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이사 온 후 한동안은 집에서 일만 했고, 지척에 있는 그 유명하다는 시장 한번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덧 봄이 왔고 나도 더 이상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주말을 맞이하여 2030들에게 '핫'하다는 그 시장에 가 보았다. 그 작은 시장 안에 카페와 디저트 카페만 한 열개쯤 되는 것 같았다. 이 많은 카페들이 꾸준히 영업을 하는 것 보면서 대한민국 카페 인구가 얼마나 많은 지 다시금 놀라버렸다.
올케가 동네 맛집 탐방을 해야 한다며 준비해 온 리스트에 있던 그 카페가 내가 동네에서 처음으로 가 본 카페가 되겠다. 80년대 홍콩 르느와르 영화에 나올듯한 뒷골목 같은 곳에 이런 럭셔리한 대형 디저트 카페라니! 요즘 트렌드에 참으로 잘 맞는 그런 콘셉트인 듯했다. 이런 게 뉴트로인가?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이라고 시사상식사전에 나와있었다.
간판도 럭셔리했다. 르몽블랑. 육중하지만 트렌디한 커다란 미닫이 유리문을 사뿐히 밀고 들어가니 널찍한 공간 왼편에 케이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쪽은 작업공간인듯했다. 보는 순간 꺄~~~~ 하는 탄성을 저절로 불러일으키는 이 앙증맞은 케이크들의 모양은 털실 모자와 털실 스웨트였다. 그것도 다양한 색상과 맛으로 무장한.
'대단하다! 어쩜 이런 모양을 케이크로 만들 수가 있지?' 하며 감탄하다가 올케와 내가 원하는 모양의 케이크를 하나씩 골라서 주문했다. 음료는 오빠와 조카 것까지 해서 4잔을 주문했고. 그랬더니 좀 전에 시장 횟집에서 점심 먹은 금액과 비슷해졌다. 띠용!
이렇게 앙증맞고 어여쁜 케이크는 역시 사악한 가격이 함정! 하나에 무려.... 9천 오백냥.
"아가씨, 나는 가끔은 이런 호사 누리고 싶다. 아가씨는 안 그러나?"
"언니, 나도 그렇지. 근데 너무 비싸서 자주는 못 오겠다."
그랬는데 다음 주말에 또 갔다지. 훗.
우리가 주문한 것이 나왔다. "이 카페는 트레이(쟁반)도 어쩜 이리 예쁘냐!" 고 호들갑을 떨며 음료 4잔과 어여쁜 미니 케이크를 담은 쟁반을 들고 2층 좌석으로 올라갔다. 알고 보니 이 카페는 20여 년간 편직공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디저트 카페로 개조해서 편직공장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털실 무스케이크와 니트 티셔츠 케이크를 시그니처로 선보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살던 쿠바 아바나의 한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예전에 약국이던 곳을 개조해서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는데 예전 약국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약통도 그대로 사용하고, 인테리어도 레트로의 느낌을 잘 살려놓아 유명한 곳이었다.
1층에서 주문을 하고 2층에 올라가면 여러 개의 테이블이 있는데 한쪽에 보면 예전 편직공장의 느낌을 살린 색색깔의 털실들과 재봉틀에 반짝이 등을 달아서 수시로 돌아가게 만든 공간이 있었다. 카페 구석구석에 편직공장의 느낌을 심어놓아 보는 것마다 그야말로 감탄 투성이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탁월했다.
이제 호들갑은 그만 떨고 먹어볼 시간이었다. 큰오빠가 아무 생각 없이 한쪽 팔을 잘라버렸다. 우린 "뭐야 잔인하게!"라고 말하며 바로 맛있는지 물어보곤 나머지 팔을 잘라 입에 넣어보았다. 헉, 이 맛은! 원래 달달구리를 좋아하지 않은 나와 올케가 홀딱 반해버릴 만한 그런 맛이었다.
"언니, 대박! 보기에도 좋은 데 맛도 이렇게 좋으면 어째! 여기 장난없다."
올케와 나는 뭐 이런데가 다 있냐며 쉬지 않고 호들갑을 떨며 조금씩 아껴 먹었고, 먹다 보니 너무 맛나서 대체 안에 뭐가 들었지? 하며 살펴보니 3가지의 재료가 가지런히 들어가 있었다. 이런 정교함이라니! 갑자기 이걸 만든 사람이 존경스러워지면서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올케와 나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 이는 생활의 달인에도 나온, 그 유명한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실력파 파티시에였다. 역시 대단한 분이었구만! 수많은 연구 끝에 탄생한 만큼 케이크 한 입을 입에 넣는 순간 파티시에의 노력과 정성이 느껴지는 결점 하나 없는 완벽한 맛이었다.
앙증맞은 털실 모양에 맛까지 환상적인 이 디저트 카페에는 3층에 아주 멋진 야외 공간뿐만 아니라 분리가 된 3개의 방도 있고 4층 루프탑에 올라가면 남산타워는 물론이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쏵 들어오니 피곤할 때 힐링하러 오면 좋은 곳이기도 하다.
3층 야외공간과 분리된 3개의 방 중 오른쪽 방
3층 가운데 방
옥상의 모습-처음 갔을땐 추워서 제대로 못 찍은게 이정도 feat. 초6년 조카
르몽블랑을 시작으로 주말에 동네 맛집들을 여러 개씩 다니다 보니 너무 맛나서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하게 되고 과식은 나의 수면과 생활에 크나큰 불편함을 주어 자제해 보려고 하는데 과연 잘 될지는 의문이다. 과식에 대해서 쓰려다 르몽블랑 이야기가 되었는데 해방촌 신흥시장 맛집을 중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곳들을 한번 소개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