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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Apr 25. 2024

한밤중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

잠결에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바사삭 바사사삭. '

어두운 밤에 들리는 소리는 매우 낯설었다.

'스스스스 바사사삭  스스스스.'

'무슨 소리지? 누군가 화장실 다녀오는 소리는 아닌데?'

잠결에도 가족의 인기척이 아닌 낯선 인기척임이 느껴졌다. 머릿속으로는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귀는 더욱 소리에 집중을 했다. 아무리 들어도 낯선 소리. 우리 집에서 낯선 소리가, 그것도 한밤중에 나는 이유는... 도둑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파사사삭. 타타타탁'

소리가 커진다. 내 옆으로 도둑이 온 걸까? 그런데 왜 발걸음 소리가 안 들리지? 그리고 이 소리는 대체 무슨 소리지? 도둑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몽둥이 같은 묵직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무엇일까. 도둑은 내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걸 눈치챈 걸까, 아니면 확인하러 나에게 접근하는 걸까? 심장소리가 귀에까지 들린다. 이 소리를 숨기고 자는 척을 하기 위해 이불을 발로 차다가 다시 덮고는 살짝 입을 벌리고 손 하나를 이마에 올려 나름 깊이 잠든 척을 해본다. 그러자 소리가 잠시 멈춘다. 아뿔싸. 너무 과했나. 지금 내가 눈을 뜨면 도둑의 눈과 마주칠 것 같다는 생각에 호흡이 불규칙 해진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을 걸 그랬나. 아직도 날 지켜보고 있는 건가? 왜 소리가 안 들리기? 그 순간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타타타타탁. 스으으으'

소리가 처음처럼 약간 멀게 느껴진다. 이마에 짚은 손을 살짝 눈 쪽으로 옮기고 아래쪽 틈으로 살짝 눈을 떠 상황을 살핀다. 긴장한 탓인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 여전히 방은 어두웠고, 수면등 외에 다른 불빛은 없었다. 어디지? 누구지? 소리의 원인을 찾으러 일어나고 싶었지만, 너무나 빨리 뛰는 심장 소리에 차마 몸을 일으킬 순 없었다. 옆에 누운 오빠를 이불속에서 발로 툭툭 건드려 깨워보지만, 이 둔한 남자는 열심히 코를 골면서 몸을 돌린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 내어 깨우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겁이 나 할 수가 없다.

'파사사삭. 위이이잉. 타타타타탁'

또 소리가 난다. 이번엔 좀 더 재빠르다. 내가 깬 걸 눈치챈 걸까? 아직은 가까이 온 것 같지 않아 잠결에 뒤척이는 척 몸을 돌리며 실눈으로 주변을 더 살핀다. 아직은 어두우니 내가 눈 뜬것을 그도 모를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옷장 끝 코너에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 천장부터 옷장의 반을 채울 만큼 커다란 그림자가 움직인다. 옷장 속에 금고나 귀중품을 숨겨놨을 거라 생각한 범인이 옷장문을 열고 샅샅이 뒤지고 있는 것 같다.

"오빠, 일어나 봐. 오빠아"

최대한 작은 소리로 남편의 귀에 대고 불러보지만, 깊은 잠에 빠진 그는 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소리보다 본인의 코 고는 소리가 크니 그럴 법도 하다. 평소에도 내 단잠을 깨우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원망스럽다.

'타타타타타타타탁'

소리가 더 빨라진다. 순간 몸이 굳는다. 더 이상 남편을 깨울 수가 없다. 얼음인 상태로 얼마나 있었을까 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아직도 옷장을 뒤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옆에 있는 화장대? 범인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또다시 실눈을 떠 본다. 제발 내 앞에만 있지 않기를 바라며...

그림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여전히 크고 바쁘게 움직인다. 화장대 쪽이니까 도둑이 눈치채면 재빠르게 방문으로 나가야겠다. 그리고 불을 켜고.. 어디로 가야 하지? 주방으로 가서 칼을 들어? 현관으로 도망쳐야 하나? 야구방망이가 어디 있더라? 애들은 어떡하지? 소리를 지를까? 그림자의 움직임을 살피며 머릿속에서는 탈출방법을 짜내느라 바빠졌다.

'위이 이이이 잉. 타타타타타다다닥'

소리와 그림자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사람의 그림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움직임이 사람의 동작이 아닌 느낌이다. 그럼 뭘까? 유령? 진짜 귀신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귀신이 원래 눈앞에 그림자로 보이던가? 아니면 저건 뭐지? 두려움은 조금씩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자가 같은 자리에서만 계속 움직이느라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있다는 게 보였다.

