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이 Aug 29. 2024

감투 쓰는 법

2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교내 회장이나 부회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리더로서의 첫 발을 내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1학년과 2학년에는 학급 임원 선거가 없어, 그저 교실 뒤편에서 선배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호는 3학년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 밤, 몰래 거울 앞에서 자신만의 멋진 연설을 연습했다. “여러분, 제 이름은 2호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2호는 상상 속에서 박수를 받으며 자신이 꿈꾸던 장면을 그렸다.


드디어 3학년 1학기, 선생님께서 교실 앞에 서서 "이번 학기에는 학급 임원 선거를 치를 거예요"라고 말씀하셨을 때, 2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기다렸던 기회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2호는 거울 앞에서 더욱 열심히 연습했다. 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말투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며, 완벽한 연설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단 1표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번엔 그냥 운이 없었을 뿐이야.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어!" 


2호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추스렸다.

그러나 2학기에도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동네 형들과 친구들의 성공담을 들으며 자신감이 충만해진 2호는 다시 도전에 나섰다. "형들이 했던 것처럼만 하면 나도 성공할 거야!"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결과는 또 한 번의 실패였다. 성공담을 그대로 따라 하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2호는 이때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히 남을 따라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다음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더 구체적으로 준비해야겠어." 그는 다짐했다.


그리고 2024년이 밝았다. 4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 2호는 또다시 기회를 맞이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3년간 회장을 역임했던 형의 공약을 모방해 연습도 해보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전략도 추가했다. 학교에 보드게임을 기증하겠다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공약을 세운 것이다.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분명히 좋아할 거야!" 2호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말로만 그치지 않기로 했다. 친구들이 발표할 때마다 흔히 사용하는 종이가 아닌, PPT를 만들어 보이는 것도 전략 중 하나였다. 2호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밤늦게까지 PPT를 준비했다. 사진을 배열하고, 글자 크기와 색깔을 조정하면서 그의 열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완성된 PPT를 보며 그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USB에 고이 담아 학교로 가져가며, 이번엔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선거 날, 2호는 긴장한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섰다. PPT 화면이 켜지고, 준비한 연설을 시작했다. 발표가 끝나자 교실은 잠시 조용했다가, 이내 친구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정말 잘했어!" 스스로를 칭찬하며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안감도 엄습해왔다. 표가 개표되는 동안, 2호의 심장은 마치 달리는 말처럼 빠르게 뛰었다. 표가 하나하나 읽혀지는 순간마다 그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번 부회장은 000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2호는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2호는 속으로 다짐했다. "난 이번에도 배웠어. 실패를 통해 더 성장할 거야. 다음 번에는 꼭 이겨보일 거야!" 2호의 얼굴에는 오히려 굳건한 의지가 떠올랐다. 그렇게 2호는 또다시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더 나은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은 사먹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