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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과 결혼식장 사이에서

혼자 가는 그 길

by 린다

장례식장 근처에는 의외로 결혼식장이 있다.
처음엔 그곳이 결혼식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간판도 그냥 이니셜 몇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을 뿐이라, 무슨 용도의 건물인지 짐작하지 못하고 지나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의 대화에서 그 건물이 결혼식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서 살면서 늘 장례식장만 보아오던 나에게는 뜻밖의 발견이었다.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공간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슬픔을 삼킨 채 고개를 숙이고, 결혼식장에서는 서로를 축하하며 밝은 미소를 띤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거리에 두 장소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생의 아이러니와 닮아 있다.

누군가의 슬픔과 누군가의 행복이 같은 공기 속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언젠가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고, 또 언젠가는 선택이 아닌 필연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숙명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운명을 쥐여주고 우리를 태어나게 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요즘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기쁘고 좋은 일도 많았지만, 가끔은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누구보다 희망차게 하루를 맞이하다가도, 또 다른 날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최근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장례식장 앞을 천천히 지나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결혼식장을 지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한쪽은 삶의 끝을 마주한 이들이 있고, 한쪽은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이 두 곳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두 순간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문득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이 떠올랐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친 허리가 구부정한 흰머리의 할머니를 보고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온다고 하면 미리 멜론을 썰어두고 기다리시고, 겨울이면 추울까 봐 보일러를 미리 따뜻하게 틀어 놓으셨다.

엄마가 만든 반찬을 가져다 드리면 “이거 맛있네, 엄마가 해준 거야?”라며 밝게 웃으셨다.

그렇게 작은 일상 속에서 나에게 큰 사랑을 주셨던 외할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그립다.


이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가 결혼식장을 지나며 문득 멈춰 섰다.

미래의 나의 결혼식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혼주석에 우리 어머니는 계시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다가올 그날, 나는 결혼식장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하지만 내 옆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아리게 했다.

어쩌면 기쁨과 슬픔이 함께하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가는 길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장례식장과 결혼식장이 공존하는 이 거리를 혼자 걷고 있자니 유독 어머니가 그리웠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축제를 앞두고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함께하지 못한다는 건, 마음속에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을 만드는 일과 같았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행복하고 설레는 순간이 오더라도, 언제나 마음의 한 부분은 텅 비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와 함께 드레스를 골라보고 싶었고, 함께 메이크업을 받고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하고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가 남겨주신 사랑과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결혼식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에게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그대로 전해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곁에서 떠나게 될 날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다.

삶이라는 것이 결국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채로 흘러가는 것이라면, 나는 슬픔을 피하려 애쓰기보다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해지고 싶다.


장례식장을 지나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결혼식장을 지나며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꿈꾼다.

그리고 이 거리 위에서 나는 점점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품고 배우며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도 이 거리를 걸으며, 삶이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장례식장과 결혼식장이 마주한 이 공간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고 그렇게 오늘도,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길 위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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