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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말했다.

어른들은 숫자를 사랑해요

by 쿠바댁 린다


어른들은 숫자를 사랑해요.


(중략)


만약 당신들이 어른들에게 “저는 창가에 제라늄 꽃이 있고 지붕에 비둘기가 있는 빨간 벽돌의 아름다운 집을 봤어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그 집에 대해서 상상을 하기가 힘들 거예요. 그런데 그들에게

“저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라고 말한다면

“정말 멋져!”라며 소리를 지를 거예요.

(아마도) 대학교 때 마지막으로 읽고 지난 4월에 나만의 [코로나 프로젝트]를 위해서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은 ‘어린 왕자’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https://brunch.co.kr/@lindacrelo/24


그런데 한 열흘 전부터 이 구절이 자꾸자꾸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숫자를 사랑해요!


같은 책도 읽을 당시 내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과 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 부분과 느낌이 달라지는데 인생을 어느 정도 살고 나서 다시 읽은 어린 왕자는 나에게 이 부분을 특별히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정말 최근에 이 이야기를 자꾸 떠올리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숫자 때문에 한동안 멍하기도 했고 잠도 좀 설치기도 했고 가슴이 퐁퐁퐁 뛰기도 했다. 물론 기쁘기도 했다.




바로 브런치 조회수였다.



그날도 나는 새벽에 눈을 떴고 늘 하던 대로 세탁실 창문 앞에 가서 핸드폰에 3G를 연결한 후 브런치를 열었다. 그런데 브런치를 본 순간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뭐가 잘 못 된 줄 알았다. 그리고는 ‘이게 뭔 일이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1만이 넘어가고 2만이 넘어가더니 3만이 넘어간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글을 쓰고 올리는 것 외에 브런치에 있는 기능을 잘 몰라서 조회수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확인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나에게는 별 거 지만) 별 거 아닌 내 글을 재미있다며 읽어 주시는 분들께 그저 고마웠고 한 동안 뜸했다가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면 쓸수록 과거 나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 올라 자꾸만 글을 쓰고 싶어 졌다. (물론 안 그런 날들도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어떤 일이 떠 올랐고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에 브런치를 열었는데 글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콩닥콩닥 마구 뛰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쓰고 싶었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을 쓰는 도중에도 조회수의 숫자는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은 더 가관이었다.
조회수가 계속 올라가더니 9만이 넘어갔다. 그즈음에 나는 브런치에서 ‘제안하기’ 기능이 어떤 건지 알아내야 해서 내 브런치 스승인 에린이에게 카톡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녀와 브런치 기능 얘기를 하다가 9만 7천이 넘은 내 조회수를 캡처해서 그녀에게 보내었다. 그녀는 “어머, 언니 이게 뭐야?” 하며 깜짝 놀랐고 “언니 글이 어디에 올랐나 보네. 대박이다!”라고 하면서 어디에 올랐는지 아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유입경로가 ‘기타’인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대체 어디에 올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몹시 궁금하다고 에린이에게 말했다. 그 대화를 하는 도중에 조회수가 10만이 넘어갔다.


그런데 조용하던 에린이가 갑자기 “언니, 찾았다!” 하면서 사진 두 장을 보내 주었다. 2개의 내 글이 ‘다음’에 올라가 있었던 것이었다. 에린이는 “언니, 정말 축하해! 이런 건 자랑해야지. 이건 정말 대단한 거야. 인스타에 올려!” 하면서 나보다 더 기뻐했다. 나는 “이게 뭐가 대단하다고 인스타에 올려. 부끄럽다야ㅎㅎ” 하면서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이래 놓고 그다음 날 올렸다) 에린이와 대화를 마무리한 후에도 조회수가 계속 올라가더니 결국 그 날 조회수는 13만이 넘어갔다.


