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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Mar 18. 2024

엄마처럼 안 살 거야.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발제문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다 내면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 잘 되지 않아 나의 불안이 아이에게 투영되는 경험을 이야기하며 내면 아이를 스스로 잘 돌봐주고 키워줘야겠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동의했다.


내면 아이 [ inner child ]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

어린 시절의 주관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용어로써 한 개인의 인생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다. 뇌 속에 저장된 어린 시기의 기억은 개인의 정서에 관련된 기억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경험적 자원이다. 내면아이의 발달은 부모의 양육태도와 관련이 있다. 자녀의 성장과 성격발달은 부모와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등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보면 상담자의 고민과 불안의 뿌리를 파악해 주고, 어린 시절 상처받은 자아와 연결 지어 불안의 실체를 진단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인이 되었을 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워킹맘이 육아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양면성을 지닌다. 회사에 다니며 일하는 경우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짧아 발을 동동 구르며 매번 미안한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고, 잠든 아이를 보며 눈물짓기를 반복한다. 곤히 자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너는 이런 엄마를 닮지 말라'라고 되뇌곤 하는데,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나도 엄마에게 서운하거나, 혼나는 날이면 "난 크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며 잠들었던 적이 많았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건강을 해치면서도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는 '시대의 엄마'를 보며 불편해하고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스스로 날갯짓을 있을 무렵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엄마와 괜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선을 그었던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반성했었건만 그새 잊고는 엄마의 아픔을 모른 척하고, 엄마에게 무관심하려 노력한다. 이제와 짐작건대, 청소년기보다 오래된 유년기시절 엄마에게 느꼈던 불안과 공포, 서운함이 크게 자리 잡은 탓일 거다. 아직도 그때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를 부탁해 中에서-


전업주부이셨던 엄마는 넉넉지 않은 아빠의 월급봉투를 쪼개고 쪼개 우리 남매를 키우셨다. 비록 부모님은 대학을 나오시지 않았지만 자식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고, 주인집 옆 창고 같던 월세방에 살던 우리 가족은 두 분의 노고덕에 서울 한복판 40평대 집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없는 돈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 힘들고, 고부간 갈등도 심했던 부모님은 자주 큰소리로 싸우곤 하셨다. 부모님 싸움을 보고 들으며 어린 나이에 공포에 시달렸던 것이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싸울 때마다 나오는 이혼 소리에 '진짜 이러다가 나를 버리는 게 아닐까'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고, 네가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으니까 저렇게 싸우는 거라며 남매간에 서로를 탓하기도 했다. 아빠와의 갈등에 대한 스트레스는 아빠를 닮은 우리 남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한숨만 쉬며 말없이 밥을 차려놓고는 안방으로 들어가거나, 작은 실수 하나에 위법이라도 한 듯 회초리를 맞고, 집에서 쫓겨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수순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늘 다짐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자랑 결혼해야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형제를 키우며 내가 가장 신경 썼던 점은 내가 부모님께 받은 상처를 아이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릴 때 가장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상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큰 소리로 아이들을 윽박지르거나, 강압적인 모습에 아이들이 무서운 엄마의 눈치를 볼 때마다 아차! 싶은 것이다.

 좋은 부모,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노력하고 아이들이 좋은 사람으로 커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키우는 것이지만 육아란 늘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특히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똑같이 때로는 더 강압적인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대할 때는 너무 힘들고, 괴롭다.

 어릴 때에는 부모에게 불평불만이 많았고,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 보니 부모님도 그 당시 육아가 어려웠겠구나 모르는 게 당연했겠구나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오히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아등바등 하루를 살아내느라 훨씬 더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은 부모님이 아이를 키우며 살던 그때와 너무 달라졌다. 이것은 저출산, 청년실업, 고령화와 낮은 경제 성장률까지 더불어 밀레니엄 세대(1980~2000년에 태어난 세대로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는 "부모보다 잘 살 수 없는 첫 세대"로 부른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친정엄마가 살아온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살고 있는 모습, 그리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엄마처럼 하고 싶지만 쉽게 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요즘 엄마가 아침마다 도시락을 3개씩 싸던 모습이 떠오른다.  부모를 탓하는 유효기간이 벌써 지나가버린 걸까? 혹은 좋은 엄마가 못된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걸까?

 너는 커서 엄마처럼 살지 말라며 대학을 보내고 직장생활과 육아의 병행을 하느라 힘드니 주말에는 푹 쉬라며 손주들을 불러 돌봐주시는 친정엄마를 보며 만약 우리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되고, 육아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아마 지금의 엄마처럼 기꺼이 아이들을 위해 손주 육아를 담당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유아교육 전공자이니 페이는 두둑이 받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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