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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16. 2020

처음으로 [발행 취소]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속이 시원해졌다


오전에 세탁실에 앉아서 바다를 보다가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글을 몇 자 적어 보았는데 쓰다 보니 옛날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라 계속 쓰게 되었다. 글솜씨가 부족하여 있는 그대로밖에 적을 줄 모르는 나는 또 진실이랍시고 엄마랑의 일을 곧이곧대로 적어버렸고 발행까지 잘했다. 그리고 고마운 분들의 댓글로 힘을 얻고는 ‘시키는 대로 해 봐야지!’하며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계속 그 글이 눈에 밟혀서 몸을 뒤척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급기야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나 세탁실로 다시 가게 되었다.


깜깜한 세탁실 의자에 앉아 인터넷을 켜고는 브런치 앱을 열었다. 내 페이지에서 가장 마지막 글인 그 글이 눈에 들어오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읽고는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께 답장을 썼다. 그리고는 혹시 몰라 모든 댓글들을 캡처하였다. 드디어 실행을 할 순간이었다. 약간은 떨리는 맘으로 ‘발행 취소’ 버튼을 누르자 금세 그 글이 내 페이지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시 인터넷을 끄고 침대로 돌아갔다. 속이 후련했다. 그제야 편히 잠을 들 수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엄마는 브런치라는 앱도 모르시고 당연히 내 글을 읽을 확률이 극도로 희박하지만 만의 하나 엄마가 그 글을 읽게라도 되시면 과거의 일로 인해서 엄마께 큰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다.(사람 일은 모른다) 어쩌면 엄마는 다 잊어버린 일을 내가 다시 꺼내어 아무러진 상처를 또 한 번 터트릴 수가 있겠단 생각이 들자 이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일이 정말로 발생한다면 나는 엄마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어쩌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묻어 둘 일은 그냥 묻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족과의 일들은.


방금 ‘발행 취소’된 글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댓글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 캡처하길 정말 잘했다! 아주 따뜻하고 고마운 댓글들이어서 잃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엄마께 카톡을 보내었다. 한국은 저녁시간이라 엄마는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며칠 만에 연락드리는 거라 최근에 고기 먹은 사진들을 여러 장 보내 드리면서 내가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드렸다. 물론 체크카드 분실, 물난리 나서 고생한 일과 매일 단수가 된다는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그러하듯 멀리 있는 자신의 막내딸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일 순위라 그 사진들을 보시곤 흡족해하셨다. 그리고는 “절대 아프면 안 된데이!”라고 하시며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신신당부하셨다. “엄마, 내한테 조금이라도 뭔 일이 생기면 조단이가 가만 안 있어. 그니까 걱정 붙들어 매셩!” 하며 안심을 시켜드렸다. 근데 엄마가 티브이를 열심히 보고 계시는 지 대답이 바로바로 오지 않아서 이제 오늘의 대화를 마쳐야겠다며 <지평선>님과 <캐리소>님이 당부하신 말씀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저게 뭐라고 그리도 힘들어서 사십 중반이나 된 지금에서야 할까?’ 아 근데 하고 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진작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애교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친한 동생도 아직 엄마께 사랑한단 얘길 못 해봤다고 했다. 만취가 되어도 아직은 못할 거라고 했다.(유머도 대단한 동생이다) 그래서 아마도 내 나이가 되면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러자 동생이 쿠바에 있는 사랑 가득한 러블리 언니라며 ‘쿠블리’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 주었다. 엄마에게 첨으로 사랑 고백을 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덕분에 아주 예쁜 별명도 선물 받아 기분이 따블로 좋아졌다.


오늘은 글로 고백을 했으니 담에는 전화로 사랑고백을 찐하게 해 봐야겠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내가 엄마랑 열심히 지지고 볶고 싸우든지 상관없이 내 보물 넘버 원&투는 늘 변함이 없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내 편인 조서방, 조선비, 조배우님은 넘버 쓰리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넘버 포부터는, 그때그때 달라요~! (이 유머 기억하시는 분은 저랑 같은 세대? 호호호)


내 보물 넘버 쓰리인 이 남자를 만나서 살면서 사랑이 참으로 위대하단 걸 매일매일 느끼는데 그래도 역시 부모님의 사랑은 못 이길 거 같다.


오늘 남편이랑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집에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이발사의 길> 골목을 가 보았다. 난 이곳의 벽화들이 참 좋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고 매일 가도 좋을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휑 하지만 그래도 멋졌다. 그래서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과 내가 좋아하는 쿠바 아트를 공유하며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벽화와 색색의 빨래와의 조화가 예술이다
<이발사의 길> 레스토랑들이 다 문을 닫아 한적해도 나름 운치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직까지 엄마 아빠께 사랑 고백 못 해보신 분들은 저도 했으니 한번 시도해 보실 것을 강력 추천하고 싶네요.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하고 나니 참 기분이 좋아져서 좋은 건 함께 나누고 싶은 이 오지랖을 부디 이해해 주시길요.


여러분 사랑함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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