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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10. 2021

나는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린다씨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 나도 그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인생은 린다처럼!"


쿠바에 여행을 오신, 결혼한 지 이십 년도 훌쩍 지나 장성한 자녀가 있는 언니들이 말씀하셨다. 언니들은 내가 몹시 부럽다고 하셨다.


조단이랑 결혼하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비단 그 언니들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께서 나에게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두 그룹으로 의견이 나누어졌다. 나를 잘 아는 분들과 나를 잘 모르는 분들. 나를 잘 아는 나의 지인들은 조단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네!라고 하셨고, 나를 잘 모르는 분들은 린다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네!라고 말씀하셨다. 두 개의 상반된 의견으로 나누어졌지만 결국은 나와 조단이 서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거였다.



나는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까?



흔히들 연하와 결혼을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일 테다. 14살의 연하남, 그것도 체격이 아주 건장한 까맣고 잘생긴 쿠바인과 결혼을 한 나는 아마 이 남자랑 사는 한 이 말을 계속해서 들을 것 같다. 뭐,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까, 오히려 좋은 말이니까 괜찮다. 내가 나라를 구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나도 한 번씩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이렇게 착하고 마음이 따뜻하며 매일 같이 있어도 지겹지 않고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를 만났으니 어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라는.


그런데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일부의 사람들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나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14살 연하의 체격이 건장한 까맣고 잘생긴 외국남자과 결혼한 나이 많은 한국 여자.


나의 외향적인 성격답게 에너지가 넘쳐서 이런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엄청 밝히는 여자라고 본다는 걸 이번에 한국에 와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던 분과 어쩌다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고, 그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깜짝 놀라버렸다. '이 분처럼 점잖으신 분께서 이런 생각을 하실 정도면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그렇게 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잠시 아찔해졌다.






내 결혼의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정신적인 거였다. 쏘울 메이트!


나는 20대부터 정신세계에 심취하여 나는 누구인가! 를 찾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에너지 파장이 가장 세다고 하는 곳 중 하나인 미국의 세도나에도 여러 번 갔었고 수련도 많이 하였다. 그러다 보니 정신이 아주 맑아져서 에너지가 탁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스스로가 힘들어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인지 결혼 전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남성들은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늦게 결혼을 한 만큼 자유로운 연애도 많이 해 보았는데 내 기준에 문제가 발견된 남자는 딱 한 명이었다. 성격 차이 말고 도저히 내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한 남자 말이다. 결혼 전 만났던 마지막 남자였다.


나와 동갑이었고 소위 말하는 '스펙'이 좋은 데다 나를 끔찍이도 아껴주길래 내가 좋아하는 외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자격지심이 있는 집착남이었다. 다행히도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게 되어 만난 지 2개월 만에 그 남자를 차단하였다. 동갑내기 친구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며 같이 늙어가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만났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자 남자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 결혼은 없나 봐, 라는 생각으로 결혼에 대한 마음을 접고 그저 일과 나에게 집중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연히 이 남자를 만났다. 이 남자를 만난 후 계획에도 없던 퇴사를 하게 되었고,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 남자를 만나러 다시 쿠바에 가게 되었다. 마치 자석에 끌리듯 말이다.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서 내가 거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가 끊임없이 노력을 해서 결국 우리는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소개팅이나 미팅 주선은 과거에 많이 했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남자를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잘 통하게 되어서 계속 만났고 만나다 보니 나이를 알게 되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도 있었고 적게 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이는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나이 차이가 (아래로) 너무 많이 나서 꽤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나누면 전혀 나이차를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듬직해서 오빠 같을 때도 있고 어떨 땐 아빠 같기도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으니 말이다.


모든 걸 다 알려줘야 하는 연하남은 내 연애 조건에 없었다. 귀찮았다. 게다가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싫었다.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힘든데 남자를 책임져? 한마디로 나는 연하남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려도 한참 어린 남자를 만났으니, 이런 게 '인연'이라는 걸까? 인연 중에서도 참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맞긴 맞는 듯하다. 내 주변에는 띠동갑 나이차가 나서 결혼한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다들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그럼 우리 모두 나라를 구했나?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벤저스처럼 우주도 구할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어보았다.


나라를 구했다는 걸 각자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나와 남편은  나라를 구한 사람이니 우린 앞으로 뭐가 되어도 되겠지.(그러기엔 너무 늦었나?) 그러니 불안한 마음은 이만 접고 한 가닥의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힘차게 열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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