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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05. 2021

등산을 하고는 깜짝 놀래 버렸다



이틀 전 새벽에 이 글을 올리고는 바로 등산화를 주문했는데 다행히도 그날 밤 11시경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어제) 두부를 부쳐먹고 글을 쓰고는 등산화를 신어보았다. 딱 맞았다.


옷은 뭘 입지? 가방은 있나?


등산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 운동할 때 입는 쫄바지에 엉덩이를 가려주는 유일한 반팔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쿠바에서 사 온 내가 참 좋아하는 컬러풀한 힙색에 핸드폰과 물티슈를 넣고는 마스크를 썼다. 지도를 보니 버스가 곧 온다고 되어 있어서 얼른 집을 나섰다.


버스 두 번을 타고 가면 초보 등산코스로 좋은 산이 하나 있다고 지식 검색에서 확인을 해 둔터라 그곳으로 가는 거였다. 첫 번째 버스에서는 몰랐는데 두 번째 버스는 타자마자 등산객 아저씨들이 소복이 계셔서 내가 버스를 제대로 탔음을 자연스레 확인시켜 주었다.


나만 복장이 너무 심플했다. 한국인들은 뒷산에 가는데도 장비를 보면 마치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는 것 같다는 말이 있는데 역시 장비빨이 중요한 듯했다. 난 없으니 그냥 심플하게 나선 것뿐이었다.


주말이라 사람도 많았고 장비도 이렇게나 많이 판매를 한다


나의 목적지는 해발 582m 높이로 나 같은 등린이(등산+어린이의 합성어)에게는 안성맞춤인듯했다. 두 번째 버스에서 내려서는 걱정이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가는 데로 따라만 가면 되었다. 토요일 오전이라 등산객들이 꽤나 많았다.


역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혼자 가서 길을 못 찾으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한 내가 웃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니 역시 생각을 행동으로 바로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걱정할 시간에 그냥 하. 면. 된. 다.



목표지까지 쉬지 않고 걸어보자. 속도는 중요하지 않아.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는 걸었다. 맨 먼저, 계단이 나를 맞이해주었고 그 계단이 끝나자 평지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바람에 아~~ 너무 좋아!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땀이 나면 말려주고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그 바람이 참 고마웠다. 양팔을 벌리고 바람을 맘껏 느껴 보았다. 사람들이 없었으면 뺑글뺑글 돌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사람들이 나를 피해 가겠지? 정말 돌았는 줄 알고.


경사가 나오면 평지가 이어지고 계단을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내 숨이 점차 가빠졌다. 아니다. 내 숨은 초반부터 가빴었다. 그런데 경사 진 곳을 오를 때의 숨소리를 내가 들어보니 곧 쓰러질 것만 같은 불안할 정도의 숨소리였다.


내가 이렇게 저질 체력이었다니!


천천히 걸었다. 다른 사람이 빨리 걷든 뛰든 날든 나는 천천히 걸었다. 단, 멈추지만은 않았다. 나의 경쟁상대는 오직 어제의 나 자신뿐, 이라는 말을 되뇌며 숨이 몹시 차면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걸음걸음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껴보았다. 특히 경사진 곳에서는 좀 더 집중했다. 이러다 보면 엉덩이에 근육도 생기고 힙업도 될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힙업 된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왼쪽으로 내려오는 분들 중에는 다람쥐 같으신 분들이 여럿 계셨다. 어떤 분은 경사진 산길을 뒤로 내려가길래 난 그분이 뭘 떨어뜨려서 주으러 가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런 산을 등산한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바나에는 등산할 만한 산이 없고(쿠바 동쪽에 가면 게릴라들이 활동을 했던 산들이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1974m이다) 한국에서도 딱히 등산을 하지 않았던지라 북한산에 간 기억 이외에는 없었다. 아마 그것도 7~8년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의 구간이 몇 군데가 있었다. 아직 멀었을까? 하고 시계를 보면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난 엄청 오래 걸은 것만 같았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마스크 안에서도 땀이 흘렀지만 수건이 없어서 그냥 땀은 바람에 맡겨버렸다. 갈증도 났지만 꾸욱 참았다. 물을 사려고 했는데 들고 다니는 게 귀찮아서 사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편이 있었으면 물도 챙기고 나도 챙겼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온 커플들을 보니 남편 생각이 더 났다. 결혼하고 쿠바에 가기 전에 남편과 대구 본가에서 일주일 정도를 있었는데 그때 남편이 아빠를 따라서 뒷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다녀오더니 산이 너무 좋다고 엄지 척을 했었는데 이 산에 함께 왔으면 더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남편이랑 산에 꼭 와야지 하며 남편 생각을 그만 접었다.




이제 등산은 남녀노소의 스포츠인 듯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나 포함), 아저씨, 남녀 청춘들 그리고 어린이들까지 아주 다양했다. 예전에는 등산은 부장님들이나 하는 거였는데 코로나로 수혜를 받은 것 중에 하나가 등산이 되었을 만큼(골프랑 등산) 젊은 친구들이 등산을 많이 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인 슈카월드가 말한 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레깅스 바람이 불어서 등산을 오는 젊은 여성들이 레깅스를 많이들 입는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 레깅스를 입고 온 분들이 많았다. 젊은 분들 뿐만 아니라 연세 드신 분도 있었다. 게다가 남자도.


