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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버스 정류장 그리고 무지개

by 린다

떠날 준비를 하니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하다.

장례식장 앞 집에서의 시간은 짧지 않았다.

이사 오던 날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엔 낯설고 무거운 풍경이었다.

매일 검은 옷을 입은 이들과 근조화환을 보는 일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 풍경 속에서도 나는 일상을 살아갔다.

장례식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그 속의 눈물, 짧은 인사와 긴 작별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내게 삶의 다른 결을 알려주었다.


이사하는 것도, 이사 와서 정착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집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살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나의 글로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처음엔 마음이 무거워 글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터 이 공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 집을 떠나면서, 단순히 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한 시절을 마무리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이사를 앞둔 어느 날, 마지막으로 동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햇빛은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그렇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순간, 내 무릎 위로 무지개 빛이 비쳤다.

분명히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어딘가에서 반사된 빛이 무지개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지개는 마치 "괜찮아, 잘했어, 그리고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떠나는 나를 배웅해 주려는 듯이,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주려는 듯이.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그동안 이 공간이 나에게 주고 싶었던 마지막 선물은 바로 그 무지개였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집은 장례식장 앞 집보다 훨씬 쾌적하고 안정적인 환경이다.

평수도 넓고 채광도 좋아서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인 조건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장례식장 앞 집에 대한 애틋함을 느낀다.

거기서 겪었던 모든 슬픔과 사색, 글과 나날들은 내 안에 단단한 뿌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때 써두었던 글을 새 집에서 다시 정리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짐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볍다.

무지개가 전해준 위로와 다짐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계절을 지날지 모르지만 분명 이 집에서도 좋은 기록들이 쌓여가길 바란다.




나에게 있어 이사란 매번 큰 전환점이었다. 그저 공간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새로이 다잡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매번 이사를 하면서도 후회하지 않으려 애썼고, 늘 무언가를 배우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장례식장 앞에서 보낸 시간들은 분명 슬프고 무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오히려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글을 끝으로, '장례식장 앞에 산다는 건'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 기록은 마무리하려 한다.

언젠가 다시 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이야기를 정리하고, 다음 여정으로 넘어가려 한다.


그동안 이 글을 읽고 함께해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잘 견뎌냈다고, 잘 살아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가자고.

마지막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무지개처럼, 내 앞에 펼쳐질 삶이 찬란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삶에도, 가끔은 그런 무지개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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