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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Aug 26. 2024

김밥은 사먹자.


주말 저녁은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기에 언제나 특별하다. 그러나 그 특별함은 가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어느 흐리멍덩한 일요일 저녁, 나와 아이들은 저녁 메뉴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각자 김밥을 싸먹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나도 그 과정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재료를 준비했다. 계란, 참치마요, 묵은지, 당근 등 원하는 재료를 골라 각자 개성 있는 김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김밥 재료가 준비된 후, 나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며 김밥을 어떻게 싸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 찼고, 나의 설명은 그들의 귀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빨리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에 들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그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해프닝이 시작되었다.

첫째는 참치에 마요네즈를 너무 많이 넣어 마치 죽처럼 만들어버렸다. 둘째는 묵은지를 새하얗게 씻어내며 원래의 맛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열정은 여전했다. 아이들은 뜨거운 밥이 손에 닿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밥을 주먹으로 마구 뭉개고 그 위에 재료들을 얹었다. 특히 참치마요는 너무 많이 넣어서 김밥을 말 때마다 마요네즈와 참치 기름이 줄줄 흘러내렸다. 결과적으로, 김밥은 터지거나 납작하게 변형되었고, 결국 흐물흐물한 상태로 완성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생각했다. 이 김밥을 과연 누가 먹을 수 있을까? 나조차도 손을 대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아이들은 너무 맛있다며 김밥을 자르지도 않고 손으로 들고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랜만에 사냥에 성공한 원시인이 멧돼지를 뜯어먹는 듯했다. 그들의 무아지경 속에서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주방은 전쟁터처럼 변해 있었다. 온 곳이 기름 투성이에 마요네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도마와 칼, 접시는 미끌거렸으며, 김가루는 바닥을 덮었다. 그 와중에 회사에 있던 남편은 배가 고프다며 "맛있어 보이니 나의 김밥도 남겨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이 상황을 남편에게 자세히 설명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그 김밥을 먹고 싶어 했다. 정말로 아들 사랑이 남다른 사람이다.

사실 나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이번에 만든 김밥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를 강제로 하게 된 셈이다. 어쩌면 오늘 저녁은 평소보다 가볍게 넘어가야 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엉망진창이 된 주방과 먹지 못한 김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창의성과 에너지를 존중하고, 그들의 실수를 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배웠다. 또한 때로는 완벽하지 않은 결과도 그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밥은 비록 엉망으로 끝났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가족 간의 유대와 추억을 함께 쌓아나갔다.


...라고 영혼없이 마무리를 지어본다.


결국, 오늘 저녁은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를 했다. 고오맙다, 아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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