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베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
카타콤베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
어제 메이데이 집회로 중도 포기했던 카타콤베(Catacombe)와 아피아 가도(Via Appia)를 가기 위해 다시 산 조반니 역으로 향한다. 오늘의 산 조반니 광장은 어제의 넘쳐나던 인파는 간데없고 텅 빈 광장에는 벤치를 차지한 노인들만 눈에 띈다. 218번 버스는 높다란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라테라노 교회 뒤편을 돌아 좁은 옛길로 접어든다. 20여 분쯤 가니 관광버스 몇 대가 서 있는 곳에 산 칼리스토(San Calisto) 카타콤베 표시가 보인다.
얼른 내려 사람들을 따라 자그마한 철책 문을 들어서니 묘지라 믿기지 않게 잘 가꾸어진 넓은 뜰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마당에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매표소에도 긴 줄이 서 있다. 카타콤베 입장은 가이드 동반이 필수이다. 잘못 들어갔다 영영 못 나오는 수가 있으니까. 실제로 언제인가 일본인 관광객 부부가 실종되어 몇 년 후 발견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카타콤베 입구 안내판에 한글 표시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한국어 가이드>. 일본어, 중국어 가이드도 없는데 한국어 가이드가 있다니 놀랍다. 게다가 현지인 직원 한 명이 우리를 보고 웃는 얼굴로 인사까지 건넨다. ‘안녕하세요?’ 분명한 한국말로. 약간 어깨가 으쓱해진다.
카타콤베 입장은 1시간 간격으로 있는 것 같다. 독일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차례로 부르는 가이드를 따라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입장하고 달랑 동양인 4명이 남는다. 우리 부부와 부천에서 왔다는 40대 부부. 조금 있으니 로만컬러의 신부님 한 분이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중키에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모습인데 40대 중반쯤(나중에 밝힌 신부님의 나이는 55세) 되었을까? 이곳에서 한국 신부님이 우리를 직접 가이드해 준다니 벌써 신이 난다. 먼저 카타콤베 그림 안내판 앞에서 10여 분간 전체적인 사전 설명을 쭉 해준다. 그리고 우리를 지하 묘지 안으로 천천히 안내한다. 내려가는 계단서부터 벌써 긴장되고 흥분된다. 말로만 듣던 카타콤베를 드디어 들어가 보는구나.
곳곳에 전등이 켜져 있지만 지하 묘지는 정말 미로 같다. 길은 1~2명이 겨우 비켜 갈 정도로 좁지만 천정은 비교적 높아 머리 부딪칠 칠 염려는 없어 보인다(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음). 벽에는 시체를 안치했다는 침대 같은 구멍들이 좌우로 층을 이루고 있고 초대 교부들이 예배를 인도했다는 자그마한 제단도 있다. 제단 위 높은 구멍에서 빛이 제법 와닿는다. 간혹 보이는 두어 평의 가족 묘지와 처소 벽에는 성경을 설명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주로 세례와 구원에 관한 설명이지만 요나의 그림도 보인다. 그 시절에는 글을 못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그림으로 성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저곳 신부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좁은 통로를 바싹 긴장한 채 신부님 뒤를 따라다닌다.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봐. (이하 사진 출처 : Catacombe of Rome 공식 사이트)
몇몇 초대 교부(교황)의 무덤을 지나 이리저리 돌다가 신부님이 갑자기 우리들을 멈추게 한다. 옆으로 기다랗게 엎드려 죽어 있는 젊은 여인의 조각이 희미한 불빛 아래 놓여 있다. <성녀 체칠리아(Santa Cecilia)의 무덤>. 신부님의 설명은 이랬다. 성녀 체칠리아는 로마의 유력 귀족 가문의 딸이었는데 기독교 박해 시대에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남편과 주위 사람들을 교화하고 로마의 신들 숭배를 거부한 탓에 찜통에 넣어 쪄서 죽이는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며칠을 지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다시 도끼로 목을 3번 쳤는데도 목이 잘린 체 3일간 살아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그녀의 유해를 이 자리에 몇 세기 동안 안치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1,599년 관을 열어 보니 시신이 조금도 부패하지 않은 채 목이 잘려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있더라나.
이 기적을 보고 당시 교황이 당대 최고의 조각가(Stefano Maderno)에게 명하여 그 모습 그대로 조각한 것이 지금 이 자리의 동상(복제품)이란다. 진품은 로마 트라스테베레(Trastevere)에 그녀를 기념해 지은 산타 체칠리아 교회에 있단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생전 악기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해서 음악의 수호 성녀로 모셔져 있기도 하다. 1,566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은 바로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땅굴치고는 습하거나 퀴퀴한 냄새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 넓은 지하무덤을 어떻게 파 내려갔는지 궁금해서 신부님께 물어본다. 카타콤베는 대부분 응회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 굳어진 것으로 손으로도 쉽게 팔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공기와 접촉하면 돌처럼 단단히 굳어지고 시체의 썩는 냄새도 흡수한다고 한다. 카타콤베(Catacombe)는 이탈리아 말로 '아래로 움푹 파인 곳'이란 뜻인데 이런 카타콤베는 로마 인근에만도 60여 개가 있고 그 총길이만 900km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 공개되고 있는 곳은 5개 정도이고 지금도 계속 발굴작업 중이라나. 그리고 이 카타콤베들은 모두 로마교황청 관할이란다. 아 그래서 신부님이 가이드를 하는구나!
초기에는 순전히 기독교도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다가 기독교 박해가 점점 심해지자 일부 기독교인들이 이곳으로 숨어들기 시작한다. 이걸 알게 된 로마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는 바람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이곳에서 점차 살게 되었다는 신부님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다. 궁금증은 해소되지만, 그때 상황들을 그려 보니 마음이 한동안 숙연해진다. 갑자기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 중 ‘카타콤베 부근의 소나무’의 가락이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레스피기는 그의 프로그램에 이렇게 적고 있다. ‘카타콤베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 그 깊은 속에서 슬픈 성가의 소리가 울려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장엄한 찬가처럼 대기에 퍼졌다가 점점 신비롭게 사라져 간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겨우 이 계단 몇 m에 불과하구나. 30~40분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오니 5월의 하늘이 더욱 눈부시다. 하나님!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