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엔조를 아시나요?
베네치아 광장
바르베리니 광장을 나오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광장 근처의 후미진 골목에서 조용하면서도 제법 분위기 있어 보이는 식당을 발견한다.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본토(?) 파스타로 로마 첫날의 점심을 제법 근사하게 먹는다. 그리고 로마의 중심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는 버스를 다시 탄다. 베네치아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우리가 로마에 온 것이 정말 맞기는 맞네! 둘러보니 보이는 모든 것들이 눈에 익다.
광장의 중심에는 로마의 랜드마크인 하얀 대리석의 거대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자리한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콜로세움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광장 왼편에는 트라야누스 원기둥이 높이 솟아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채 간간이 기둥만 보이는 유적들의 잔해와 포로 로마노,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등 로마를 상징하는 유적들이 다 보인다. 와! 진짜로 로마에 다시 왔구나! 아내의 손을 잡고 인파를 따라 베네치아 광장 이곳저곳을 한동안 누빈다. 그리고 숨을 좀 돌린 후 천천히 카피톨리노(Capitolino) 언덕 계단을 오른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이 광장의 입구 양쪽에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Castor)와 폴록스(Pollux)의 대리석상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반기는 듯 서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말을 탄 채 손을 들고 우리를 맞이한다.
리엔조(Rienzo)를 아시나요?
그런데 계단 왼쪽 한 모퉁이에 보일 듯 말 듯, 망토를 걸치고 아래로 향하여 뭐라고 외치는 듯하는 자그마한 청동상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콜라 디 리엔조(Cola di Rienzo), 이 인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 <리엔찌(Rienzi)>를 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아! 바로 그 리엔찌. 히틀러가 가장 좋아했다는 오페라. 히틀러는 리엔찌와 똑같은 비참한 말로(末路)를 꿈에도 상상해 봤을까?
도대체 콜라 디 리엔조는 어떤 인물인가? 내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4세기 중반 로마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간 후 귀족들의 전횡이 극심하던 무질서 상태의 로마에 미천한 평민 신분으로서 민중들을 선동하여 귀족들의 전제를 뒤엎고 호민관이 되어 공화국을 건설하고 이상주의적인 정치를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귀족들의 반격과 민중들의 오해로 미움을 받아 민중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비극적인 인물.-
그는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바로 이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민중을 향해 위대한 로마 재건을 선동했고 또 이 광장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 서양 역사가 대부분은 리엔조의 평가에 인색하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그를 ‘어리석은 인간’으로 가볍게 취급했고, 에드워드 기본(E.Gibbon)도 특히 그를 ‘무례한 이자 미치광이 같은 인물’로 폄하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탈리아인>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루이지 바르지니(L.Barzini)는 그의 책에서 한 장(章)을 할애하여 리엔조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탈리아 전 지역을 지배하고자 하는 원대한 야망, 제국의 재건과 종국적으로 전 유럽의 지배, 고대 역사에 고무된 평화와 법과 덕목이 지배하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꿈, 민중과 나라와 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랑, 이런 모든 것들을 지닌 순수의 전형과 같았던 인물’
누구의 평가가 더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탈리아인들은 그를 잊지 않고 그가 민중을 향해 외쳤던 바로 그 언덕에 조그마한 동상을 세워 그를 기억한다. 그의 외침은 바로 오늘날도 이탈리아인들 모두의 염원이 아닐까? 그리고 더하여 바티칸 시국 안의 유명한 쇼핑 거리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 Via Cola di Rienzo(콜라 디 리엔조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