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의 맛
동사는 음식으로 치면 육수나 양념에 해당한다. 제 몸을 풀어헤쳐 문장 전체에 스며들어서 글맛을 내기 때문이다. 육수나 양념과 마찬가지로 잘 쓰면 감칠맛까지 맬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맛은커녕 허기를 채우기도 어려워진다.
국어를 다시 배워야 하나?
한국어가 이토록 아름답다니!
'개소리하다'는 개처럼 짖는 소리를 낸다는 뜻이 아니라, 조리도 없는 말을 허투루 지껄인다는 뜻이다. 개소리의 '개'는 '참되지 못하고 함부로 된 것'을 뜻하는 접두어이다. 반대말은 '참'이어서 참살구, 개살구와 같이 나누어 쓰기도 하지만 '참'은 생략할 때가 많다.
개소리뿐만 아니라 개자식 또한 강아지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막돼먹은 녀석이라는 뜻이고, 개꿈, 개떡, 개죽음, 개망신도 다르지 않다.
물론 동물을 뜻하는 '개'가 붙을 때도 있다. 개지랄은 개가 떠는 지랄이고, 개차반은 개가 먹는 차반, 곧 똥을 말한다. 예전엔 개들을 풀어 키운 데가 사료랄 것도 없어 사람이 먹다 남긴 밥찌끼나 제가 눈 똥을 먹기도 했으니까.
그럼 개거품의 개는? 개꿈의 개도 아니고 개차반의 개도 아니다. 게거품을 잘못 쓴 것이니까. 입에 보글보글 거품을 무는 게에 빗대서 몹시 괴롭거나 흥분한 모습을 게거품을 문다고 표현한 것이다.
대학 시절 후배 시골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후배가 할머니에게 나를 소개하자 할머니는 "선배님이라고? 아니 그럼 뭐하고 있는 게야. 어서 다락에서 사과 한 알 꺼내 벗겨 드리잖고." 하고 손자를 채근했다. 사과를 벗긴다는 말이 묘하게 들려서 밤새 후배와 나란히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할머니의 그 말만 내내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내게 사과는 가장 에로틱한 과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