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을 최근 들어 연달아 두 번을 받았다.
첫 번째는 창에게서였다.
창은 몇 년 전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가 독서모임을 그만둔 이후로는 종종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주고받았고, 아주 가끔은 만나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창의 인스타그램에는 어딘지 모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그는 종종 내게 자신의 카메라를 쥐어주며 이 기종의 특성과 감성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자신이 나가는 모임을 알려주며 나도 꼭 참석해 보라고 독려하곤 했다. 창은 그렇게 여기저기 종횡무진 바쁘게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창이 사는 동네이자 내가 일하는 매장의 뒤편에는 공원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다. 넓은 잔디밭과 억새밭이 있고, 억새밭 한가운데에는 소설 ‘소나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오두막도 있다. 계절에 따라 코스모스, 유채꽃밭이 조성되기도 하는 그곳에 어느 토요일 창과 나는 돗자리를 펴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나는 혼자 사는 거 어때요?”
창은 잔디밭에서 3살쯤 된 어린아이가 아빠 엄마와 함께 공을 차며 노는 모습을 보며 내게 물었다. 그의 눈에는 말하지 않아도 3인가족을 향한 부러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혼자 사는 거? 재미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그렇지.”
“그렇구나. 나는 그냥 재미없던데.”
누구보다 재밌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창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충분히 재밌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니, 그는 외롭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퇴근 후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고, 그래서 자주 밖으로 나다니게 된다고. 창과 나는 3살 정도의 나이차가 있는데, 나 역시 누구보다 혼자 사는 삶을 잘 즐기고 있다는 평가를 듣기 시작한 것은 약 3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도 퇴근 후 집에 가는 것이 싫어서 모임을 나가고, 운동을 다니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고, 진짜 아무런 스케줄이 없을 때는 서점이라도 들렀다가 밤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그런 헛헛한 마음들에게도 적응이 된 건지 내 일상의 모든 방향이 오로지 ‘나’를 위한 쪽으로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예전엔 집에 가기 싫어서 배웠던 운동을 이젠 나의 건강을 위해서 하기 시작했고, 귀찮아서 사 먹기만 했던 끼니도 이젠 손수 장을 보고 나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한다. 내가 창에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외로움은 서서히 옅어지고 너 자신을 더 아끼게 되는 때가 오기도 해’라고 말해준다면 위로가 되려나. 잘 모르겠다. 여전히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고 곁에 존재할 거라는 말이 오히려 잔인하게 들리진 않을까?
혼자 사는 삶이 단 1%도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누군가와 함께여도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니 그런 말은 100% 진실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만 지금 내 곁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그런 나를 아끼고 잘 키워보자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혼자 사는 것이 어떠냐는 두 번째 질문은 암웨이사장님한테 들었다. 창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을 때였다. 암웨이사장님은 내가 일하는 매장의 대표님과 친분이 있는 분인데, 암웨이에서 일을 하시기도 하고, 종종 매장에 놀러 오시는데 딱히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암웨이사장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대표님과 13살 차이가 나고, 암웨이 사장님은 대표님보다도 몇 살 더 많다고 들었으니 나와는 적어도 15살 이상의 나이차이가 나는 셈이다. 암웨이사장님의 일상이나 자세한 인생서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분은 큰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졌고, 보편적인 50대 여성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룩을 소화해 내는 분이다. 암웨이사장님은 오래전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젊음을 찬양하며(찬양할 정도로 내가 젊은 나이는 아님에도) 할 수 있을 때 뭐든 다 해보라고 쾌활하게 말하시는 분이었다. 그날도 대표님께 어떤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매장에 오셨는데, 매장 앞에 귀여운 클래식카를 대고 나조차 신기 힘든 킬힐을 신은채 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여전히 놀랄만했다. 대표님께 전달해 달라는 물건을 바에 올려둔 뒤 나를 빤히 보며 암웨이 사장님은 말했다.
“자기는 점점 더 예뻐지네! 남자친구는 아직도 없어요?”
“네.. 아직 없어요~”
“혼자 사는 삶은 어때? 난 너무너무 재밌는데!”
그녀의 말이 정말로 진심임을 증명하듯 커다란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나는 창에게 대답한 것과 같이 ‘재미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고 대답했다. 대표님을 통해 종종 듣는 암웨이사장님의 소식들은 매번 놀랍다. 그녀 나이 또래의 여성들이 입는 자줏빛의 등산복 같은 걸 입은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고, 화려한 스팽글이 달린 미니스커트를 입고 와서는 ‘오늘 내 컨셉은 인어야!’라며 까르르 웃는 모습은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20대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한다. 높은 힐을 신고도 또각또각 흔들림 없이 유유히 차에 올라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조금 상상해 보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언젠가 티비를 보다가 혼자 사는 여자 연예인이 나와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무너무 외로워서 집에 도둑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웃었지만, 정작 말을 뱉은 그녀는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인 것 같았다.
내가 이대로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지 않고 50대쯤 된다면, 나도 그 연예인처럼 도둑이라도 집에 찾아왔으면 할 정도로 외로워질까? 아니면 암웨이사장님처럼 혼자 사는 게 너무너무 즐겁고 재밌어서 언제나 함박웃음을 머금고 다니게 될까?
지금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나는 누구라도 만나고 싶을 만큼 외롭거나, 텅 빈 집이 싫어 바깥을 헤매거나 하진 않는다. 나름의 일들로 바쁘고, 더 멋진 40대, 50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나를 먹이고 키우고 있다.
그렇다고 강경한 비혼주의자 또한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당연히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발을 들일 생각도 있다.
지금의 내가 나를 잘 먹이고 키워서 꽤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둔다면,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을 하게 되어도, 아니면 지금처럼 나 개인의 성취와 소소한 혼자만의 삶을 꾸려나가며 살게 되는 것도 모두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트에서 제철 식재료를 탐색하고,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가며, 일상이 담긴 소소한 상품을 판매하고, 소파에 몸을 묻고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