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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r 23. 2022

지네발란처럼

심진숙 시집

몇 주 전에 출판사를 통해서 <어쩌다 쿠바> 작가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그날이 오늘이네요. 그래서 아침부터 온통 제 마음은 그 인터뷰에 가 있어요. 어젯밤에 받은 질문지를 보면서 혼자 중얼중얼 대답도 해보고 새로운 질문도 만들어 보았어요. 처음 가보는 상암동 방송국이라 일찍 가서 근처에서 커피 한잔 하고 들어가려고 해요. 서두르면 당황할 것 같아서. 라디오 방송이라 목소리만 나오는데 목소리가 또랑또랑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참 좋아하는 심진숙 작가님의 신간, 지네발란처럼 시를 소개해 봅니다.



지네발란처럼


몸안에 지네 한 마리 품고 살아왔다는 것을

앙상해진 그녀의 마지막 몸에서 처음 알았다


휘어진 등뼈를 길게 드러낸 지네 한 마리

평생을 벼랑에서 오체투지 하던 수행처럼, 기억처럼

수많은 다리의 더딘 행렬이 그녀의 야윈 몸에서 빠져나갔다


앙다문 입들이 가득한 산방산에는 암벽을 기는 지네들이 있다

굴속에 들어가 바위가 되어버린 여인의 검은 침묵 같은 산을

악착같이 기어오르는 지네발란

강한 자제력이라는 타고난 꽃말처럼

셀 수도 없이 많은 마디를 묶고 또 뻗어

여인의 증발한 눈물을 빨아들이고 있다


형벌을 내린 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증을 즐기는 것뿐이라는 말


천 길 낭떠러지를 습성의 무대로

춤추며 전진하는 아슬한 곡예사

암벽에서 단련된 가죽질의 근육을 불끈거리며

제 몸을 메고 가는 발의 행렬


지네발란이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업보의 목선을 세워

녹두 알만한 우주를 활짝 열 때

검은 벼랑 마디마다 일제히 쏟아지는 연분홍 탄성

절지의 여정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담양에서 조아당이라는 아주 멋진 한옥 펜션을 운영하고 계시는 심 작가님은 친한 감독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자그마한 체구지만 어찌나 당차고 진취적이신지요. 게다가 정이 많아서 뭐든 퍼주고 싶어 하시는 참 인간적인 분이세요. 작가님 덕분에 담양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알게 되었고, 또 광주와 담양에서 활동하시는 예술가들도 알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심진숙작가님

남편이 오면 다시 담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꽃피는 봄에 혼자 다녀와야겠네요.


그럼 좋은 시 감상 잘하시고 내일 방송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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