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양식의 기념비적 장소
바로크 양식의 기념비적 장소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은 건물 사이에 숨어져 있는 직사각 꼴의 광장이다. 멀리에서는 잘 보이질 않고 건물 사이의 몇 갈래 좁은 길로만 통한다. 로마 시대의 전차 경기장 위에 세워졌다는데 과연 소문난 광장답게 시끌벅적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우선 광장 양 귀퉁이에 있는 넵툰 분수와 무어인의 분수를 한 바퀴 휙 돌아보고 가운데 있는 4대 강 분수 앞에 선다. 로마의 대표 분수답게 베르니니(Bernini)의 조각들이 요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하여 그 위에 오벨리스크까지 우뚝 솟아 있다. 광장 한쪽에는 초상화를 그리는 미래의 카라바조들이 자리하고 멋진 이발소 그림(?)들이 여기저기에서 느긋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길가에 쭉 늘어선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봄날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4대 강 분수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지친 다리를 쉬면서 눈앞에 자리한 멋들어진 파사드의 교회 건물 한 채를 유심히 바라본다. '머리카락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녀 아네제(영어명 Agnes)를 위해 지은, 로마 바로크를 상징하는 산타네제 인 아고네(Sant’Agnese in Agone) 교회이다. 가난한 석공 출신 천재 건축가 보로미니(Boromini)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건축물이다. 우리는 지금 베르니니(Bernini)를 걸터앉아 보로미니(Borromini)를 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크 로마를 선도한 위대한 두 건축가. 이 둘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이 화려한 바로크 도시 로마를 볼 수 있었을까? 일본의 건축가 유자와 마사노브는 로마를 황홀한 바로크 도시라고 불렀다. 그중에서 나보나 광장은 바로크 양식의 기념비적 장소라고 불린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로마는 '바로크 로마'이다. 몇 곳의 고대 로마의 유적과 잔해들은 단지 바로크 로마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이 두 사람 이전의 로마는 지금의 로마가 아니었다. 더럽고 불결하고 무질서가 판치는 무법천지나 다름없었고 고대 로마의 영화는 땅속에 묻힌 폐허 덩어리에 불과했다.
16세기 후반 교황 식스투스(Sixtus) 5세는 원대한 로마 재건축 계획을 수립하고 새로운 로마 건설을 시작했다. 교황의 의도나 돈의 출처는 묻지 말자. 넓은 직선 도로를 만들고 새 건축물을 짓고, 유적을 발굴하고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대로 도시를 꾸몄다. 또 로마 시대의 오벨리스크를 억지로 옮겨다 포폴로 광장과 로마 3대 교회 앞 광장에 세웠다. 가톨릭 교회의 위세를 자랑하고 사람들이 쉽게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바로크 로마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선봉에 이 위대한 두 천재 바로크 건축가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있었다.
잠시 이런 생각들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가까이서 귀에 익은 칸소네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예사 노래 솜씨가 아니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와 광장의 한 모퉁이를 에워싼다. 무슨 판이 벌어진 모양이다. 우리 부부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다. 나이가 꽤 든 영감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멋있는 포즈로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온몸을 흔들며 이마에 땀까지 송송 날 정도로. 칸소네에서 나폴리 민요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우리도 공짜 구경에 연신 즐거워하며 부라보를 외친다. 야! 이탈리아에는 명가수가 따로 없네, 거리의 늙은 악사까지도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다니.
공연이 다 끝나갈 무렵 영감의 입모습을 보니 조금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립싱크다. 뒤 편에 카세트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다른 구경꾼들은 아무도 그걸 보질 못했나? 아니면 알고서도 모른 척하는 걸까? 모자를 돌리는데 제법 동전이 수북하다. 명가수가 아니라 명배우다. 어떻게 그렇게 능청스럽게 연기를 할까? 미국의 명배우 오손 웰즈(Orson Welles)의 말이 허언이 아니네. "이탈리아는 배우로 가득하다. 5천만이나 되는 그들 모두가 한가닥 하는 배우들이다. 그중에서 시원찮은 몇몇 사람들이 무대나 영화에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