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매장 앞엔 큰 도로와의 경계역할을 하는 폭이 좁은 잔디밭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동네라 아직은 심어진 나무들이 작은 편이지만 소나무, 단풍나무, 무궁화나무를 비롯해 벚나무까지 있어서 봄이면 벚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비가 몇 차례 자주 오고 나니 매장 앞 잔디밭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풀을 보며 나라도 나가서 풀을 뽑아야 하나, 생각이 들 무렵 드디어 풀을 깎는 인부들이 등장했다. 인부 아저씨들이 큰 예초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풀을 깎으며 전진하면 뒤를 이어 어르신들이 갈퀴를 들고 깎인 풀을 한데 긁어모으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매장에 앉아 창밖을 보다 보면 종종 공공근로를 하시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작업속도는 느리지만 천천히 맡은 일들을 해내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나는 왠지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병을 알기 직전까지 일을 했다. 막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전업주부로 살다가 막내가 초등학교에 적응하고 얼마뒤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기계부품을 조립하는 일이었다. 엄마는 잠이 하도 많아서 아빠의 단골놀림감이었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고, 수당을 받기 위해 야간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릴 땐 엄마가 매일 힘들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 혼자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할 때도 우리 집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가 일을 하기 전에는 얼마나 악착같이 아끼며 살았는지 조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삼 남매의 몸집이 커지면서 엄마가 느꼈을 부담, 압박감, 걱정들을 이제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투병을 하느라 일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엄마는 종종 우리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나는 ‘돈 버는 사람이 넷이나 있는데 걱정할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큰소리치는 것에 비하면 나의 벌이가 그다지 넉넉하지 못해 사실 나도 조금 미안하고 걱정이 된다. 엄마가 먹고 싶다는 것이 있을 때, 하고 싶다는 것이 있을 때, 갖고 싶다는 것이 있을 때 걱정 없이 턱 턱 지원해 주는 든든한 맏딸이 되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을 때면 나는 내 나이쯤 되었을 젊은 시절의 엄마를 떠올려본다. 삼 남매가 먹고 싶다는 거, 갖고 싶다는 거 다 해주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아 속상했겠구나, 하면서.
이제는 나이 든 엄마가 내 자식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꽤 자주 짠하다.
엄마의 병을 알기 전, 이제는 출근하기가 버겁고 힘들다던 엄마에게 ‘힘들면 이제 그만 쉬고 아줌마들이랑 여행도 다니면서 놀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늙어서 자식들한테 부담 안주려면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모아놔야지’라고 대답하던 엄마는 지금도 병이 다 나으면 일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매장 앞 잔디밭에서 공공근로를 하시는 어르신들도 오로지 자식한테 부담주기 싫은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오시는 걸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이 든 내 엄마가 일하는 모습 같아 또 짠하다. 아니 어쩌면 짠하다기보단 부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도 얼른 병이 나아서 저기 나가 공공근로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찡-하고, 짠-하기만 한 내 마음과는 달리 어르신들은 나무 그늘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바지춤과 허리춤에서 꺼낸 간식을 나눠먹으며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확실히 일이라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지겹지만 함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소소한 행복을 살 수 있고, 또 내가 세상에 미약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단지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냥 내가 멈춰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것 때문에 일을 하시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거의 내 딸처럼 느껴지는 엄마가 나 같은 직장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쓰럽고 속상하지만, 그래도 아프지 말고 저 풀밭의 어르신들처럼 직장동료와 수다도 떨며 까르르 웃게 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