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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Jan 16. 2024

방학엔 알바지!

방학 5일 차

1호와 2호의 용돈은 매우 짜다. 이제 초6이 되는 1호는 매주 3000원, 예비 초4는 매주 2000원을 학교에 가는 첫 날인 월요일마다 지급한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사 먹는 떡꼬치가 1개에 700원, 편의점에서 파는 마이쭈가 800원인걸 생각하면 일주일에 군것질을 1번~2번밖에 못 먹는 이다. 그마저도 일주일동안 해야 하는 일들을 하지 않으면 용돈은 없다. 엄마표를 하다 보니 학교, 집, 놀이터가 동선의 전부인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원 스케줄로 빡빡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함께 놀 친구가 없어 용돈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용돈을 주는 이유는 경제관념 특히, 돈의 부족을 인지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마트나 놀이공원 등 어딜 가나 눈에 보이는 새로운 것들은 다 사달라고 하지 말고, 돈의 가치를 알고 정말 필요한 것인지 고민도 해보고, 가성비를 생각하며 구입의 유무를 결정하게 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혹은 하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노력도 해보고, 생일선물 등 기념일에 거금을 써야 하는 때를 위해 계획도 해 보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초등아이 용돈 관리다. 워낙 덜렁대고, 눈에 보이는 건 다 사야 하는 감정 + 충동파인 아들들이인내와 고민, 계획의 경험은 영어공부보다 더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이 다.




 간식도 집에서 만들어 주고, 준비물등 필요물품도 로켓배송으로 바로바로 준비를 해 주다 보니 평소 용돈은 군것질외에는 특별히 쓸 일이 없어 아이들이 용돈에 대해 기대만큼 관심이 크지 않았다. 동전이 주머니에서 나오고, 지폐가 구깃구깃한 채로 핸드폰 케이스에서 나오는 걸 보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다.

'아~ 이러면 용돈을 주는 게 의미가 없어지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며칠을 계속 고민을 하던 찰나에 우연히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tvN ‘온 앤 오프’에서 “아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시킨다”며 집안일을 하면 용돈 개념으로 돈을 주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들의 집안일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손 설거지는 3000원, 기계 세척은 2000원, 강아지 산책 2000원 등으로 책정이 돼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집안일을 하는 것마다 수첩에 빼곡히 적어 업무 일지 내듯 부모에게 보여주었고, 수첩의 내용을 확인한 김윤아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비를 제공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아르바이트 비용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자 가격에 대한 책정을 다시 하자며 가족이 다 같이 둘러앉아 회의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저거다. 나도 해봐야지!
이참에 너희들에게 자본주의의 본질이 뭔지 보여주겠노라.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집안일 아르바이트'를 우리 집에도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에게 경제관념도 심어주고,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하는 것임을 몸소 알게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할 일이 줄어든다는 이다. 김윤아는 대치동 키즈 출신, 남편은 의사라더니 배운 사람들은 역시 다르다.



 

 방송을 본 그날 밤부터 나는 이른바 '집안일 알바 프로젝트' 준비에 들어갔다. 아이의 용돈카드를 신청해 내 계좌와 연동을 시키고, 집안일 아르바이트 비용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며 돌잔치 준비하듯 틈날 때마다 세세한 것까지 계획하고 준비했다.

 드디어 D-day, 방학식 하는 날이 되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가족회의를 열어 그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남편은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괜찮은 아이디어라며 기뻐했고 (누가 보면 살림 꽤나 도와주는 남편인 줄;;)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예상과 다르게 시큰둥했다.

"돈이 안필요하면 안 해도 되는 거죠?"

집안일을 하기 싫은 1호의 질문에 기운이 쭉 빠졌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그동안 준비한 노력과 시간이 너무 아깝다. 다급한 마음에 마지막에 보여주려던 비장의 무기 '용돈 카드'를 꺼내어 보여준다.

아이들용 카드라서 인지 디자인이 너무 귀엽다.

"너희 이게 뭔지 알아? 1호, 2호 것이야. 엄마처럼 편의점에 가서 이걸로 계산도 할 수 있고, 버스탈 때 교통카드로도 쓸 수 있어."

그제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카드 장으로 어른 흉내를 생각에 신이 난 모습을 보며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카드는 아르바이트 비용만 넣어줄 거야."

아까 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려던 괘씸한 마음을 꽁하게 담아두었다가 꼰대답게 복수를 하기로 한 것이다. '후훗. 이제 집안일을 안 할 수 없게 되겠지? 얘들아, 너흰 아직 내 손안에 있단다. 음하하하하하하!!'

그 후로 우리 집은 남편은 간식 셔틀 안 해서 좋고, 나는 집안일을 덜 해서 편하고, 아이들은 부자가 돼서 행복한 가정이..... 그려졌다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거다. 이번 방학 브런치북 소개글에도 적었듯이 이번 브런치 북 '엄마의 방학일기' 콘셉트는 하소연이다. 

미션을 성공하면 알바비가 아이카드로 이체된다.


