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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고맙습니다!

일주년 기념으로 쌀룻!(Salud)

by 쿠바댁 린다


오늘은 2020년 6월 28일이네요.

그러니까 제가 브런치에 첫 번째 글을 올린 지 일 년이 되는 날이랍니다. 달력에 표시하며 기억을 해 두었지요.


아직도 설레임을 주는 내 첫번째 브런치에 올린 글



아침에 멕시코 쇼핑기 -제16화-를 올리고 나니 남편이 수요일에 힘들게 구해 온(안 힘든 게 없지만 특히 힘든 품목 중 하나)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와서 한잔 하자고 했어요.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저에겐 요즘 매일이 일요일인데 말이죠. 하하


그래서 달력을 보니 6월 28일이네요. 남편한테 축하할 일이 있으니 잔을 바꾸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우리가 젤 아끼는 한 개 밖에 없는 ‘아바나 건국 500주년 잔’에 제 맥주를 새로 따라주고 자신은 제가 지난 6월에 멕시코에서 사 온 크리스털 잔에 맥주를 따렀어요.


“자기, 오늘은 아주 의미가 있는 날이야. 작년 오늘 내가 브런치에 첫 번째 글을 올린 날이거든.”


“오 자기, 축하합니다!”


우리는 쌀룻(Salud-스페인어로 ‘건배’)을 하였고 인증샷을 남기려고 굳이 세탁실로 와서 말레꼰이 보이는 창 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이렇게 말이죠.




그리고 저는 하나뿐인 소파 같은 의자에 앉아서 창문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 글을 씁니다. 참, 맥주도 마시면서요. 너무 감사해서요. 쿠바라는 낯선 땅에 와서 초반에 희망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사나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시를 쓰고 일기를 쓰며 나를 달래던 그때,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와서 이제는 제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브런치.


글 쓰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던 저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조금씩 브런치의 세계로 저를 이끌어 준 브런치 스승인 감성 포텐 동생 에린이와 전혀 모르는 남인 저에게 글로써 작가 신청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시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글 한 편 한 편마다 너무나도 정성스럽고 솔직한 댓글로 저에게 힘과 아이디어도 주시고 깊이 있는 생각까지 하게 해 주시는 지평선님께는 감사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댓글로 제가 계속 글을 쓰게 힘을 주시는 여러분들 모두의 귓속에 속삭이고 싶어요. Muchas gracias!(대단히 감사합니다.) 쿠바에 사니까 스페인어로 한 번 해 봤어요. 이건 아주 쉬우니까요. 훗.


아... 괜히 눈물이 나오네요.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아도 되나? 사실 저는 쿠바에서 친구도 없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남편 딱 한 사람뿐이거든요. 남편 자랑하다가 따 당하고 나니(이건 제 생각) 어디 말할 데도 없고 해서 브런치에 글 쓰고 글 올리는 낙으로 살고 있어요. 팔불출의 결과인가 보아요.(근데 그게 어때서요? 사랑은 표현하는 건데 말이죠.) 전 말이죠. 이 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아니, 이 낙이 너무 좋아요. 글은 기록으로 남으니까 훗날 저에게 또 다른 추억이 될 거예요. 만약 여러분들이 저에게 이런 에너지를 주시지 않았더라면 일 년 동안 글 쓰는 걸 지속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게 너무 고마워요.


남편은 신나는 쿠바 음악을 틀어놓고 애증의 냉장고 성애를 제거하면서 빨래를 하고 있어요.(글 쓰다가 잠시 냉장고 정리하고 왔어요.) 좀 전에는 축하를 하고 둘이 살짝 춤도 추었어요. 성격을 보면 전혀 쿠바인 같지 않고 오히려 독일 사람 같은 남편도 여느 쿠바인들 못지않게 흥이 넘쳐 음악이 나오면 슬금슬금 춤을 추면서 저에게 다가오지요. 그리고 손을 내밀어요. 그럼 저도 일어나 같이 춤을 추어요. 근데 딱 집에서만 이예요. 남편은 밖에 나가면 특히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춤을 추기는커녕 미동도 하지 않아요. 가족 모임에서조차 춤을 안 추어요. 이 점은 대다수의 쿠바인들과 아주 다른 점이에요. 보통 쿠바인들은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는데 말이에요.


요즘 운동하느라 맥주는 입에도 안 대었는데(맥주 마시면 배가 더 나와요) 오랜만에 마시니 약간 핑 도네요.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시리즈에 몰두해서 쓰다가 이렇게 짧은 글로 소통하는 것도 좋고요. 쇼핑 시리즈가 끝나면 조금씩 쿠바에 대해서 더 많이 글을 써서 이 아름다운 카리브섬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역사, 문화, 예술,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러려면 자가격리가 해제되고 나서 열심히 다녀야 할거 같네요.


아바나는 아직 자가격리가 안 풀렸어요. 요즈음 확진자가 10명 미만이라 조금 있으면 풀릴 거 같긴 한데 좀 더 지켜봐야 해요. 7월 1일부터는 몇 개 섬에는 외국인들이 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근처 공항에서 호텔로 바로 가야 해요. 다른 데는 갈 수가 없어요. 저는 쿠바 정부에서 이렇게 철저히 하는 게 방치하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해요. 먹을 거 구하기가 힘들어 요즘 채식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굶어 죽지 않고 글 쓰면서 잘 살고 있으니 이게 어디예요. 얼마 전엔 병아리콩으로 두부 한 번 해 볼랬는데 묵이 되길래 예상치 못한 묵을 다 먹었어요. 콩비지 찌게도 해 먹고요. 이 정도면 아직 잘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자가격리 기간에 음식 실험정신이 아주 빛을 발했네요.


말이 길어졌어요. 일 년 간 저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다음 일 년 동안에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릴게요. 정말 제 글을 읽으시는 몇 분이라도 언젠가 쿠바에 놀러 오시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도 행복하시길요~쌀룻!


혹시 몰라 관련된 글 첨부합니다.


https://brunch.co.kr/@lindacrelo/7


https://brunch.co.kr/@lindacrelo/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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