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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나라 Nov 29. 2024

시골 노친네의 좌충우돌 로마 구경하기

포폴로 광장에서 카라바조를 만나다

무려 33년 만에 로마에 다시 왔다. 그러니까 젊은 시절 회사 출장으로 몇 차례 로마에 온 적이 있었다. 바쁜 출장 중에 짬을 내어 돌아본 로마는 겨우 성 베드로 성당,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정도가 전부였다. 내가 아는 로마는 고작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영원의 도시 로마를 본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었다. 200여 년 전의 괴테만큼은 아니었지만. 괴테는 그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자, 내일 밤은 마침내 로마다. 지금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소망이 이루어지면 그 뒤엔 무엇을 원해야 될까?‘     


쉽게 다시 올 것만 같던 이탈리아는 밥 먹고 살기 바빠 30년이 넘게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이탈리아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상 매체들을 통해 내가 미처 몰랐던 이탈리아를 접하고 이탈리아에 관한 책들도 열심히 읽었다. 베르디와 푸치니 등의 오페라 음반을 사 모으고 카라바조와 미켈란젤로의 화집도 사서 여러 번 봤다. 어느 사이 이탈리아 여행은 염원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 해 동안 벼르고 벼른 끝에 마침내 오늘 로마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어떤 이탈리아가 기다리고 있을까?     


로마 첫날

시차와 긴 비행으로 온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아침 식사를 하고 서둘러 숙소를 나온다. 우리의 로마 일정은 겨우 4~5일, 로마는 넓고 시간은 짧다. 짧은 일정이라 유명한 관광 명소는 생략하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진짜 로마를 보기 위해 동선을 짠다. 먼저 테르미니역 관광안내소를 찾아 로마 패스(대중교통 이용권)부터 사고 무료 지도를 얻는다. 오래된 스마트폰이 있지만 로밍도 해 오지 않았고 GPS 보는 법도 모른다. 손에는 종이 지도 한 장과 낡아빠진 문고판 카라바조 책 한 권뿐이다. 그리고 30여 년 전의 희미한 기억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부딪치자. 어차피 편안한 여행을 하자고 온 것이 아니니. 애써 난감함을 감춘 체 아내의 손을 꽉 잡고 테르미니역을 나선다.   


지하철을 타고 포폴로광장으로

 테르미니역을 나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호기 있게 묻는다. ‘나보나(Navona) 광장 가는 버스 어디에서 타나요?’ 두어 달 익힌 내 유창한(?) 이탈리아어 실력을 발휘할 기회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신통찮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고 지나간다. 모두 귀차니스트(귀찮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인가?. 아내 앞에서 더 이상 내 이탈리아어 실력 자랑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지하철을 탄다. 지도를 보니 메트로 A 선 어디에 포폴로 광장이 있다. 테르미니역에서 내려가는 지하철 A 선 탑승장은 길고도 깊다. 장식이라고는 거의 없는 허허한 지하를 에스컬레이터를 탄 체 출근길 인파에 떠밀려 100여 m쯤 족히 내려간다. 사실 펠리니(Fellini)의 영화 <로마>를 보기 전까지는 로마에 지하철이 있는지도 몰랐다. 영화의 장면으로 기억하건대 로마 지하철이 이처럼 깊이 내려가는 이유는 바로 로마유적 때문일 게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고대 유물이 지하에 묻혀 있을까?    


포폴로 광장

지하철은 3~4 정거장을 지나 우리를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 역에 내려준다. 아직 이른 오전 시간이라 꽤 넓은 광장은 텅 비어 있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3,0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이제야 로마에 온 실감이 난다. 여기가 그 유명한 포폴로 문이 있는 포폴로 광장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시절부터 로마 북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순례자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때로는 화형이 집행되기도 하고 민중 집회가 열리던 광장이다. 잔뜩 조여있던 가슴이 비로소 탁 트이고 조금씩 로마에 온 감격이 밀려온다. 타원형의 광장 양쪽으로 반원형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다. 동쪽 분수 뒤에는 나지막이 핀치오(Pincio) 언덕이 둘러 있고 그 너머 보르게제(Borghese) 공원이 보일락 말락 한다. 그리고 남쪽 양길 가에 바로크 양식의 교회 2개가 어깨를 겨누며 당당히 서 있다.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고맙게도 이탈리아 교회는 입장료가 없다

우리는 사람도 별로 없는 오벨리스크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로마 첫날의 아침 공기를 만끽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포폴로 광장을 제일 먼저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관문 옆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Santa Maria del Popolo) 교회에 있는 카라바조를 보기 위해서다. 교회에 들어서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라파엘을 비롯한 유명화가 그림들이 교회당 안을 장식하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오직 카라바조(Caravaggio)뿐이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교회당 안의 한 예배실로 달음질한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로마 - 포폴로광장에서 카라바조를 만

성 베드로의 십자가 책형& 성 바울의 개종

예배실에는 카라치(Caraci)의 그림을 가운데 두고 양쪽 벽에 그 유명한 카라바조의 그림 2점이 비스듬히 보이기 시작한다. <성 베드로의 십자가 책형과 성 바울의 개종>이다. 정면에서 가까이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조명 아래 펼쳐있는 두 그림을 번갈아 쳐다보는 순간 가슴이 뛰고 전율이 온다. 직접 보지 않고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이다. 셔터를 누르려는데 사진 촬영 금지표시가 눈에 띈다. 그래 내 후진 카메라에 안 담는 편이 훨씬 낫지. 우리는 그림 앞에 시간을 잊은 채 한동안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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