'왜지? 너무 좋은 생각 같은데? 어떤 점이 힘들지? 용돈 카드가 잘 안 되나?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수준인 거다. 앗, 이 표현이 기분 나쁠 수 있으니 예쁘게 포장해 다시 말하면, 너무 착한 심성에 긍정적인 마인드이다보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집안일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난 이번에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겼어야 하는데 장면이 하나같이 모두 충격적이어서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고자 서툰 글로 그때의 상황들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청소기 청소 : 3분 만에 끝난다. 먼지와 쓰레기가 청소기 안으로 들어간 게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온갖 가구들이 재배치되어 새로워진 집에 온 기분이 들 수 있음.

-화장실 청소 : 구석구석 닦으라고 준 수세미를 벽과 천장에 던지며 거품을 묻히고는 발로 밟아 노래를 부르며 트위스트를 치기까지 30분. 그러다 지치면 샤워기로 수건, 휴지, 화장실 문과 천장 그리고 거울까지 물을 흠뻑 뿌린다. 세면대와 변기는 건드리지 않은 게 포인트.

-분리수거 : 커다란 통이나 봉지 하나에 모든 쓰레기를 담아서 질질 끌고 나간다. 베란다부터 어느 쪽으로 지나갔는지 알 수 있게 하나둘씩 쓰레기를 흘리는 건 따라 나오라는 신호니 꼭!! 동행해야 한다. 아니면 분리수거장에서 요란 법석 떨며 엉망으로 하는 걸 참고 계시다 결국 대신 정리하고 계시는 경비아저씨를 통해 진상 부모로 이미지 탈바꿈 가능.

-세탁기 & 건조기 : 빨래를 한 것과 안 한 것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매직이 펼쳐지는 곳. 어떻게 하면 건조기에서 모든 옷들이 검댕이 동글 먼지를 머금고 나오게 하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건조기가 높이 있다는 이유로 건조기에서 꺼내진 빨래는 발로 꾹꾹 눌러서 담아와 속옷까지 다림질하게 해 주니 미리 예열해 둘 것. 양말이 한 짝씩만 있는 건 보너스.

-설거지 : 다행히 그릇을 깨진 않는다. 거품이 그대로 묻혀 있을 뿐. 개수대 옆은 물론, 바닥까지 물이 흥건한 건 예상했던 것이라 놀랍지도 않다, 분명 요리가 아니라 설거지를 한 건데 싱크대 하부장을 통해 오늘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됨.

-방 걸레질 : 두 손으로 무릎 꿇고 하라고 했더니 누워서 온몸으로 닦는다. 아니, 닦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기어 다니면서 문지른다 보면 어느새 걸레는 사라지고 없어져서 걸레 찾기 게임도 가능해짐.

-방 청소 : 갑자기 안 보던 책이랑 서랍을 다 꺼내어 추억팔이도 했다가, 놀이도 했다가, 둘이서 사고팔며 돈거래까지 한다. 청소는커녕 더 어지럽혀진 방은 조용히 문을 닫고 안보는 게 답.

-강아지 산책 : 일을 보고 나서 혹은 산책을 하고 나서 입과 발, 항문을 제대로 닦아주지 않아 툭하면 이불이 엉망이 되어있다. 덕분에 매일 세탁해서 향기롭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것이 장점.

 -강아지 밥 주기 : 주인 닮아 성격 급한 강아지는 사료를 먹다가 컥컥거리면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널까 겁이 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바로 거실에 사료를 흩뿌리기. 이렇게 하면 강아지는 한알씩 천천히 먹게 되고 바닥은 개의 혀로 닦아져 걸레질을 안 해도 된다며 일석이조라고 자화자찬하는 모지리 아들의 춤사위는 엄마를 헛웃음 짓게 함.



 생각나는 대로 끄적인 글이라 상상이 잘 안 될까 우려되어 시작단계의 사진을 첨부해 공감과 위로, 응원을 강요해 본다. 차마 열받아서 중요한 결과 사진을 찍지 못했으니, 계속 이 프로젝트를 유지하며 추가 사진을 찍을 까봐도 생각해 봤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직접 '집안일 아르바이트 프로젝트'를 해보심을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장담컨대, 우리 집만큼 글감은 안 나올 테지만, (이것이 연년생 초딩형제맘의 자신감이다!!) 그래도 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부록으로 아이가 집안일을 도우려 하는 기특한 모습이 따라오니 꼭! 챙기시기를.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으니 청소에 필이 꽂히는 흔치 않은 그 날이 오면, 큰 맘 먹고 아이들에게 '집안일 아르바이트'를 권유해 볼까 한다. 그땐 동영상으로 찍어 적나라하게  기록해 놓을 테다.  훗날 1호와 2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육아가 너무 힘들다며 애기 좀 봐달라고 할 때, 그 즉시 바로 이 글의 링크를 보내주어야 하니까 말이다.

 아들아, 참고로 얘기하자면.
집에서 누워만 있는 아빠도 화병으로 죽을 것 같다고 밖으로 나가셨었고,
엄마는 집안일이 딱!! 2배로 늘어서 매일 2년씩 수명이 줄었었단다.
자, 보렴. 네가 너를 똑 닮은 아이를 낳은 것 맞지?
너의 업보이니 네가 수습하려무나."

라는 다정한 글도 함께 적어서 보내줘야겠다. 난 친절한 엄마니까♡


그래도 난 너희들이 제일 좋더라♡

초등 용돈 카드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https://m.blog.naver.com/sunny-star/22332734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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