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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11. 2022

병에 걸렸다 거울만 보면 머리가 자르고 싶은 병

이번에 한국에 와서 자꾸만 하고 싶어지는 게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머리 자르기이다. 머리를 잘라? 적고 보니 잔인하기가 그지없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데. 오래전부터겠지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자른다고 한 게. 그런데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말은 왜 이리도 입에 쫙쫙 붙지가 않는지. 아무튼 나는 거울만 보면 머리를 자르고 싶어지는 병에 걸려버렸다.


한국에 오기 전 쿠바에서 나는, 어느 날 새벽에 벌떡 일어나 부엌 가위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다. 긴 머리가 분리가 되면서 짧아지는 순간 속이 시원해지면서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헤어컷을 하고 나면 나는 왜 이토록 쾌감을 느낄까? 쿠바니까 머리카락이 좀 비뚤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반듯하게 잘린 머리카락을 보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한국에 왔으니 미용실에 가줘야지, 하면서 본가 근처 미용실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미용실이 크지 않은 그 동네에 소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미용실이 이렇게나 많다고? 손님이 다 있나?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1층에 위치한 미용실에는 대부분 손님이 있었다. 놀라웠다.


예전에 나도 그랬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마음에 드는 미용실이 있으면 멀리 이사를 가더라도 그 미용실에만 가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방인으로 방문한지라 아는 미용실이 없었다. 그래서 내 눈에 보이는 일층 미용실에 그냥 들어갔다. 몇 년 만에 미용실에 가니 약간은 어색했다.


"제가 머리를 잘랐는데 디자이너님이 좀 다듬어 주세요."


디자이너는 내 머리를 보더니 가지런히 잘 잘랐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금세 다듬어 주었다.


"얼마예요?"

"만 오천 원이에요."


엄마에게서 미용실 가격은 들었지만 만 오천 원은 좀 비싼 것 같았다. 그냥 끝만 정리하는 거였는데... 그리고 얼마 후 동네를 걷는데 머리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색상이 좀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다른 미용실에 가보았다. 남자 디자이너였다. 금세 머리카락이 길었던지라 머리를 조금 더 자르고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내가 염색을 한 지 몰라보았다. 또 돈이 아까웠다.


두 번의 실패를 거친 후 나는 이 동네에 머리 잘하는 미용실이 어디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평점이 가장 높고 고객들의 리뷰가 훌륭한 한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예약한 날짜에 그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곳은 지나가다가 들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2층이라 눈에 띄지 않으니 인터넷에 홍보를 하는 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어때.


이곳은 예약이 필수인 인기가 아주 많은 곳이었다. 디자이너들의 실력이 훌륭한데 친절하기까지 하니. 특히 난 처음에 만난 말수가 적고 수수하게 차려입은 중국교포인듯한(강원도에서 왔다고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중국 교포의 말투였다) 그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사진을 보여주면 이렇게 해 달라고 했더니 내 마음에 쏙 들게 만들어 주었다.


머리를 자르는데 이렇게나 정성을 들이는 디자이너는 처음이었다. 정말이지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 자르는 것만 같았다. 머리를 자르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자르고 밝은 색으로 염색도 했더니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대만족이었다. 디자이너가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괜찮다고 하자 사진을 찍고는 헤어컷 비용은 받지 않았다. 게다가 염색도 할인을 해 주었다.


난 이제 여기만 와야지!


그 디자이너에게만 머리를 맡기고 싶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녀를 찾아갔고 짧은 시간에 나는 단골이 되었다. 갈 때마다 내 머리는 점점 짧아졌고 숏컷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머리를 자르고 나서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오라고 했다. 손을 봐주겠다고. 그래서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삐죽하게 나온 머리카락이 너무 걸려서 갔더니 잠시 막간을 이용해서 공짜로 손을 봐주었는데 그것조차 정성을 다하는 바람에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 뒷손님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무료로 잘라주는 건지는 알았지만 너무 정성을 다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돈을 주었더니 받지 않아서 카톡으로 커피 쿠폰을 보내주었다.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그녀가 어느 날 미용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되어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믿기가 힘들어 바로 그녀에게 연락을 했는데 답변이 하루 지나서 도착했다. 병원에 있다고 하며 사실이라고 했다. 그녀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힘이 빠지긴 했으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일이니까 축하한다고 하며 작은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게 그녀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다른 디자이너가 나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녀도 실력이 있고 친절했지만 나는 한 올 한 올에 정성을 다하는 그 디자이너를 잊을 수가 없었다. 두 번다시 그런 분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짧은 머리다 보니 손질할 시간이 금세 다가오고 미용실에 갈 때마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찮았다. 아무래도 대구는 지방이라 좀 더 저렴한 것 같았다. 본가 동네에 있는 미용실은 대부분 헤어컷이 만 오천 원이었다. 그런데 수도권에 오니 만 오천 원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기본 이만 원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또 눌렀다.


서울에 오니 더 비쌌다.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고 평이 좋은 데가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집 근처 대학교 앞에 만 이천 원에 헤어컷을 하는 곳이 있었다. 만 이천 원? 여긴 왜 이렇게 저렴하지? 하고 궁금해서 가보았다. 그곳도 이층에 위치했고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아서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제법 컸고 손님도 많았다. 금세 내 담당이 배치되었고 멋을 부린 일반인으로 보였던 젊은 여성이 와서 내 목에 망토를 두르더니 재빠른 가위질로 쓱삭쓱싹 머리카락을 잘랐다. 나름 잘하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금세 마무리가 되었다.


만 이천 원짜리 헤어컷은 그야말로 머리만 잘라주는 곳이었다. 보통의 미용실에서 해 주는 머리 감기 서비스는 제외였다. 머리는 집에서 감으면 되니까 시간이 절약되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가 기르자 만 이천 원의 결과가 증명이 되었다. 비뚤비뚤 달랐다. 단발은 가지런해야 하는데 오른쪽과 왼쪽이 달라서 거울을 볼 때마다 미용실을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오른쪽과 왼쪽을 맞추는 건 남편이 잘하는데. 숱을 치고 멋을 부리는 건 못해도 일자로 가지런히 자르는 건 내 남편이 최곤데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는 힘들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꼭 머리를 잘라야지. 만 이천 원짜리 헤어컷 말고 조금은 비싸더라도 제대로 잘라주는 데서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거울을 보며 당장 머리를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참았다.(이른 아침이라 참을 수밖에) 이쯤 되면 정말 병일까? 아니면 다른 여성분들도 나랑 같은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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