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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15. 2022

마지막 잎새가 떨어졌다

전화벨이 마구 울렸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였다. 나는 이미 꿈나라로 가고 있었지만 그 벨의 주인공이 남편이라는 걸 알기에 불을 켜고 신호가 좋지 않은 전화를 받았다. 프랑스 대사관과 인터뷰를 벌써 하고 나왔다며 소식을 알려주었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소식이었다.


"자기, 대사관에서 내 신청서가 좀 이상 하대. 그래서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


신청서가 이상하다니?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작성해서 보냈는데? 스페인어로 상세한 내용과 함께 프랑스 경유비자 신청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첨부해서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동시에 프랑스 비자 신청을 위한 사이트에서는 영어로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을 한 후 신청서를 남편에게 보내어 출력해서 프랑스 대사관에 다른 서류들과 가져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이 준비를 했는데 이상하다니.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비자 전문가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린 듯했다.


전쟁으로 러시아 항공이 취소된 후, 다른 항공사들을 알아본 결과 파리에서 경유하는 에어프랑스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알아보니 쿠바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프랑스 경유비자 신청이 가능했다. 남편이 이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그날 당장 비싼 프랑스 항공권을 구입했고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리라 마음먹고는 정성 들여 이메일을 써서 보냈더니, 프랑스 비자센터에서도 남편 인터뷰 날짜를 잡을 테니 남편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친절한 답장이 왔다.


실낱같은 희망이 다시 나에게로 온 순간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로 제약이 많은 쿠바 여권을 가진 국민들은 프랑스 공항에서 3~4시간 경유하는 데에도 비자를 받아야 한다. 스페인도 그렇고 캐나다도 마찬가지이다. 캐나다는 현재 쿠바-한국 항공 자체가 잘 없고, 스페인은 경유 비자가 작년 7월 23일부터 중지가 되었다고 대사관 사이트에서 보았기에 남은 건 프랑스였다. 그리하여 에어프랑스 항공권을 구매했고 프랑스 경유비자를 받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였기에 이제 남편이 오겠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남편의 대답이 이상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내가 프랑스 비자 센터에 이메일을 보내서 정확한 이유를 확인해봐야겠다고 했다. 경유 비자가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고 충분한 보충서류가 있는데 그런 대답을 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듣고 남편은 그러지 말라고 하며 좀 기다리자고 했다. 며칠 전부터 남편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내 느낌이 맞았다. 나의 계속적인 추궁에 남편이 그제야 이실 짓고를 했다. 결론은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지금은 할머니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단추가 잘못 채워지자 줄줄이 비엔나처럼 모든 게 어긋나 버렸다. 맨 처음 오기로 한 날 공항에서 여권 때문에 문제만 없었더라도 남편은 그 비행기를 탔을 테고 지금 한국에서 나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쿠바 정부의 법으로 인해 남편은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2주 후에 탑승하기로 한 러시아 항공기는 전쟁으로 취소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첫 번째 비행기를 놓치고 얼마 후 12남매의 맏딸인 할머니의 동생 한분이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했다. 나도 잘 아는 참 상냥하고 귀여우신 이모할머니셨다. 예뻐하던 동생이 갑작스레 병원으로 가던 중 세상을 떠나버리자 많이 놀라신 할머니께서 그 슬픔을 떨치시지를 못하고 계속 우셨고 마음이 힘들자 몸으로 옮겨가 원래 있던 지병이 더 심각해진 것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집에서 넘어지셔서 무릎까지 다치셨다고 했다. 할머니 시력이 떨어지셔서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넘어지셨다고 했다. 코로나로 눈 수술이 계속 미뤄졌는데 더 이상 미루다간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이 수술을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쿠바의 힘든 사정으로 언제 수술이 가능한지는 미지수이다.


나의 엄마도 무릎 수술을 하셨고,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가끔 넘어지시는데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이 철렁대곤 하므로 남편이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남편은 본인이 잘 살자고 몸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외할머니를 두고 도저히 비행기를 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눈도 잘 안보이시니. 한국에서는 아내가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기에 아내에게 미안해서 할머니 때문에 못 가겠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혼자서 괴로움에 낑낑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본인이 군대에 있을 때 사랑하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으로 외할머니는 지켜주고 싶다고 남편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그동안 외할머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남편 마음이 편해야 내 마음도 편해지니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속상했다. 어떻게든 남편이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이번에는 오겠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외할머니를 두고 도저히 못 오겠다고 하자 나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국 비자 유효기간이 4월 6일이고 예약해 놓은 에어프랑스를 3월 31일에 타지 않으면 이제는 정말 언제 한국에 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아마도 내가 쿠바에 가는 게 더 빠를 수가 있을 테다. 그렇다고 내가 휴가를 내고 쿠바에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프랑스 대사관 인터뷰는 나에게 마지막 잎새 같은 것이었는데... 그 잎새가 새벽에 뚝 하고 떨어져 버렸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졌다고 희망이 사라진 건 아니겠지. 자연의 섭리대로 다시 봄은 올 테고 그 자리에 다시 잎새들이 자랄 테니.


지금은 나도 힘들고 무엇보다 남편이 가장 힘들겠지만, 불편한 마음을 안고 한국에 온들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테니 남편이 원하는 대로 나도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겠다. 많이 서운하고 속상해서 속이 터져 버릴 것만 같지만 이 또한 지나가면 아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테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긍정을 집합시켰다. 모든 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로.


그런데도 내 맘이 자꾸만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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