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보냈다.
올해도 무사히 겨울을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창밖으로 따스한 봄기운이 들어오는 걸 느낀다.
어느덧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봄옷들을 꺼내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해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면 새삼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봄이 오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매일 장례식장 앞을 지나며 깨닫게 되었다.
장례식장 앞에 살다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한없이 가까워진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장례식장 근처는 당연히 조용하고 엄숙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보다 사람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로는 상복을 입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조차 장례식장 밖에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잠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근조 화환이 가득한 입구의 풍경 뒤편에서는 오히려 더욱 강하게 삶의 흔적이 느껴졌다. 고인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잠시 상상해 보기도 하고, 그가 살았던 시간과 흔적들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또 이곳에서 지낸 이후부터 나도 모르게 삶의 작은 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면 장례식장을 지나게 되고, 그 짧은 순간이 매번 내 하루의 소중함을 상기시켜 준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슬픔과 작별의 풍경은 나의 삶을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장례식장 앞의 일상은 내게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난다면, 내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남은 가족과 친구들은 어떻게 나를 기억할까?
그들은 슬픔과 동시에 내가 남긴 흔적들을 정리하느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될까?
그때부터 막연히 떠올렸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 장례식장 비용을 미리 마련해 두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유한한 결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좀처럼 준비하지 않는다. 아마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매일 마주치는 장례식장은 죽음을 미루거나 외면할 수 없다는 걸 매일같이 상기시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낯설지만, 오히려 이를 준비하는 건 삶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사람들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마음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들의 마음에서 현실적인 문제 하나만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장례식 비용을 미리 마련해 두는 일은 그런 작은 배려이자 책임이라고 느꼈다.
사실 나 역시 내 부모님과 가까운 사람들의 장례를 겪으며, 남겨진 사람들이 현실적인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부담까지 더해지는 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적어도 내 장례식만큼은 내가 스스로 책임지고 떠나자."
어떤 이는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왜 그런 어두운 생각을 하냐고.
하지만 오히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어둡기보다 담담하고 차분한 삶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떠날 때조차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고 싶다는 마음,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다.
물론 아직 나는 젊고,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죽음이란 결국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필연적 결말이라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오히려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봄이 왔다.
창문을 열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생각한다.
삶도 계절과 같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봄을 맞이하듯, 인생에도 추운 시절과 따뜻한 시절이 번갈아 온다.
봄을 맞는 지금의 나는, 어쩌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히 살아가기로 한다.
어느 날 나는 떠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런 날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남겨질 사람들에게 짐을 덜어줄 수 있도록, 내가 살아있을 때 장례 비용 정도는 꼭 준비하고 싶다.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책임지는 그 행동이, 내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장례식장 앞에서 살아가는 내 일상은, 이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더욱 풍부해졌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결코 어둡거나 슬프지 않다는 걸, 오히려 더 담담히 삶을 살아가게 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 몰라도, 그래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내가 떠난 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런 최소한의 배려를 하고 싶다는 다짐을 이 봄날, 조용히 마음에 새겨본다.
계절은 매년 돌아오지만 우리의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겨울이 오겠지만, 그때의 나는 또 다른 모습이겠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따뜻한 봄볕 아래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작은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죽음이란 결국 삶을 더욱 귀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올 나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나는 오늘도 삶을 충실히 살아간다.
겨울을 보냈다. 봄을 맞았다.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 계절까지도 아름답게 준비해 나가리라 다짐해 본다.
나를 위해서,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