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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May 08. 2024

얼룩 모모와 어느 소년 이야기

생추어리 말구조보호센터를 다녀와서.

우리 집 아들들은 동물을 좋아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육식동물은 그 카리스마가 멋있고, 거대한 양을 먹는 초식동물은 압도당할만한 크기에 매력을 느낀다. 작은 동물들은 바라보는 동안 눈에서 하트가 뚝뚝 떨어지니 어딜 가든 여행에 동물과 관련한 일정을 꼭 넣곤 한다. 이번 제주 여행에도 하루는 조류, 하루는 말 보호센터의 여정을 계획했다. 그중 보호센터가 인상 깊었는데 정확한 명칭은 '생츄어리 말구조보호센터'라고 한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말 생산지이다. 특히 경마장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 제주의 말들은 ‘경주마’로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주마도 부상을 입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 쓸모가 없어지면 퇴역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퇴역마들은 승용말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하지만 대부분 도축되어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그들의 운명에 한줄기 빛이 손을 내민다. 매년 경주마 약 1800마리가 만들어지고 그중에서 1400마리 정도가 사라지고 있다. 그들을 위해 제주 곶자왈에 동물보호구역을 조성하여 합·불법 도축현장에 잡혀 온 퇴역한 말들을 구조해 온 말들의 구세주.  2, 3살밖에 되지 않은 퇴역마가 최상의 조건 아래 살아가도록 돕고 있는 생츄어리 말구조보호센터에는 센터장님과 그의 아내분이 알콩달콩 함께 말들을 보살펴 주신다. 두 분은 마음씨만큼 참 인상이 좋으셨다. 누구든지 언제나 환영해 줄 것 같은 편안하게 웃는 인상이 바라만 봐도 행복해진다. 센터장은 “도축현장에 있는 말들은 개인의 사유재산이어서 공짜로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현장에 가보면 심지어 어떤 말은 임신한 상태에서 도축 예정이었던 경우도 있다. 이렇게 도축된 말 중에 약 60%는 강아지 육포로 만들어진다. 한때 사람들에게 명예와 부를 안겨줬는데 결국 그 말을 이용해 엑기스나 육포로 만들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유튜브 채널 ‘곶자왈 말구조 보호센터’를 만들었고 우리나라의 말 복지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센터장의 노력이 결실이 맺어져 최근엔 방송을 통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배우 김남길 씨는 아픈 말 한 마리를 평생 후원하겠다고 결연도 맺었고 개인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도 늘었다. 최근에는 ‘호스 테라피(Horse Theraphy)’라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말과 사람이 함께 교감하는 체험을 통해 관광객들이 힐링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의 말들은 사람에 의해 상처받은 말들인데 그 말들이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말과 사람이 공존하며 행복해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의 다짐에 딱 맞는 프로그램이라는 건 체험 5분 만에 알 수 있다.

말들은 반려동물처럼 긴장감이나 불안한 기색 없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오름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놀다가 센터장이 베어 온 풀내음을 맡으면 어디선가 30여 마리가 하나 둘 모여 먹이 담은 트럭을 쫓아오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무리생활을 하는 말들의 서열별로 거리를 두어 한아름씩 던져주면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에 맞추어 열심히 먹는 모습에 보는 이는 힐링이 된다.

맛있게 먹으렴, 사이좋게 먹으렴, 천천히 먹으렴 옆에서 토닥이며 말을 걸어도 겁내지 않고 오히려 더 가까이 붙어 만져주길 원하는 사랑 가득한 이 아이들을 못 볼 뻔했다니.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30년 넘게 살 수 있는 말을 2~3년 만에 강아지 사료가 되어야 한다니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난다.

어느새 아이들은 말들과 친구가 되었다. 말의 무리에 껴서 어루만지기도 하고, 타보기도 하고, 먹이도 주는 모습이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자란 듯하다. '블랙 뷰티'라는 안나 세웰이 쓴 소설에서, 노쇠한 경주마인 블랙 뷰티와 소년 조와의 우정이 이런 것일까. 이제는 집에 갈 시간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아이와 말 모모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이 장면과 감정을 오래도록 가지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모든 동물도, 세상의 모든 어린이도 이들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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