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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22. 2021

생일 ㅇㅇ합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일 ㅇㅇ합니다. 생일 ㅇㅇ합니다.

사랑해요 자기, 생일 ㅇㅇ 합니다.


'축하'라는 단어를 까먹은 남편은 그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 곳에 '으으'라고 얼버무렸고 나머지는 한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앵콜을 요청하자 또 불러주었다. 그제야 나는 누웠다 일어나서 함박웃음을 하고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 형님이랑 인사할래? 잠깐만 기다려봐."


큰오빠를 비춰주자 남편이 말했다.


"오~~ 형님, 보고 싶어요. 꼬레아에서 만나요. 사랑해요."


엄마는 텃밭에 가셨고 둘째 오빠는 자고 있었기에 다음은 아빠 차례였다. 아빠께도 남편은 같은 말을 했다. 남편의 한국어 어휘는 한정적이라 나 이외의 다른 이들과 통화를 하게 되면 호칭만 달라질 뿐 내용은 한결같았다.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꼬레아(한국)에서 만나요."


이 세 문장뿐이지만 남편은 이 말에 진심이고 듣는 이들도 남편의 진심을 느끼기에 남편에게 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도 사랑해. 보고 싶어. 빨리 와 조단!"






새벽에 눈을 뜨고도 오늘은 일어나기가 싫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일어나서 벌써 글을 쓰고 올렸을 텐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남편이 때 맞춰 전화를 주었고 그제야 나는 일어나서 아침을 맞이하였다.


텃밭에 가셨던 엄마가 돌아오셨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미역국을 끓이시고는 텃밭에 가셔서 싱싱한 채소를 가져오신 것이었다.


"몇십 년 만에 우리 식구끼리 모였네. 참 좋네."


엄마와 아빠, 오빠 둘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식구끼리 모인 게 생각해보니 꽤 오랜만이었다. 이번 추석에도 엄마는 며느리들에게 오지 말고 쉬라고 하셔서 오빠들만 잠시 본가에 왔고 한국에 있는 나도 합세를 해서 우리 식구끼리 모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식탁이 아닌 상에서 밥을 먹는다고 하셨다. 그러자 아빠가 큰 상을 꺼내어 펼치셨다. 그리고 우리 다섯 명이 한 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나의 생일상이었다. 엄마가 해 주신 미역국을 얼마 만에 먹어본 건지! 이십 년이 넘은 것 같았다.


몇 십년만에 엄마가 차려주신 나의 생일상


아빠가 봉투를 주셨다. 만 원짜리 열 장이 들어있었다. 어릴 때 아빠는 내 생일이 되면 '사랑하는 딸에게'라고 적힌 봉투 하나를 건네주셨더랬다. 그리고 그 봉투 안에는 초록색의 지폐 한 장이 들어있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라는 그 한 문장에서 압축된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기에 그 봉투를 받으면 얼마나 기뻤던지. 그때가 떠올랐다.


세월이 몇십 년 흘러 이제는 그 초록색 한 장이 열 장으로 불어났으니 나에 대한 아빠의 마음도 그러하시겠지? 훗


남편의 축하를 받고 가족들의 축하를 듬뿍 받아서인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가 태어난 걸 진심으로 축복해 주는 가족들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게 참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집에서 낳느라 말도 못 하게 고생하신 엄마와 탯줄을 끓고 나를 맨 먼저 받아주신 아빠 덕분에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나와서 빛을 봤기에 엄마 아빠 두 분께 나의 온 마음을 바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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