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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나라 Dec 17. 2024

고대 세계의 베르사유 궁전 - 빌라 아드리아나

위대한 황제의 꿈의 컬렉션

로마 나흘째

빌라 아드리아나(Villa Adriana)

하드리아누스 황제 별장(빌라 아드리아나)으로 가는 길은 꽤 멀다. 지하철 B 선 종점 레비비아(Rebibbia) 역에서 번호도 안 적힌 티볼리(Tivoli)행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가는 길은 자그마한 공장들이 많이 모여있는 로마 외곽지역을 지나야 해 교통체증이 꽤 심하다. 30~40분쯤 걸려 티볼리(Tivoli)에 도착한 후 다시 빌라 아드리아나 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버스가 언덕길을 꼬불꼬불 내려와 하차 지점에 내린 후 또 20여 분 더 걷는다.      

빌라 아드리아나 복원 모형(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주위는 한적한 시골 풍경이고 어쩌다 농가가 1~2채 보일 뿐이다. 빌라 아드리아나 입구를 지나 한참을 들어가도 인적은 드물고 넓은 장원은 텅 비어 보인다. 기다랗게 가로막고 서 있는 오래된 성벽 문을 들어서니 비로소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다가갈수록 장대한 별천지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몰래 숨겨둔 듯한 진짜 로마가 거기에 있었다. 중세도, 르네상스도, 바로크도 섞이지 않은 2,000년 전 자연 속의 로마 그대로가. 폼페이의 2배나 된다는 자연 속에는 그러나 없는 게 없다. 그리스 라틴 도서관, 목욕탕, 야외수영장, 아테네식 학당, 그리스식 야외극장, 수상극장, 인공연못, 운동장,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인근의 어느 신전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카노푸스 등등. 여기저기 흩어진 올리브나무들과 하늘을 찌를 듯한 사이프러스가 몹시도 잘 어울리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도 있다.     


폼페이가 당시 로마인들의 리얼한 일상을 보여준다면, 이 광대한 빌라 아드리아나는 세련되고 격조 높은 위대한 황제 한 사람의 개인적 꿈을 장대하게 펼쳐놓은 것이다. 격이 다르다. 돈으로 치장한 그런 별장이 아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문화에 심취하고 그리스 철학을 논하기를 좋아했다. 황제는 재임 중 로마에 머물기보다는 그리스, 이집트 등 속주들을 두루 순행했다. 황제는 순행 도중 보고 듣고 수집해 온 모든 것들을 총 집약하여 취향에 맞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곳에 만든 것이다.    

 

수상극장

이 빌라 외에도 황제는 우리에게 판테온(Pantheon)과 천사의 성(이 성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로 지은 것임)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리고 후대(後代)는 그의 위대함을 아드리아해(海)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은 <지중해 오디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빌라 아드리아나는 고대 세계의 베르사유 궁전이다. 우리는 로마의 포럼에서는 볼 수 없는 정돈된 장려함의 흔적을 찾아본다. 사실 빌라 아드리아나와 비교할 때 로마의 포럼은 단순히 폐허만 모아 둔 창고에 불과하다.’  

   

카노포스


카노포스 연못

우리는 느긋한 걸음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워낙 넓어 다 볼 생각을 포기하고 결국 가이드 북에 소개된 몇 군데를 우선 찾아간다. 수상극장, 그리고 카노포스라는 이름의 황제의 조각 수집품들로 둘러싸인 기다란 인공 연못가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이 빌라를 보게 된 행운에 감사한다. ‘언젠가 다시 와 올리브나무 그늘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야지’하는 빈 염원 속에 아쉬움을 담은 채 총총히 빌라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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