에린이가 친절하게 표시까지 해서 보내준 2장의 사진들


말할 사람이 남편뿐이라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남편은 “자기, 최고! 자기, 축하해요!” 하면서 아주 기뻐하였고 핸드폰을 가져와서 조회수를 사진 찍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칭찬을 잘하고 감탄하는 남편은 마치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마냥 좋아라 했고 그런 남편의 반응에 나는 그저 쑥스러워 웃기만 했다.




평소에 나는 호들갑도 잘 떨고 표현도 잘하는 데, (아주) 큰일이 닥치면 의외로 몹시 침착 해진다. 이번에 내가 침착해지는 걸 보니 조회수 13만은 나에게 꽤나 큰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린다야, 처음에 네가 글을 쓸 때에는 네 글을 읽어주는 이가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그걸로 행복하다고 했잖아. 그러니 이 숫자로 인해서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으쓱대거나 처음에 네가 먹었던 그 마음을 잊어버리면 안 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러니 흥분하지 말고 하던 대로 계속 차분하게 글을 쓰는 거야. 즐겁게 부담 가지지 말고.’


내 머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왜 내 가슴은 자꾸 벌렁벌렁 거리고 기분은 또 왜 이렇게 이상하지?’
’로또에 걸리면 이런 기분일까?’

‘참, 나는 로또를 사지 않으니까 걸릴 일도 없겠네.’


이런저런 별별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창 밖으로 바다만 쳐다보다가 그 날 하루는 지나가 버렸다. 결론적으로 조회수 13만은 나를 하루 종일 멍 때리게 했다는 거다.


다음 날 조회수는 5만이 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1만으로 떨어졌고 그리고는 1만에서 떨어졌다 넘었다 하다가 몇 천 단위로 내려왔다. (천이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러더니 열흘 정도가 지나자 안정이 되는 듯했다. 그동안 매일 눈만 뜨면 습관처럼 조회수를 확인했던 것이었다.


아, 나는 역시 숫자를 사랑하는 그런 어른이었어!






제대로 어딘가에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준다는 게 몹시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평소에는 파이팅 넘치는 내가 브런치 앞에만 서면 유독 작아지는 바람에 브런치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더랬다. 주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테다.


그런 나였기에 나를 멍하게 한 그 숫자들은 나에게 크나큰 놀라움과 동시에 또 다른 격려가 되었고 힘이 되어 주었다. 특히나 누군가가 내 글이 재미있다고 하면 나는 ‘내 글이?’ ‘말도 안 돼!’ 하면서도 구름 위를 걷는 그런 기분이었고 그렇게 얘기를 해 주시는 분들께는 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들어 누구인지 기억까지 하고 있다.(헤헤)


특히나 이번에 내 글이 ‘다음’에 올라서 많은 분들이 읽게 되면서 오래전에 내 고객이었던 분이 그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는 구독을 하고 응원을 해 주어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올렸을 뿐인데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었다. (고마워요 브런치!)


숫자에 연연하지는 않으려고 하지만 좋아요와 댓글, 그리고 구독자 수의 증가는 내가 계속 글을 쓰는 데에 꽤나 큰 힘이 되어 주었고 힘들게 브런치를 시작한 건 정말 잘한 거라는 보람조차 느끼게 하였다.


그랬던 달이 지나갔고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글쓰기 초보라 글 한 편 쓰는 데에도, 올리는 데에도, 올렸다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을 하는 데에도 시간이 아주 많이 소요가 된다. 그래도 처음에 글 한 편 쓰고 올리는 데 이틀이 소요가 된 거에 비하면 지금은 짧게는 반나절이 걸릴 때도 있으니 아주 발전을 했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백수라서 이렇게 할 수가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을 하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꾸준하게 글을 쓰시고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분들도 나처럼 초반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셨겠지? 처음부터 쉽게 잘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리고 나는 전문 작가가 아닌 만큼 글을 위한 글을 쓰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글을 쓰는데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고스란히 나를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그런 바람으로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린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요를 눌러 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시고 구독을 해 주시는 분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제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알려드리고 싶어요.
모두들 복 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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