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희망
장례식장 앞에 살게 된 이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곳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을 배웅하는 사람들과, 아직 이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처음엔 집 앞이 장례식장이라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정숙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에 나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삶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곳을 배경 삼아 많은 글을 쓰게 되었으며, 독자들과 소통하게 되었다.
그렇게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곳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역시나 죽음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삶과 죽음을 두고 흔히 '한 치 앞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고, 언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오히려 지금의 나는 마음이 평안하다.
가까이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그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살아 있는 내가 가진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이전보다 더 분명히 깨닫게 된 덕분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유한한 삶 속에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때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 조금씩 삶을 향한 긍정적인 마음이 열린다. 한때 죽음과 가까웠던 마음이 이제는 오히려 나를 살게 만드는 힘이 된 셈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사는 것도 어렵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다"라고.
언뜻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죽음을 지켜보며 살아가다 보니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죽음이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 선택의 순간에 이르는 길 위에는 수많은 망설임과 고민, 그동안의 인연과 추억들, 앞으로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발목을 붙잡고 마음을 헤집어 놓기에, 그 끝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남은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미래의 불안보다 스스로의 고통과 절망이 앞선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그 선택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 다른 선택지들을 모두 버렸다는 뜻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어려워진 그 순간, 이미 나는 돌아가기 어려운 강을 건너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어둠 속에서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던 순간에도, 때로는 아주 작은 빛 하나가 다시 나를 삶으로 끌어올린다.
삶을 계속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목표나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이유, 어쩌면 단 한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일 수도 있다.
그렇게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삶은 다시금 희망을 향해 걸어갈 힘을 얻는다.
나는 지금 그런 희망을 품게 되었다. 마치 긴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마음에도 다시 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다. 봄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설레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솟아난다. 어쩌면 이 설렘 덕분에 나는 다시금 더 열심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미래가 기다려지고, 아직 오지 않은 그 미래가 벌써부터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죽음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이 기묘한 환경이 내 마음에 만들어준 이 새로운 설렘은, 삶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을 더욱 깊고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의 나는 유한한 삶 속에서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한 걸음을 천천히 음미하며 살아갈 용기를 갖게 되었다.
겨울 내내 롱패딩을 입었던 시간이 있었는데, 언제 그렇게 추운 겨울을 보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이제는 봄이 찾아와 햇살이 따스하다. 따뜻한 봄기운에 마음까지 녹아드는 느낌이다.
겨울의 어둡고 추웠던 시간도 결국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다시 찾아왔듯, 삶의 어두웠던 순간들도 결국에는 지나가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삶은 유한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천천히, 조급함 없이 살아갈 이유가 된다.
빨리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누군가의 솔직한 고백과 경험은 책이 되기에 우리는 책을 읽으며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미리 걸어보고, 위로를 얻고 희망을 품는다. 내가 지금 쓰는 이 글 역시,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길 소망한다.
장례식장 앞에서 살아가지만, 오히려 내 삶은 이제 더욱 밝고 따뜻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얻은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이제 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와 희망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일요일 새벽 2시, 조용히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글을 마무리하며 다음 주에 이 글을 발행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이 글을 읽으며 잠시나마 삶의 소중함을 되새겨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