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오피스텔에서
장례식장 앞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나는 신축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겉보기엔 깔끔하고 모든 것이 갖춰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엔 새벽마다 수시로 울리는 소방 경보음이 있었다.
이사를 결정하기 불과 이틀 전까지도 경보는 울려댔다.
누군가는 이 정도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했고, 누군가는 오히려 신축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했다.
나 역시 초반에는 참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밤마다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깜빡이는 붉은 불빛,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은 매번 나의 잠을 깨웠고, 어느새 나의 마음까지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거주자 대부분이 1층으로 대피했다.
대략 50명가량, 모두가 놀란 얼굴로 피곤한 눈을 비비며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이제는 또 오작동이겠지, 또 잘못 감지되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나 역시 고민했다. "이번에는 그냥 안 나갈까?"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국 계단을 내려가 1층에 도착하곤 했다.
그런 날이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정말로 불이 난다면, 나는 무엇을 챙겨야 할까?
그 질문의 답은 늘 같았다. 고양이. 그리고 핸드폰, 지갑 정도.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반려묘는, 당시엔 내 삶의 전부였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였다.
나의 전 재산이라도 고양이를 잃는다면 의미가 없을 거라고, 나는 매번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렇게 매번 새벽에, 혼자 고양이를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내려가며 깨달았다.
삶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마음이 무거운 채 돌아와 다시 눕는 새벽, 어느 순간부터는 사치스러운 소비가 점점 줄어들었다.
예쁜 옷, 예쁜 신발, 명품 가방, 물론 있으면 좋다.
그러나 불이 나면 그 모든 것을 들고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 위기의 순간에는 손에 고작 두세 개밖에 쥘 수 없고, 그중 하나가 나 자신이 되기도 바쁘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날 생명의 위협과도 같은 경보음을 들으며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처음엔 억지로였지만, 나중엔 자연스럽게.
마음을 비우니 역설적으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또렷하게 보였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 꾸밈이 아니라 본질, 겉이 아니라 마음.
그것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집을 떠나고 장례식장 앞으로 이사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또 다른 이사를 했다.
그 오피스텔의 기억은 나에게 있어 불안과 피로, 경계심이 먼저 떠오르지만, 한편으론 내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하게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오작동 경보는 나를 번번이 깨어나게 했고, 그 깨어남 속에서 나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알고 있다.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포기와는 다르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를 더 선명하게 아는 일이다.
많은 것을 비우고 나니, 그 자리에 평온이 들어왔다.
그리고 감사함도 함께 찾아왔다.
내게 다시 이런 삶을 허락해 준 시간에게 고마워하며,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그날의 경보음처럼, 삶이 갑자기 나를 깨우더라도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면,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다가온다.
그건 어쩌면 소음 뒤의 평온이고, 불안 뒤의 안정이고, 상실 뒤의 성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무엇을 채울까’보다는 ‘무엇을 덜어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공간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창고에 오래된 감정과 필요 없는 후회들만 쌓여 있다면 새로 들어올 희망과 기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물건을 버리듯 감정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보려 한다.
가벼워진 마음에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희망이라는 깃발이 펄럭일 수 있다.
때때로 내려놓는 연습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힘이 된다.
무언가를 비운다는 건 그저 포기하거나 잊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용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만의 마음 정리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