘이서 밥 두 공기까지 싹싹 긁어서 먹었다.
배를 채우고 전기자전거를 빌려 우도를 누볐다. 바람이 미친 듯이 얼굴을 때렸지만 신나서 달렸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따라 우도를 한 바퀴 다 돌았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우도의 바람을, 유채꽃을,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끽하고 우리는 5시 30분 배를 타고 성산항으로 돌아왔다. 제대로 바람을 즐겼다.
셋째 날도 어김없이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차가 막히지 않아서 생각보다 빨리 동문시장에 도착했다. 나는 이미 한 차례 동문시장 먹거리를 시도했던 터라 지은이에게 이것저것 소개했다. 동문시장 초입에 내가 좋아하는 빙떡이 있길래 지은이에게 추천했는데 하필 그 가게가 엄청 짜게 간을 했다. 이 맛이 아닌데... 엄마가 해준 빙떡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한라봉 빵, 초콜릿, 오메기떡 등을 시식했다. 지은이도 내가 먹었던 먹거리들을 사 먹으며 동문시장을 즐겼고 지인들에게 줄 한라봉 타르트도 구매했다. 한 시간도 안 걸려서 동문시장 투어가 끝났다. 다음 행선지는 이호테우해변이다.
몇 번 버스를 탈지 계획도 없이 그냥 버스 기사 아저씨께 이호테우해변 가는지 묻고는 37번 버스에 타버렸다. 그리고 현사마을에서 내렸다. 바다가 보이니까 그냥 바다 쪽으로 가다 보면 바다가 나오겠지. 무작정 걸었다. 그랬더니 정말 해안가에 도달. 신나서 뛰어 들어갔다. 모래에 글씨 쓰고 놀다가 화장실도 가고 쉬기도 할 겸 바로 앞에 있던 카페에 들어갔다. 해안가 카페에서 책 읽기가 오늘의 계획이었기 때문에 각자 읽을 책을 가져왔다. 1시간 정도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이호테우 해변은 목마 모양의 등대가 유명하다. 그래서 우리도 빨간색 등대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예뻤는데 바로 앞에 가니 그냥 커다란 빨간색 덩어리였다. 오히려 에메랄드 빛과 청색이 물결에 일렁이는 바다가 더 예뻤다. 멀찍이 떨어진 바닷가에선 등대를 바라보고 등대를 보러 거기까지 걸어가서는 막상 등대가 아닌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러니.
그 후, 우리가 향한 곳은 올레 17코스. 도두봉에 가기 위해 선택한 코스였다. 해안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었다.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는 코스인지 사람도 별로 없었고 표시도 허술했다. 그래도 이호1동 서마을에 들어서자 알록달록 예쁜 벽화들이 사진 찍을 재미를 선사했다. 도두봉도 생각보다 더 예뻤다. 올라가는 길에 핀 벚꽃과 유채꽃이 햇빛 조명을 받아 더 화사하게 반짝거렸다. 정상에 오르자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두봉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배가 고팠다. 도두봉에서 내려오자마자 무작정 택시를 탔다. 동문시장으로 돌아가 밥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아 저희 그냥 여기서 내릴게요!"하고 내려버렸다. 꼭 동문시장에 갈 필요는 없겠다는 판단은 내렸는데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택시에서 내린 것이다. 그래도 내린 곳이 다행히 용두암 근처였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해산물 모둠과 전복회국수, 게우밥을 음미했다.
배도 불렀겠다 소화시킬 겸 용두암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용두암보다는 용연구름다리와 용연계곡이 장관이었다. 용연계곡은 마치 중국 영화의 배경 같았다. 새들이 뾰로롱 뾰로롱 지저귀고 나무와 풀들이 우거진 풍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8시 반. 매우 피곤했지만 베이킹을 해보고 싶다는 지은이 말에 바로 베이킹 돌입. 씻지도 않은 채 반죽하고 굽고 먹기까지. 믹스 반죽은 언제나 옳다. 실패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맛이다. 쿠킹 툴이 없는 관계로 모양내는 것은 못 했으나 직접 굽고 만들어 먹으니 재미있었다. 오늘도 매우 알차게 돌아다니고 매우 알차게 먹고 시간도 알차게 보냈다. 지은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려 했는데 오히려 내가 추억을 얻고 있다. 감사하다.