살아 움직이는 커다란 그림자. 바쁘게 무언가를 하는 저 그림자는 대체 누구의 그림자일까. 대체 이 소리는 뭘까. 5분이 넘게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같은 자리에서 불규칙적으로 움직임이 느껴진다. 소리도 나는데 계속 듣고 있으니 물건을 찾는 소리라기보다는 바람소리 혹은 나뭇잎 소리처럼 들리는 듯 해 조금씩 눈이 크게 띄었다. 그리고 또다시 10분쯤 흘렀을까.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이나 귀신은 아닌 듯했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림자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진짜 유령인가? 그런데 왜 저기에만 있지? 유령이 그림자가 있던가? 무섭고 궁금한 상황에서도 내가 보았던 영화를 떠올리며 그림자의 모양과 흡사한 캐릭터를 찾아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대체 저 그림자는 누구의 것일까?

'위이 이이이 잉. 타 다다다닥'

다시 소리가 커지더니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어? 그림자 안에 무언가가 있다. 까만 점? 그림자 안에 더 짙은 검은 무언가가 움직인다. 뭐지? 몸을 일으켜 고개를 소리 나는 쪽 가까이 다가가 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 좀 더 가까이 소리를 내지 않는 반경 내에서 상체만 앞으로 앞으로 다가가 짙은 그림자에게 초점을 맞춰본다.

"꺄아아아앙아아악"

무언가 날고 있다. 벌레 같은 것이 날아다니며 벽에 부딪혔다가 옷장에 부딪혔다를 반복한다.

"으아아아아앙. 저게 뭐야~"

울음이 터졌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벌레다. 바닥에 누워있어도 무서울 판국에 저 벌레가 날개를 달고 우리 집을 날아다닌다. 고개를 틀어 방향을 바꾸어 나에게 날아오지는 않을까 두려워진다. 이럴 바엔 차라리 도둑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오빠아~일어나 봐라~ 으응?"

눈물을 훔치며 남편을 흔들어보지만, 이 남자는 무슨 꿈을 꾸는지 혼자 중얼거리느라 바쁘다. 꼭 필요할 때는 잠만 자는 남편이 야속하기 그지없지만, 지금은 남편 흉을 볼 때가 아니다. 슬금슬금 벌레의 동태를 살피며 아이들 방으로 갔다.

"2호야, 일어나 봐. 응? 흐흐 흐흑 2호야~~ 제발~~"

"나 졸려~ 더 잘 꺼야."

"엄마 한 번만 도와주고 자~ 응? 제바알~~"

"왜에~ 나 잘 꺼야~"

"2호야 저기 벌레가 있단 말이야."

"그냥 잡아 그럼."

"엄마는 못 잡아. 제발 좀 도와줘. 너무 무섭단 말이야."

"아아~~ 잠 좀 자자"

"2호야.. 제바알~~ 으응? 흐흐흑"

"아이~ 졸린데. 무슨 벌렌데"

"몰라. 무서워서 못 봤어. 네가 가서 보고 잡아주면 안 돼? 진짜 무서워서 그래."

"하아.. 알았어. 어딘데?"

우리 집에서 가장 용감하지만 잠이 많은 2호에게 매달리다시피 붙어서 애걸복걸하며 살려달라고, 아니 벌레인 것 같은 쟤 좀 잡아달라고 울었다. 2호는 매우 귀찮다는 듯이 일어났지만, 잠결에도 용감함과 자신감을 장착하고는 방에서 나와 불을 킨다.

"엄마, 어디? 없는데?"

"몰라. 옷장 쪽에 있었어. 화장대 있는데 불 켜봐."

1호 옆에 쪼그려 앉아 호흡을 가다듬으며 2호에게 말로만 설명을 한다.

"아, 진짜. 엄마. 여기 제대로 안 봤지?"

"왜~ 없어? 진짜 있었단 말이야. 잘 찾아봐."

"아니 엄마. 이리로 와봐."

"안 해. 안가. 무서워. 벌레야? 벌레 맞지? 뭔데에~"

"벌레 아니야. 이쪽으로 와서 봐."

"싫어 네가 해결해."

"엄마. 얘 장수풍뎅이잖아. 어떻게 빠져나왔대?"

그랬다. 얼마 전 번데기에서 나온 그 녀석이었다. 아직 날개도 다 마르지 않은 녀석이 나를 공포 속으로 밀어 넣은 범인이었던 것이다. 2호는 내 모습이 웃기지만 너무 울어서 차마 놀리지는 못하겠는지 입을 악물고 크크큭 거리며 장수풍뎅이를 잡아 집에 넣어주고는 쿨하게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뚜껑에 작게 뚫린 곳으로 나왔나보다.

장수풍뎅이였다니. 저 녀석이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고? 괘씸한 것. 내가 그동안 흙도 갈아주고 물도 뿌려주면서 그렇게 애지중지 관리해 줬건만 은혜를 이렇게 갚아? 넌 내일, 아니지 오늘 해가 뜨자마자 방생할 테다.

이놈아,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봐라!!

이녀석이 그 유령 혹은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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