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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13. 2022

라디오가 주는 위안

역시 전 아날로그 인가 봐요

여고시절 나도 다른 여고생들처럼 매일 밤 '별밤'에 빠져있었다. 따라~따라~따라라라 음악이 시작되고 곧이어 이문세 아저씨의 목소리로 '별이 빛나는 밤에'가 낭독되면,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하는 설레움에 두근두근 댔다. 그 시절 우린 수많은 손편지를 썼고, 각자의 이야깃거리를 정성 가득히 적어서 라디오 방송국에 보내었다. 그리고 그 사연이 채택되어 방송이 되기라도 하면 다음날 학교에서 선망의 대상의 자리에 단숨에 올랐다.


그렇게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라디오가 점차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게 되면서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비주얼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독자들의 많은 이탈에도 라디오는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고 시간이 흘러 복고풍이 다시 대세를 이루자 LP판이라든가 라디오 같은 구시대의 유물이 다시금 어린 친구들을 통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인생은 원처럼 둥글둥글해서 끊임없이 돌고 도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떠나가 버린 줄만 알았던 라디오가 어느 날 나에게 다가왔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나의 생일 선물로 라디오를 주었던 것이었다. 언니다운 선물이네,라고 생각하고는 박스채 잘 보관해 두었다. 새 집에 이사 가게 되면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머무르고 있던 그곳에서는 사용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새 집에 이사를 왔고 언니가 선물해 준 어여쁜 라디오를 상자에서 꺼내보았다. 라디오를 듣는 게 대체 몇 년 만이던가? 설명서를 보고는 라디오를 작동해보았다. FM에 맞추고는 다양한 채널을 확인해보았다. 채널이 꽤 많았다. 라디오를 놓아두는 장소에 따라서 주파수가 맞는 게 있었고 계속 지지직 소리를 내며 안 맞는 채널이 있었다. 장소를 여러 번 바꾼 뒤, 이제는 제 자리를 잡은 레트로 감성이 뿜어 나는 이 라디오는 혼자만의 나의 공간에 온기를 가져다주고 도란도란 소식을 전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가끔 친구들이 방문하면 어김없이 라디오를 틀어놓는데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어찌나들 좋은지 모두들 우리 집을 '음악 맛집'이라고 하며 함께 감성에 빠져들었다. 친구들은 내가 유튜브나 멜론 같은 애플리케이션에서 틀어놓은 줄 알고 무슨 채널인지 물어보았고, 라디오라고 얘기하면 믿기지 않는다며 감탄했다. 주파수 맞추는 게 귀찮아서 한 채널만 틀어놓는데 이 채널에 유독 좋은 노래들이 참 많은 것 같았다. 요즘 노래보다는 예전 나와 내 또래들이 좋아하던 노래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내 친구들에게도  감성을 절로 불러일으킬 수밖에.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면 곧바로 라디오를 켰다. 눈뜨자마자 들리는 클래식 음악은 나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고, 머리가 아프거나 힘들 때에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아픔은 사라지고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라디오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힐링이 절로 되자 선물해 언니에게 연락드려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예전에 언니가 집에 있을 때 늘 라디오를 틀어놓는다고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언니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좋아하니 그런가 보네 하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들었더랬다. 그런데 내가 막상 경험해보니 라디오가 주는 파워가 생각보다 강력했고, 외로움을 달래주며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라디오를 좋아하고 많이들 들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브런치에서 만난 여러 작가님들에게서 라디오의 향기가  느껴졌고, 그래서 그분들이 나에게 더 포근한 모습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마음에 평온함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라디오를 들어 보실 것을 추천해본다. 나에게 힐링이 된다고 모든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비슷한 감성을 가진 분들이라면 아마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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