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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을 떠난 엄마에게

누군가를 만나 누군가를 기억합니다

by 린다

얼마 전 제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의 회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자주 소통하면서 서로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았지만, 직접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분은 거리상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곳에 계셨기에, 마음 한구석에서 자주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기회를 미루고 미루다 이번에서야 만나게 된 것이죠. 설렘과 기대를 안고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이미 온라인상으로 마음이 잘 통했기에 더욱 기대감이 컸던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마주하고 보니, 왜 이제야 만남을 청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이었어요. 만나자마자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어색하거나 서먹할 틈도 없이 대화는 깊어졌고, 서로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깊은 공감과 위안을 주고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누군가를 만났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그런 순간 말이에요.

처음에는 그저 대화에만 집중하며, 그분과의 소중한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화 중 우연히 알게 된 연세가 저를 놀라게 했어요.

그분은 너무나도 동안이셨기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이였거든요.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른 사람이 바로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지금 그분과 비슷한 나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기억 속의 어머니는 아직 40대의 젊은 모습 그대로이기에, 나이가 들어 50대를 넘어 60대로 가셨을 어머니의 모습은 차마 상상조차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더 주름이 늘고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계셨겠죠.

어머니는 젊은 시절 미인대회 출신으로 늘 우아함을 간직한 분이셨기에, 아마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기품 있게 늙으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따뜻한 만남을 마치고 오후에 피부과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접수를 위해 신분증을 꺼내는 순간, 문득 제 주민등록증에 적힌 고향 주소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 순간, 어머니와 함께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진료를 기다리며 그 감정들을 정리하려 애쓰는 중에, 독서모임 회원님께서 보내주신 한 통의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오늘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 메시지를 읽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며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진정한 인연이란 시간의 길이나 빈도수가 아니라, 마음으로 공명하는 깊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오래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말이죠.

서로의 마음이 통하면, 그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겠지요.


병원에서 제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 저는 눈물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다른 모녀처럼 함께 피부관리도 받고 쇼핑도 다니며 따뜻한 일상을 보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어머니와의 기억이 모두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힘들고 아픈 기억들도 많았고, 그런 기억들은 때론 저의 글 소재가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저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들만 품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린 시절 공부하라며 엄하게 말씀하셨지만, 정작 제가 스물네 살에 대학원 졸업식을 할 때는 병실에서 사진으로만 졸업하는 모습을 보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닮아 미인대회에서 수상을 했을 때는, 이미 곁에 계시지 않아 제가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엄마, 저 그래도 잘 살고 있어요. 지금도 힘든 순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라고 말이죠.

세상은 예전보다 더 많이 좋아졌고, 함께하고 싶은 것도 많고 문화생활도 풍성해졌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직까지 저는 어머니의 살아생전 모습을 영상으로는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아직도 믿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몰라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전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친척 분께서 장례식을 겪으시고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그 큰 슬픔을 잘 견뎌냈니? 나도 이렇게 나이 들어 겪는데 너무 힘들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긴 시간이 지나왔다는 사실과 함께 제가 견뎌온 시간들이 스쳐갔습니다.


사실 지금 이 글 『장례식장 앞에 산다는 건』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고,

지금은 또 다른 새로운 이사를 앞두고 있어요.

그만큼 마음도 복잡하고 일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사실 너무 불안정한 나날입니다.

사소한 건강 문제로 병원을 몇 차례 오가다 보니, 더욱 예민하고 마음도 불안해져 있죠.

그렇지만 이런 힘든 과정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던 중,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SJ님 덕분에 어머니와의 따뜻한 기억들을 오랜만에 되새기며 미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의 작은 문을 두드려주신 그 소중한 인연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먼저 소풍을 떠난 어머니와의 따뜻한 기억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그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할 줄 아는 건 글 쓰는 것 밖에 없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렇게 글로 전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인연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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