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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28. 2021

풍요로운 물소리에 충만해진 내 마음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고 나서부터 매일 집에서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나 많이 걷는 게 가장 좋다고 해서 핸드폰에 만보계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여 최대한 매일 만보에 가까운 걸음을 하는 중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딱히 한 게 없이 앉아만 있었다) 오후 5시쯤 되어 산책을 가야겠다며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어느 쪽으로 갈지 결정을 해야 했다.

아래쪽으로 가면 수성못이 나오는데 요새 수성 유원지를 둘러싼 벚꽃이 가관을 이룬다. 며칠 전 해가 따뜻하게 비추던 날 걸어가 보았더니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벚꽃 구경을 하며 각자의 봄맞이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위쪽으로 가기로 했다. 몸에 자극을 느낄 수 있게 약간 빠른 걸음으로 위쪽을 향해서 걸어갔다. 재킷을 입기도 안 입기도 애매한 날씨였는데 핸드폰을 넣을 주머니 때문에 입고 나갔더니 살짝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 북을 들으며 내 다리는 부지런히 목표지점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십 분도 안 되어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이곳을 산책했을 때에는 나뭇가지들이 앙상했는데 오늘 가보니 개나리도 벚꽃도 만개해 있었다. 수성유원지를 장식한 벚꽃만큼 화려함을 뽐내지는 않지만 듬성듬성 꽃망울을 터트린 수수한 벚꽃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릴 적부터 장미보다 들꽃을 더 좋아했었다. 인간들이 밟아도 밟아도 조용히 다시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는 작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조금씩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얼마 전에 다녀온 동해안에서 들었던 파도소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계곡의 물소리였다. 물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졸졸졸 소리가 아니고 솨아아아 하면서 겨울 동안 얼어붙었던 모든 걸 한 번에 녹여주는 그런 시원한 물소리였다. 물소리를 듣는 데 갑자기 한 단어가 떠올랐다.



풍요로움



잠시 메말랐던 내 마음이 느새 풍요로움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물이 이토록 풍요로운 것이었다니! 물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풍요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내가 부자가 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풍요로움을 쿠바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주려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자연을 몹시 사랑하는 남편이 보면 아주 좋아할 것임이 분명했다.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고 조금 더 올라가니 야영장이 나왔다. 지난번에 닫혀 있었던 그곳에 텐트 몇 개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안에 사람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 캠핑 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아주 추운 겨울 이외에는 자유롭게 야영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캠핑이나 야영에 대한 로망이 딱히 없어서(좋은 호텔에서 편안하게 자는 걸 선호한다) 부럽지는 않았지만 그저 바라보기에는 아주 멋져 보였다.


오늘은 지난번에 갔던 곳보다 훨씬 많이 걸어 올라가 보았다. 경사진 언덕길이라 걸을 때마다 근육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고 금세 근력이라도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대한민국의 국토 70%가 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옆을 보고 앞을 보고 뒤를 보아도 산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마스크를 잠시 벗고 맑은 공기를 맡아보았다. 향긋한 풀냄새일까? 자연의 싱그러움이 마스크로 덮여 있던 나의 감각을 깨우면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두 팔을 벌려보았다. 마치 이 자연이 내 것인 것처럼 두 팔을 활짝 열고 온 몸으로 그 순간을 만끽했다. 잠시 후 앞에 사람이 보여서 하던 짓을 멈추고 냉큼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들리고 새소리가 들리는 조용하고 평안한 이런 아름다운 자연이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다는 건 실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이 내 곁에 있을 때 마음껏 느끼고 경험해보아야지. 그리고 이 봄이 그냥 가버리는 걸 후회하지 않도록 매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아야겠다.


풍요로운 물소리를 함께 들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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