외국에서는 길거리에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쿠바에는 나이가 젊든 많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다들 레깅스를 입고 다녀서 이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데 한국에 오니 레깅스만 입고 다니는 게 괜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인 건지 아니면 사회적 분위기라는 걸 무시할 수 없는 건지.


쿠바에서는 뚱뚱하신 아주머니들이 레깅스를 많이 입는데 아마도 레깅스가 잘 늘어나니 편해서 입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요즘 레깅스들처럼 쫀쫀하게 몸매를 잡아주는 게 아니어서 여기저기 튀어나온 살들이 보여도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냥 옷이니까 입는 것뿐이었다.




등산화라도 신고 와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계속 걷다 보니 마지막 계단인듯한 곳이 눈앞에 보였다. 알아보니  438계단이었다. 계단이 끝나자 커다란 바위가 보였고 그 바위 옆 계단을 오르니 나의 목적지였다.


형제봉에서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어린이들과 청춘들이 깔깔대며 사진을 찍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라고 말할 배짱이 없었다. 그래서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사진 찍는 걸 찍어서 형제봉에 첨 왔다는 인증숏만 남겼다.


난 셀카, 옆엔 형제봉 인증숏


날씨가 몹시 좋아서 전망도 좋았다. 역시 아파트들이 많이 보였다. 그 꼭대기에 물이랑 아이스크림 그리고 음료수를 판매하는데 물을 마실까 하다가 접었다. 3천 원이어서 그냥 참았다. 그곳까지 무거운 걸 들어오신 분의 노고를 생각하면 충분히 책정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목이 말라죽을 정도가 아니어서 안 마셔도 되었다.


저걸 어떻게 들고 오르셨을까?


잠시 숨을 고르고는 내려갔다. 친구들이랑 왔으면 앉아서 김밥도 먹고 도란도란 얘기도 했을 텐데 혼자니까 그냥 내려갔다. 힘들게 힘들게 올라와도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보다는 쉬운데 경사가 가파른 흙길은 미끄러질 수가 있으니 다리에 힘을 꽉 주어야 했다. 덕분에 발가락이 신발 앞쪽으로 쏠리니 발이 좀 아프기도 했다.


인생도 이러하지 않나? 올라가면 내려오고, 올라갈 때는 힘들어도 내려가는 건 쉽고,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 정상에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도 들고, 그 사람들은 내가 걱정 안 해도 잘 사니 내 생각이나 하자는 둥 별 생각을 다 하면서 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랫말들이 산에 오니 더 아름답게 들렸다. 숨을 헐떡일 때에는 노래 가사가 전혀 들리지도 않지만 말이다.


참, 한참 걷는 데 목탁 소리가 나서 근처에 절이 있나 싶었는데 한 스님이 서서 목탁을 두드리고 계셨다. 옆에 시주함도 있었는데, 요즘 누가 현금을 가지고 다니나요 스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산속에서 목탁 소리를 들으면 나만 기분이 좋은가?


나는 목탁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참 평온해지는데 그래서 그 스님께 감사했다. 그런데 현금이 없어서 속으로만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에는 현금을 준비해 가야겠다.






드디어 첫 번째 등산이 끝났다. 잘했다며 나를 칭찬해 주었다.


끝까지 내려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다행히 버스가 금방 왔다. 두 번의 버스를 타고 동네에 내렸는데 과일 가게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포도에 시선이 꽂힌 나를 발견했다. 작은 바구니에 4송이가 들어있었다. 그걸 사서는 힘 없이 집에 와서 포도들을 식초에 담가놓고 따뜻한 물로 몸을 깨끗이 씻어내었다. 그리고는 포도 송이를 그 자리에서 흡입했다.


미친 듯이 먹었다. 그리고는 한입 단백질 바를 꺼내어 또 먹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여섯 봉지를 먹었다. 포도도 한 송이를 더 먹었다. 다 먹고 나니 기운이 쑥 빠진 듯했다. 몸이 너무 놀란 것이었다. 단백질이 많이 필요했나 보네... 


머리를 말리고 몸을 눕혔다.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몸이 개운해졌다. 책상에 앉았는데 또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열어 오아시스마켓에서 사 둔 냉면을 꺼냈다. 일인분씩 포장이 되어 있어서 먹기도 좋고 맛도 좋은 거였다.


좀 전에 포도 세 송이랑 단백질 바 6개를 먹었는데 또 냉면을 먹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평소에 나는 소식을 하는 편이라 늦게 일어나면 하루에 한 끼, 많이 먹어도 두 끼를 먹는데 갑자기 괴력이 생긴 듯했다. 냉면을 다 먹고 나니 달달한 게 먹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가기가 귀찮아서 그건 참았다.


등산의 효과는 그야말로 어마 무시했다. 갑자기 이렇게나 식성이 좋아지다니!  


집에서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기까지 세 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괜찮은 듯했다. 어제는 첫 등산이라 몸이 많이 놀랬겠지만 같은 코스를 꾸준히 등산하면 숨도 덜 차고 몸도 더 가벼워지겠지? 반복학습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 이틀에 한 번씩 같은 코스를 다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건, 등산을 계속 다니면 식욕도 돌아오고 소화도 잘 될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등산을 해 보아야겠다. 일단 날 좋은 9월 딱 한 달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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