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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an 11. 2024

딸기 농장에서 찾은 평화.

방학 2일차

딩동.


"아침부터 누구지?"


이른 시간, 나는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준비 중이었다. 약속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찾아왔다. 인터폰 화면에 달갑지 않은 얼굴이 나타났다.


"어? 삼촌이다!"


2호가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열자, 2호보다 더 빠르게 조카가 쪼르르 들어왔다.


"고모! 준비 다 됐어요? 우리 딸기 따러 가요!"

"아직 시간이 안 됐잖아. 그리고 우리 집에서 모여서 출발하는 거였어?"


상황을 이해하려고 동생을 바라봤다. 동생은 나를 보며 대충 이렇게 말했다.


"얘가 형이랑 같이 가고 싶다나 뭐래나. 아빠 차 안 타고 고모 차 탄대. 나 출근하고 올 테니까 30분 후에 출발해. 알았지?"


그리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현관 밖으로 사라졌다. 순간 세 번 참았다. 참을 인(忍) 자를 마음속에서 그리며 나는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음번에 누가 또 나에게 명령하듯이 이러면, 그 유명한 지인의 가게에서 제대로 한 방 터뜨릴 것이다. 속은 마치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죄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표정 관리를 하며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 그 큰 목소리와 행동으로 차 안을 시끄럽게 만드는 아들 셋 사이에서 나는 어른답게 1시간을 운전했다. 분노 게이지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만큼 계속해서 올라갔다.




목적지에 도착해 딸기 농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사장님 부부가 환하게 맞아주셨다. "안녕하세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 따뜻한 인사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풀렸다. 분명 차 안에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는데, 이렇게 장소와 사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니. 사장님 부부는 마법사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게 분명했다. 딸기 농장도 부부의 모습만큼이나 예뻤고, 세심하게 준비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이런 아기자기한 곳에서 신이 난 것 같았다.

 

갑자기 사장님이 다가와 "아, 결혼식 때 뵈었죠? 형수님이시죠?"라고 말했다.


"네? 형수님이요? 저는 누난데요."


사장님이 당황하자 나는 재빨리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그렇죠? 제가 어렸을 때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여자친구냐고요. 이제 나이 먹으니 여자친구가 부인 같다고들 하네요. 아하하하."


그 순간 동생이 사장님에게 뒷짐을 지고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은 이렇고, 관리는 이렇게 해야 하고..." 누가 보면 투자자인 줄 알겠구나 싶었다. 나는 황급히 동생을 불렀다. "야, 너 여기 사장이야? 조용히 좀 해."


그때 여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남편에게 매일 잔소리 들어요. 선배님이 조언해 주실 때마다 속이 시원해요." 참, 말을 예쁘게도 하신다. 내가 저 학원을 다녀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남편 사장님이 동생의 잔소리를 꿋꿋이 받아들이는 걸 보니 마치 먹이 피라미드가 떠올랐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게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 나도 이제 그만 좀 철들고 성숙해져야겠다. 올해는 미생물에서 초식동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오늘의 일기 끝!


P.S.

하느님, 부처님, 산타할아버지.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빠. 또... 램프요정 지니 님, 달님.. 또 누가 있지?

아무튼 소원 들어주는 능력 있는 여러분들께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저 오랜만에 갖고 싶은 게 생겼어요.

몇십 년 만에 비는 소원이니 꼭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동생 직장 CCTV 녹화본 좀 제 핸드폰으로 보내주세요.

아무래도 그 녀석 천적은 거기에 있을 것 같거든요.

제 동생이 혼나는 모습, 지적받는 모습을 보게 되면 40년 묵은 제 병이 씻은 듯이 나을 것 같아서요.

제발요~~~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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