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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04. 2021

새벽에 일어나 두부를 부쳤다


어린 시절의 나는 콩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콩밥을 해 주시면 콩만 쏙쏙 빼서 다른 사람 밥그릇에 슬며시 옮겨 놓았더랬다. 하지만 두부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두부를 콩으로 만든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어서였을까? 그러던 어느 날 시골 할머니 댁에 갔는데 옆집에서 두부를 찌는 걸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아, 두부는 콩으로 만든 거구나!


그랬는데 나이가 들면서 콩도 좋아졌다. 어릴 때 먹지 않던 콩밥도 찾아서 먹게 되고 어느 날에는 서리태로만 밥을 해서 먹은 적도 있었다. 콩의 은근한 비린맛이 고소하게 느껴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입맛도 계속해서 변하는데 나에게는 콩이 그랬다.


두부를 몹시도 좋아해서일까?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두부살이라고 하셨다.(설마 두부를 많이 먹어서 이런 건 아니겠지?)








어제는 필라테스 저녁반에 참석을 했다. 초보 선생님이어서 운동이 제대로 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50분 수업이 끝나고는 곧바로 집 근처 대학교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금요일 저녁이어서인지 평소보다 축구랑 농구를 하는 학생들이 몇 배로 많은 듯했다.


운동장을 뛰었다. 비록 한 바퀴 반밖에 뛰지 않았지만 뛰는 그 순간만은 쾌감을 느꼈다.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왜 하는지 알 것만 같은 그런 쾌감이었다. 하지만 나의 폐활량은 그리 풍부하지 않아 한 바퀴 반 이후부터는 숨을 헐떡이며 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돌았다. 그렇게 12바퀴를 돌고 나니 오늘의 목표인 6,000걸음이 넘었다. 그제야 집으로 향했다.


오자마자 처음으로 사 본 일인용 샐러드를 먹었다. 양이 많지 않아 금세 먹고는 씻었다. 그리고 몇 가지 할 일을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누웠는데 배에서 계속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다. 남편은 자려고 누웠다가도 배가 고프면 슬며시 일어나서 무언가를 먹고 오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좀 더 어렸을 때에는 나도 그랬는데, 자기 전에 먹고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소화가 다 되어 버려서 배가 쏙 들어갔는데 이제는 소화가 잘 안되니 먹고 나면 잘 때 더 힘이 들뿐이다. 그래서 참았다.


새벽에 눈을 떴다. 몹시 배가 고팠다. 일단 냉장고 문을 열었다. 미니 사과를 하나 꺼내었다. 그리고 두부 한 모도 꺼냈다. 미니 사과를 물에 씻고는 아작아작 몇 번 베어서 끝냈다. 그리고는 두부를 바라보았다.


이 두부로 뭘 할까?








쿠바에 살면서 좋았던 점 하나는 콩이 많다는 거였다. 하지만 두부콩은 없었다. 그리고 검정콩도 종류가 좀 다른 듯했다. 검정콩으로 밥을 하면 마치 팥밥처럼 되는 게 한국에서 먹던 콩밥이랑 달랐다.


삼 개월에 한 번씩 멕시코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한인 민박집에서 두부를 꼭 먹었고 올 때는 일본식 팩 두부 여러 개를 사 가지고 왔다. 물론 한국 두부의 그 맛은 없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가방에 꼭 챙겨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몹시도 두부가 먹고 싶어 콩을 밤새 불려 보았다. 그리고 믹서기에 불린 콩을 간 뒤에 면포에 놓고는 콩물을 짤아서 그릇에 담고 콩 찌꺼기도 따로 담아 두었다. 레시피에는 간수를 넣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냄비에 콩물을 넣고 휘저어니 점차 묽어지기 시작했다. 간수를 넣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묽어진 그것을 사각형 통에 넣고는 냉장고에 잘 모셔두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꺼내보니 말랑말랑 단단해져 있는 게 마치 묵과 같았다.


나는 두부를 만들고 싶었는데 묵이 되어 버렸다. 콩이 달라서였을까? 다른 콩으로 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쿠바에 있는 콩으로는 두부로까지는 되지 않았고 묵이 되었다. 나의 기술 부족일 수도 있겠지만.


쿠바에서 묵이 어디냐? 며 양념을 만들어 묵을 먹고 다음날에는 묵사발도 해 먹었다. 그리고 콩 찌꺼기로는 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는 콩비지 찌개를 해 먹었다.


쿠바에서 만들었던 묵이랑 내가 담은 김치랑 함께 한 묵사발


궁하면 통한다더니... 한국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을 해 낸 것이었다!  


내가 원했던 두부는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뿌듯했다. 내가 묵을 만들었다니, 쿠바에서 콩비지 찌개를 해 먹었다니...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새벽부터 찌개를 해 먹는 건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두부를 부치기로 했다. 초당두부를 작게 자른 후 프라이팬에 아보카도 오일을 살짝 뿌렸다. 그리고는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은 잘린 두부를 가지런히 놓았다. 지이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두부가 굽히기 시작했다. 소금을 살짝 뿌리고는 잠시 후 뒤집어 보았다. 노릇노릇했다.


이 정도면 됐겠다, 하면서 새로 장만한 노란색의 실리콘 통에 두부를 담았다. 접시에 예쁘게 담고 싶었는데 임시숙소라 예쁘게 뽐 낼 만한 접시가 없어서 그냥 통에 담았다. 플레이팅을 좋아라 하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오래 있지 않을 이곳에서 새로 접시를 사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짐만 될 뿐이니까.


노란색 실리콘 통에 담긴 노릇노릇한 초당두부


통을 책상에 가져와서 앉았다. 젓가락으로 노릇노릇 잘 구워진 부드러운 두부를 집어서 입에 쏙 넣었다. 약간의 소금이 풍미를 더해주었다. 두부는 많이 씹을 필요도 없으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분이 좋았다. 배고픔도 조금 가셨다.


 두부 킬러인 나는 오아시스마켓에서 식료품을 주문할 때마다 두부 두 통과 순두부 두 통 그리고 청국장 2~3개를 필수적으로 포함시킨다.


임시숙소에 와서 처음으로 근처 작은 마트에서 국산 콩 두부 한 모를 샀는데 무려 사천 칠백 원이 넘은 가격이라 기절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무농약과 유기농 제품을 판매하는 오아시스마켓에서는 NON GMO의 국산콩으로 만든 시골 두부 두 통이 이천 육백 원이고, 같은 조건의 다른 두부는 한모에 천 오백 원 그리고 초당두부는 천 팔백 구 십원이라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순두부도 마찬가지였다.


오아시스마켓 국산콩 두부들 - 광고 아님, 항상 내돈내산


그래서 나는 저렴하면서 건강에 좋은 두부가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그리고 청국장을 수시로 해 먹으면서 두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오늘은 새벽이라 구워 본 것이었다. 게다가 운동을 하는 요즘은 나트륨 섭취가 많은 찌개를 먹는 횟수를 좀 줄여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오아시스마켓 장바구니에 이미 연두부를 담아 두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연두부를 떠먹으면 요리할 필요도 없고 간편하니까.


새벽에 두부를 부쳐 먹었으니 낮에는 김치랑 애호박을 넣고 자글자글 청국장을 끓여볼까? 내 정신 좀 봐, 찌개 먹는 걸 줄인다면서 청국장이라니! 아니야, 재료는 신선할 때 먹어야 하니까 오늘은 청국장을 먹자. 하루에 한 끼는 괜찮을 거야.


이렇게 오늘도 나는 두부와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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