넷째 날이다. 오전에는 각자의 시간을 갖고 오후에 한라수목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은 전혀 다른 코스로 한라수목원을 돌았다. 처음 보는 길이었다. 대나무도 보고 희귀 식물관도 들어가 봤다. 이전에 왔을 때 활짝 폈던 꽃들 중에 이미 시들어버린 꽃들도 있었고 그때는 못 봤던 목련이 시원하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개나리를 봤다. 유채꽃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내게는 노란 꽃의 대명사가 이제는 개나리가 아니라 유채꽃이 되었다. 또 연못? 같이 물이 고여있는 곳에 가봤는데 여러 개의 알들이 꽈리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청 많아서 약간 징그럽기도 했는데 궁금한 게 더 컸다. 일단 사진을 막 찍은 다음에 나중에 검색을 통해야 그 알이 도롱뇽 알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이 도롱뇽 산란기란다. 그리고 엄청 많은 양의 알을 낳는다고 하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신기했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불법 포획이 자행되고 있어 많은 도롱뇽이 죽고 사라진다고 하는데, 내가 본 이 아이들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가고 싶다는 지은이를 위해 표를 샀다. 컴퓨터에 큰 관심이 없던 터라 혼자였으면 가지 않았을 곳이다. 별거 있겠어? 8천 원이나 내고 가야 하나? 했는데 결론= 가길 잘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말 재밌게 놀았다. 지하 1층과 2층, 3층 곳곳에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있었다. 예전에 TV랑 연결해서 즐겼던 콘솔게임들에서부터 최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VR 게임까지. 6시에 폐관인데 마지막에 슈퍼마리오 게임 왕까지 깨보겠다고 그 자리에 껌딱지처럼 앉아 있다가 5시 59분에야 일어났다. 추억의 게임 소닉까지. 게임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있고 싶을 곳이다.
사실 컴퓨터 박물관보다는 게임 박물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컴퓨터의 시초, 변천사, 그리고 메인보드를 구성하고 있는 사운드카드, CPU, 그래픽카드 등에 대한 설명도 들었고 입출력 장치들의 변화도 보았다. 그래픽과 소리 등 이런저런 요소의 발전은 게임의 발전과 맞물릴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VR의 등장으로 앞으로 게임계에 어떤 혁신이 있을지 기대되기도 우려되기도 한다.(많은 게임들에 폭력적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들어가기 때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말 신나게 놀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혼자였으면 안 갔을 곳이었는데 지은이 덕분에 재밌는 곳을 발견해서 고맙다.
오늘 저녁은 메밀 자장면 만들어 먹기! 우리가 첫날 장 봐온 것을 다 쓰기 위해서는 오늘 자장면을 해 먹어야 한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이웃집 강아지 신비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항상 이 구간에서 그냥 갈 수가 없다. 너무 귀여운 이 생명체를 어찌 그냥 지나가리오. 한 번 쓰담 쓰담하고 왔다. 신비 주인은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집에 있는 메밀면과 있는 채소를 다 털어(봤자 애호박과 파뿐)서 자장면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매운맛이 강했다. 눈물 콧물 흘리며 먹었지만 맛있었다. 뭐든지 만들어 먹으면 맛있는 법이다. 벌써 마지막 밤이다.
지은이가 떠나는 날이 되자 비가 내린다. 그동안 계속 날이 좋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하루는 이렇게 비 오는 제주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9시 10분 비행기라서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나는 지은이를 위해 마지막 커피를 내렸다. 아침(빵&커피지만)은 먹이고 보내고 싶은 마음에 씻는 것을 포기하고 부랴부랴. 7시 20분에 택시를 불렀지만 40분이 되어서야 택시가 왔다. 그래도 무사히 체크인을 했단다.
비가 부슬부슬 바람도 장난 아니게 분다.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걸었다. 네덜란드에서처럼. 스타벅스에 들어가 습관처럼 달달구리를 주문했다. 들고 간 책을 읽으며 세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다시 혼자 보내게 된 밤. 괜히 TV를 켜 놓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