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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May 06. 2017

#37 <프란시스 하> 그녀의 표정이 낯설지 않다면



 

영화 <프란시스 하> 스틸컷

                                                              


  삶이 나에게만 벅차게 다가오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나의 어려움이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때, SNS에서 남들은 모두 행복해 보일 때, 누군가가 내가 하는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 그리고 영원히 내 옆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너무도 쉽게 나를 떠나버릴 때. 그 누구도 삶이 벅차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은 나에게만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괜스레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이다. <프란시스 하>는 그런 순간들에 당신이 짓고 있었을지 모를 표정과 말과 반응들을 은근하게 포착해낸다.


  조금 솔직하게 말해보자. 영화 속 프란시스 같은 친구는 현실에서는 사절이다. 게임에 질 것 같은 순간에 게임판을 모두 뒤집어 놓고 싫다는 친구에게 싸움 놀이를 하자며 머리를 다짜고짜 잡는다. 자신의 앞에서 (자신 때문에) 실망해 있는 남자 친구의 기분보다 파티에 가 있는 룸메이트의 기분이 더 중요하고, 초대된 저녁 식사에서는 뜬금없는 말들로 분위기를 망쳐 놓는다. 프란시스는 막무가내다. 그녀는 사랑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또 인정할 건 인정하자. 프란시스 같이 행동했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씩 있다. 조금은 유치하고 조금은 실속 없고 조금은 눈치 없이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었던 그런 순간들. 그래서인지 이 대책 없는 스물일곱 살의 여자가 짓는 표정은 낯설지가 않다.


변명하기 바쁜 자의 표정

영화 <프란시스 하> 스틸컷
“뉴욕에서는 부자 아니면 예술 못해.”
“난 부자 아닌데 예술하잖아.”
“넌 희귀종이고.”


  꿈이 있는 청춘들이 기회를 잡기 위해 모여드는 도시, 뉴욕. 프란시스 또한 뉴욕에서 현대 무용가의 꿈을 꾸고 있는 한 명의 청춘이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 가난한 프란시스가 뉴욕에서 예술을 하는 것은 미련하고 과분한 도전인가 보다. 대학에 졸업한 지 5년째, 여전히 견습 댄서로 지내면서 집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그녀에게 꿈과 현실의 갭은 크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도 그다지 따뜻하지는 않다.


“27살이면 늙었지 뭐.”


  그래서 그녀는 변명하기 바쁘다. 끝내 근거 없는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평생 견습 단원 이상으로 가지 못할 것이라며 사무직을 권하는 교수에게 ‘무용 일로 계약 직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크리스마스 공연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 사실을 소피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한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이 영화는 ‘열심히 한 자,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스탠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의미에서 “세 얼간이”보다는 “인사이드 르윈”과 스탠스가 더 가깝다. 영화는 프란시스가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가’가 아니라 프란시스가 ‘얼마나 자신의 현실에 당황스러워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프란시스의 당혹감을 그녀의 표정 전면에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애써 숨기려 하는 그 표정을 통해 보여준다. 여기에는 더 세밀한 리얼리티가 있다. 이십 대 중후반에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표정은 당혹감과 분노라는 감정의 순수한 표출이 아니라 그 감정들을 숨기려는 프란시스의 얼굴과 가까울 것일 테니.


어색한 웃음과 미끄러지는 진심

 프란시스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자신과 살던 집을 떠나 트라이베카로 이사를 가고 싶어 했던 소피에게 “싫어”라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한 채 프란시스는 엉뚱하게 손에 낀 반지를 빼는 데 분통을 터뜨린다. 자신의 공연 날 저녁 함께 오랜 시간 보낼 줄 알았던 소피가 남자 친구와 함께 일찍 떠나야 한다는 말에 그녀도 덩덜아 함께 웃어버린다. 그러나 프란시스의 표정은 그녀가 단순히 ‘웃어버리기’까지 거쳐간 감정들에 대해 말해준다. 상대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감정과 그녀 내면의 감정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끝내 짓는 어정쩡하고 어색한 표정. 프란시스는 왜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표정을 지었을까?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왜 낯설지가 않은 걸까?


  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울 때 ‘네가 울고 싶으면 나를 부를 수 있게’ 방문을 열어놓고 가겠다는 친구(벤지)의 따뜻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는 앞서 ‘나는 가난하다’며 삶을 자책하는 프란시스에게 ‘너 정도는 가난한 것도 아니니 투정 부리지 마’라는 말로 그녀의 아픔을 일축해 버린다. 배려하는 마음은 있지만 여전히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진 못한다. 아주 차갑다고도 따뜻하다고도 할 수 없는 세상. 이 미적지근한 세상 속에서 어색하게 웃는 프란시스의 표정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하! 하! 하! 그러므로 프란시스를 닮은 이들이여,

영화 <프란시스 하> 스틸컷

  프란시스는 답답할 정도로 미련해 보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현대인들과 닮아있다. 자신의 꿈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자주 직면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진심을 좀 더 ‘쿨’하고 이성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프란시스의 어색한 표정이 사랑스럽지 않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패한 관계 때문에, 또 실패한 꿈 때문에 우왕좌왕하던 그녀도 결국엔 애써 억지웃음(하!하!하!)을 한 번 지어 보이고는 세상과 타협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수많은 타협 후에야 자신의 삶에 안정이 찾아왔지만 그녀가 그녀의 것들을 온전히 잃은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댄서가 되길 원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안무를 만듦으로써 여전히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를 떠나 유능한 남편과 결혼한 베스트 프렌드는 여전히 그녀의 공연을 기꺼이 보러 온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안 생겨요(Undateable)’이라고 인정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녀가 그녀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듯하다. 그러니 프란시스의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는 이들이여, 당신의 청춘이 실패와 타협의 연속처럼 느껴져도 괜찮다. 비록 어릴 적 가장 간절했던 열정과 사랑은 아니더라도 당신은 잘 살아갈 것이며 당신은 당신의 삶을 여전히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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