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다 Jun 16. 2024

M의 결혼식

오랜 시간 한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생 M이 결혼을 했다.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수줍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한 지 대략 1년 만의 일이다. 검은색, 흰색, 회색 밖에 없는 나의 옷장 속을 뒤져 그나마 화사하지만 흰색이 아닌 셔츠와 검정 슬랙스를 갖춰 입고, 신발장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있어 뽀얗게 먼지가 쌓인 구두를 꺼내 꿰어 신고 집을 나섰다. 


사실 예식장은 요즘의 내게 꽤 익숙한 장소다.

나에겐 본업 말고도 숨은 서브잡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결혼식장에서 아이폰으로 스냅사진을 찍는 일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서브잡으로 시작한 아이폰 스냅에 고용되면서 나의 서브잡으로도 자리 잡았다. 

특히나 봄, 가을엔 결혼식이 많아서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이폰을 들고 누군가의 결혼식장을 방문한다. 결혼식은 나를 기다려주며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식 시작 전부터 식이 시작된 이후까지 약 두 시간 정도를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땀을 흘린다. 그렇게 수많은 결혼식을 다니다 보니 결혼식이 감동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는 부작용이 있다. 비슷한 웨딩드레스와 똑같은 식순, 축가로 나오는 단골 노래, 행진할 때 추는 귀여운 커플댄스 등... 예전에 하객으로 참석했을 땐 멋져 보이기도, 성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또 괜스레 내가 더 뭉클해지곤 했던 감정들이 지금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다.


M의 결혼으로 나도 오랜만에 사진사가 아닌 하객으로 결혼식을 참석했다. 신부가 내가 아끼는 동생이라는 것 말고는 지금껏 사진사로 참석했던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된 반가운 자리였다는 것이 조금 특별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그 친구들은 모두 퇴사 후 각자의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었다. 

아직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나와 J 뿐이었는데, 일하는 지점이 달라 J는 결혼식만 보고 서둘러 출근을 해야 했다. 나는 일한 지 오래되어 가끔 주말에 쉴 수 있는 작은 특권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다른 직원들은 주말에 쉬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 본업인 바리스타라는 직업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주말에 쉴 수 없고 연차도 없는 다소 열악한 업무조건 정도는 커피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덮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그런 부분들을 감당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게 드는 때는 엄마가 병원에 가는 날이다. 동생들이 번갈아 연차를 쓰면서 엄마의 병원에 함께 가는데, 정작 맏딸인 나는 연차가 없어 한 번도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할 때 이제 그만 다른 일을 해야 하나 싶어 고민되고 또 괴롭기도 하다. 나 하나만 생각할 수 있던 지난날들과 달리 지금은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챙기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오랜 시간 바리스타로 일했던 M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퇴사를 했다. 


신부대기실에서 한껏 예쁘게 치장한 M과 사진을 찍고, 축의금 봉투에 이름을 적어 내고, 식장으로 들어가 식전영상을 감상했다. 이날을 위해 몇 개월을 혹독한 다이어트의 시간으로 보내더니 한결 슬림해진 모습의 M의 웨딩사진들이 커다란 스크린에 재생되고 있었다.

J는 내게 오늘 쉬는 날인지 물었고, 자기는 아마 사진도 못 찍고 바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E가 물었다.

“오늘 누구 결혼식에 가는지 대표님한테도 얘기했어요?”

J는 굳이 말하진 않으려고 했지만, 대표님이 누구 결혼식에 가는 건지 묻는 바람에 거짓말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M의 결혼식임을 얘기해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몇 년을 함께 일했는데, 결혼한다는 소식도 전하지 않느냐며 대표님은 입을 삐죽거렸다고 했다. 나 역시 휴무이긴 하지만, 오늘 결혼식을 참석한다는 말도, 누구의 결혼이라는 말도 굳이 하지 않았는데, 월요일에 출근을 하면 ‘너도 걔 결혼식에 다녀왔니?’라고 뾰족한 눈으로 묻진 않을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M이 퇴사를 결정하고, 결국 퇴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내게도 꽤나 괴로운 시간이었다. M이 퇴사를 결정하게 된 것에는 앞서 말한 나 하나만 생각할 수 없게 된 상황과 업무의 부당함을 포함한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무난한 이유를 골라 퇴사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대표님은 그 말들을 단 하나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다. 최근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려고 퇴사를 하는 것 같다고, 결혼하고서까지 일할만큼 자신의 매장이 가치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M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을 리 만무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결정을 내린 대표님은 나를 붙잡고 ‘배신’이나 ‘내 인생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등의 언어를 입에 올리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다가오는 명절에 M은 고작 십만 원 남짓 주는 명절 보너스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퇴사한 직원이 청첩장을 들고 매장에 찾아와 기쁘게 결혼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었을까?


버진로드를 걷는 M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신랑의 깜짝 축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또 동시에 웃는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날들의 거의 모든 매일이 행복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자기 결혼식 보며 안 울었냐고, 감동적이지 않았느냐고, 마치 꼭 울었어야 하는 것처럼 묻는 M의 연락에 나는 크게 웃었다. 

“매주 결혼식 가서 사진 찍어봐. 감동과 눈물이 나올 리가 있나.”

자기 친구들은 다 울던데 왜 실장님만 안 우냐며 약간의 투덜거림이 담긴 그 애의 말에 나는 한참을 웃었다. 함께 일할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를 웃게 만드는 M의 능력이 부러우면서도 고마웠다.

유부녀 돼서도 계속 나 웃게 해 줄 거지?


작가의 이전글 오렌지 껍질 벗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