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의 퇴고를 거듭하며 이제 이 문장이 그 문장 같고, 저 문장이 이 문장 같은 한계에 도달해 한숨을 쉬고 있는 나에게 대뜸 아들이 말을 건넨다.
"내가 2호랑 얘기해서 뭐라도 해볼게. 그런 건 자신 있어."
"그런 게 뭔데?"
"뭐 부수고, 싸우고, 웃기고 그런 거."
"푸하하 하하하하, 알았어."
브런치 조회수에 재미를 붙인 녀석. 자신의 말투와 행동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이제 깨달은 모양이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내 글의 조회수가 폭발한 이유는 언제나 아이들과의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다음 메인창에 걸리고 조회수가 1만을 넘길 때, 시큰둥해 보였던 그들의 반응과는 달리,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자랑스러웠나 보다.
엄마가 모니터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있을 때, 1호는 글감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언제 어디서든 사고를 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한 그 믿음직한 응원이 왠지 웃음을 자아냈다. 그 글감이 실제로 뭐가 될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저 마음 써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상 속의 사소한 사건들, 우연히 마주한 대화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가장 좋은 글감이 된다. 그리고 그 글감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심코 찾아온다. 아들이 말한 "부수고, 싸우고, 웃기고" 같은 이야기는 글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바로 그런,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과의 소통을 갈망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타인에게 전달하고, 그 반응을 통해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순환의 고리 같은 것이다. 그러니 아들이 내게 글감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을 이용하라는 듯이 말한 것도, 어쩌면 자신이 내 글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 작은 행동과 말들이 나의 글에 생명을 불어넣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함께 글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작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아이들의 재치와 웃음, 그리고 우리 사이의 소소한 순간들이 글에 녹아들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에피소드 덕분에 나는 글을 쓰고, 그 글이 다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가장 좋은 글감은 늘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