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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나라 Dec 20. 2024

빌라 데스테(Villa d'Este)의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흔적

영롱한 물의 유희

우리는 빌라 아드리아나를 나와 빌라 데스테(Villa d’Este)로 가기 위해 서둘러 버스 정거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버스표를 파는 담배 가게(Tabachi)의 문이 닫혀 있고 주위의 상점들도 마찬가지다. 오늘이 휴일도 아닌데 점심 먹으러 들 갔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문이 열려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점심시간이라 홀에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도 리조토(Risotto)와 맥주 한 잔을 주문한 후 여종업원에게 담배 가게가 몇 시쯤 문을 여는지 물었더니 4시에 연다고 한다.     


아직 학생티가 나는 여자 종업원은 뭘 그런 걸 다 묻나요 하는 표정이다. 뭐라꼬? 4시라니! 놀라 재차 물어도 같은 대답이다. 아니 스페인도 아닌 로마에 시아스타(낯잠 시간)가 있단 말이야? 그러면 버스에서 표를 끊을 수 있겠지? 하고 물으니 그건 또 안 된다고 한다. 택시는? 택시는 당연히 있겠지? 택시도 4시까지는 안 온단다. 그럼 어떻게 가란 말이냐! 우리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 어깨만 들썩하고 간다. 우리는 돌 씹는 기분으로 리조토를 일부러 천천히 먹으며 시간을 끌다가 할 수 없이 식당 문을 맥없이 나선다. 여기서 2~3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투덜거리며.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아까 그 앳된 여종업원이 손에 버스표 2장을 쥐고 서 있다. 우리 옆자리의 손님이 동양 노인네 두 사람이 난감해하는 사정을 알고서 주더라나! 우리는 Grazie!(감사합니다) Grazie mille!(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아는 이탈리아어를 총동원하여 감사하고 또 감동한다. 


빌라 데스테 전경(사진출처 :UNESCO 세계문화유산 사이트)



이렇게 간신히 탄 버스로 빌라 데스타에 도착하니 3시경. 시간이 아직 넉넉하다. 어쨌든 다행이다. 나는 빌라 데스테에 온 적이 있다. 업무관계로 근처에 왔다가 잠시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아주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이번에 다시 온 것은 순전히 아내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라고 말해 온 이곳의 분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시내에서 멀어 조용하리라 기대했던 분수 주변에는 단체 관광객들과 중고등학생들로 붐빈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감탄사와 셔터 소리, 웃음소리가 한적해야 할(?) 시골 정원을 시끌벅적 장터같이 만들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단체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에야 비로소 빌라는 조용해진다.    

 


빌라 아드리아나에 비하면 아주 작고 아담해 보이는 정원이지만 분수들만은 일품이다. 로마 시내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정말 아름답고 멋진 분수들이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형형색색 수십 개의 분수에서 뿜어대는 물줄기와 물의 유희는 과연 장관이다. 누구의 소유였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단지 이 분수가 1,550년 경에 어느 추기경의 여름 별장으로 만들어졌고 수압으로, 즉 자연의 힘만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물을 뿜어 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이로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가 함께 섞여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우리는 늦은 오후 5월의 따사한 햇살 아래 마냥 신기하고 영롱한 분수대를 지켜보기에 여념이 없다.     


프란츠 리스트(Frantz List)의 흔적

빌라 건물 입구 한쪽 벽에 유심히 보아야 찾을 수 있는 4 각형의 자그마한 석판 하나가 붙어 있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헝가리의 위대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수년간 여기에 와 작곡하다 이렇게 적혀 있다. 그리고 빌라 방 한 곳에는 리스트가 작곡할 때 사용하던 오래된 피아노 1대가 온전히 보존되어 놓여 있다. 지금이라도 방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금방 울려 퍼질 것만 같다. 


사진출처:구글

리스트는 이 빌라에 자주 초대되어 머물곤 했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무대와 여자 편력을 뒤로하고 수도 신부가 되어. 리스트는 이 방에서, 이 피아노로, 이 아름다운 분수 정원을 내려다보면서 1,877년 어느 날 피아노곡 한 곡을 작곡했다. 바로 그 곡이 <리스트의 음악기행> ‘순례의 해’ 제3집에 들어있는, <빌라 데스테의 물의 유희( Les jeux d’eau a la Villa d’Este)>이다. 제목 그대로 빌라 데스테의 분수를 노래한다. 크리스털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물줄기와 속삭이듯 출렁이는 물의 희롱, 그리고 용솟음치듯이 뿜어대는 분수의 역동감 등, 이 아름다운 광경과 물소리를 놀랍게도 그의 음악 속에 그림처럼 다 그려놓았다. 인상파 음악(묘사 음악)의 효시이다. 이후 인상파 음악으로 유명한 드뷔시, 라벨도 이 곡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늘 빌라 데스테를 추억하곤 했는데 오늘 이곳에서 뜻밖에 리스트를 만났으니 더욱 이 곡을 사랑하리라. 

(PS : 빌라 데스테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전동차 안에서 둘 다 피곤하여 잠깐 졸다가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카메라야 낡아빠진 구닥다리라 아깝지 않지만  그 속의 사진들이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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