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누가 지구촌이래?!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by LindAra

The perfect parent in the world.


우리 엄마 아빠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가 그림을 좋아하면 뚝딱 이젤을 사다가 손녀만의 그림 구역을 만들어주시고,

타요에 한참 빠졌던 손자를 위해 우리가 내려가기 전부터 타요 친구들 이름을 몇 날며칠 밤을 지새우며 서로 공부하고 '같이' 놀아주는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디 있나.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하던 말이 있다.


"너네는 엄마 잘 만나서 저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다 내 덕이다."


그런 엄마 아빠가 지난 5월 중순에 오셨다.

장장 99일의 남미 여행을 마치시고 집 떠난 지 100일째 되던 날 우리 집에 오셨다.

공항에 서프라이즈로 마중을 나갔는데,

가는 내내 딸이 투덜거리는 거다.

자기 오늘이 레벨 2 짐네스틱 첫날인데 왜 그걸 안 가고 공항을 가냐고.

순간 욱했다.

야, 내 엄마 아빠고 네 할머니 할아버지야.


내가 간과했다.

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내 아이들의 일상 속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리가 희미해졌다는 것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막상 공항에서 나만 울고

할머니의 포옹을 애들이 어색해했다.


그렇게 8주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그러면서 애들의 하얗던 삶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물들었다. 아주 깊숙이.

그렇게 긴 시간이 끝나기 전날.


이별의 분위기가 공기 중에 농축되어 있던 그날 아침.

아들이 "엄마 오늘은 왜 이렇게 부드러워?"라고 할 만큼 나도 마지막 날만큼은 물 흐르듯 보내고 싶었다보다.

그 아들은 일부러 평소보다 오버해서 웃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울음을 터뜨린 채로 좀처럼 달래지지가 않았다.

그런 동생을 보는 누나는 "나는 비행기 멀미가 심해서 할머니 따라서 못가"라고 단정 짓고 뒤돌아선다.

본인 스타일대로 스스로의 이별을 한 셈이다.

이날만은 할머니랑 자겠다고 평소에는 엄마, 아빠를 찾는 아이가 선언했다.

그렇게 할머니 팔을 붙들고 자려고 침대에 누운 아이.

침대에 누워서 할머니의 부드럽고 말랑한 팔을 만지기도 하고 꼬집기도 하고 간지럽히기도 하더니

이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두 시간을 내리 울더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저 작은 아이가 어떻게 저렇게 처절하게 애원할까.

여느 드라마나 영화 속 떠나는 애인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장면과 비교도 안되게 절실했다.

안방에서 숨죽여 울던 나도 어느새 아이의 방 좁은 침대에 올라앉아 내 엄마와 내 아이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이 이별이 힘든 건 그만큼 장마철 습기처럼 끈끈하게 서로 질척이게 사랑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한참을 울던 아이가

"자, 엄마도 안아"라며 벌떡 일어난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테니 엄마의 엄마를 안으라고.

그렇게 한참을 엄마 품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진정을 시키기 위해 일층에 내려왔는데 아빠가 보인다.

아빠.. 아빠 사랑해. 하며 아빠의 품에서도 한바탕 쏟아냈다.

떠나간 것을 돌아보는 법이 없는 아빠.

그래서 냉정하고 추억하는 법이 없는 아빠.

그런 아빠가 나를 쓰다듬는다.

아빠의 거친 손이 나를 토닥여준다.


드디어 공항에 갈 날이다.

Kiss and fly

엄마와 아빠를,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눈물로 보내고 뒤돌아서 다시 울고

출국장으로 그 두 분을 보내고 셋이 얼싸안고 얼마나 울었나 모른다.

셋 다 화장실에서 코 풀고 만나기로 했다.

아들 혼자 남자화장실 우리 둘은 여자화장실.

아이가 혼자 나와 밖에서 기다릴까 봐,

"ㅇㅇ아, 동생 혼자 나와 기다릴 테니 엄마 밖에 있을게."라고 첫째에게 말하고 나왔다.

어떤 남성분이 묻는다.

"Is that your son? Is he okay?"

화장실 안에서 엉엉 쏟아낸 모양이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한참을 보듬어주고 있는데,

이번에는 여자화장실에서 어떤 여성분이 묻는다.

"Is that your girl? Is she okay?"

그럼 그렇지, 셋이 얼싸안고 한참을 울다 다짐했다.

우리 눈물이 나면 울자.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하자.

눈물 난다고 눈물 참는다고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덮어두고 외면하지 말자고.

울 수 있어, 그 눈물도 그리움도 이별도 같이 겪어내자고.


애들이 그런다.

엄마는 좋겠단다.

거울을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이니까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거울을 보면 되겠다고.

자기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엄마 얼굴을 보겠다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일부러 플레이데이트를 잡아서 정신없이 애들을 놀리고 나서 밤이 되었다.

아직 손님방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너무 그리워서.


그러다 딸의 어깨가 들썩인다.

엉엉 뱉어낸다.


집에 오자마자 보였던 수많은 공백들이 휩쓸려온다.

하나씩 지워지던 엄마 아빠의 흔적들이.

설거지할 때 나랑 반대로 사용하던 아빠의 물줄기가

손님방 엄마 아빠 냄새가 남아있는 침대 커버가.

왜 그렇게 급하게 세탁기에 넣고 가시는 지

딸 고생할까 봐 베개커버부터 전부 다 세탁기에 넣고 가셨다.

엄마 아빠 냄새 킁킁하려고 남겨둔 건데.

그렇게 엄마 아빠의 냄새가 사라졌다.

식탁 위 사과에 파리가 꼬였다.

남편이 그 사과는 버려야겠다 싶어서 버렸다고 한다.

아빠가 아침에 깎아준 사관데.

몹쓸 파리.

아빠의 흔적이 그렇게 하나 더 없어졌다.


한참을 들썩이던 어깨를 토닥이며,

"ㅇㅇ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 가서 잠깐 누웠다가 올까?"

그렇게 둘이 빈 방 빈 침대에 누워서

다행히 아직 세탁기에 들어가지 않은 이불 두 채를 안고 엉엉 운다.

냄새도 맡는다.

아이 말로는 아직 할아버지 냄새가 조금 남아있다고.


"엄마 나 오늘 다이빙할 때 할아버지가 없어서 조금 무서웠어, 그래서 다리를 쭉 펴지 못했어, 그래도 할아버지가 나 대단하다고 잘했다고 하시겠지?"

그럼, 멋져. 대단해. 수도 없이 칭찬하고 보듬어줬다.


누가 지구촌이래.

누가 하루 생활권이래.

고작 이별한 지 10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 처절한 이별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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